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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수익실현 앞에서 배우는 철학

14화

by 김경희

주식투자를 시작해서 1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부부가 투자한 종목들은 파도처럼 오르내리다 결국 큰 상승세를 탔다. 그리고 어느 날, 주식통장 수익란에 믿기 어려운 숫자 100,000,000이 찍혔다.이사 자금으로 모자랐던 1억 원. 화면 속 숫자는 현실이었지만, 한동안 실감 나지 않았다. 단순히 ‘돈 벌었다’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쏟아낸 시간과 감정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왔다.


밤잠 설쳐가며 주식 차트 보던 시간, 빨갛게 물든 그래프 바라보며 뛰던 마음, 푸른 봉이 길게 드리워질 때 녹아내리던 희망,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이 오르내렸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돈의 흐름이 아니라 마음의 흐름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주식은 숫자의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 숫자 뒤에는 늘 감정이 숨어 있었다.


주식투자 1년의 경험을 이렇게 몇 줄로 옮기자니, 주식으로 돈 버는 일이 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일이 그렇듯, 결과만으로는 결코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결과’로 좋고 나쁘고, 쉽고 어렵고를 판단하지만, 수없이 흔들리고 망설였던 ‘보이지 않는 과정’이 존재한다.


주식의 그래프가 오르내리는 동안, 나의 마음 또한 그래프와 함께 요동쳤다. 돈이 늘어날 때는 욕심이 고개 들고, 줄어들 때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차트 봉이 붉은빛일 때는 희망이, 파란빛일 때는 불안이 마음을 채웠다. 그렇게 감정의 등락을 견디며 조금씩 ‘기다림의 기술’을 배웠다.


이번 수익은 내 실력의 증거라기보다, 운과 환경, 그리고 한순간의 ‘때’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흐름이 좋았고,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으며, 집을 사고 이사하기까지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도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였다.


하지만 진짜 행운은 돈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기다림의 의미’를 배운 것이었다. 오르내림 속에서도 조급해하지 않고, 내 안의 두려움과 욕심을 마주 보는 법을 익혔으니 말이다. 결국, 이런 배움이야말로 숫자로 셀 수 없는 진정한 수익이었다.






통장 속 수익의 숫자가 목표했던 금액을 넘어선 날,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아침, 남편은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 식탁 위에는 식은 커피가 놓여 있었고, 그는 휴대폰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 말했다.

“이제 팔까? 아니면 조금만 더 가볼까?”

그의 물음은 단순한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욕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더 기다리면 수익이 불어날 가능성도, 줄어들 가능성도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의 질문에 조심스레 대답했지만, 이 말이 내 입술을 떠나는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프는 여전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지금이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팔기엔 이른 듯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들고 있기엔 불안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산책을 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가로등 불빛이 어두워진 길 위로 길게 드리웠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걸었다. 한참 지나서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그래, 욕심내지 말자. 이만하면 됐지 뭐.”

그렇게 우리는 주식을 팔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손가락 하나로 모든 걸 정리하는 순간이 왔다. 가벼운 클릭 한 번이면 끝나는 일이었지만, 클릭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마우스 위에 올린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팔기’를 누르는 찰나,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후련함과 아쉬움, 그리고 안도감이 한꺼번에 섞였다. 화면 속에서 수익 냈던 주식 종목이 사라진 순간, 마음이 텅 비어버린 듯했다. 순간 텅 빈 자리로부터 이상한 평화가 피어올랐다. 마치 오랫동안 짙은 안개 속을 걷다 마침내 바람이 불어 시야가 트인 느낌이었다.


아직 상승의 여지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만큼이면 충분하다”라고 서로에게 말했다. 더 수익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필요한 만큼 얻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속삭였다. 이 말 속에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스스로 욕심을 다스린다는 결심과 용기가 담겨있었다. 그날 밤,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진짜 잘한 것 같아. 돈을 번 게 아니라, 마음을 되찾은 것 같아.”


보름 뒤, 상승세를 이어갈 것 같던 주식장은 크게 조정을 받았다. 내가 팔았던 주식도 20% 넘게 하락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천만 원 넘는 돈이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제야 ‘계속 오르는 주식도, 계속 내리는 주식도 없다’는 말이 실감 났다. 만약 욕심을 내어 수익금 더 불리겠다는 생각으로 팔지 않았다면, 우리가 세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더 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다시 각자 천만 원씩 주식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감정이 아닌 원칙으로 투자해 보기로 했다. 돈을 불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시장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식의 파도를 타며, 매달 얻은 수익을 삶 속에서 여유롭게 누리기로 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였다. 시장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욕심보다 평온을 선택하는 연습.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주식에서 배운 가장 값진 철학이었다.


주식으로 돈이 늘어날 때도, 줄어들 때도 시장이 시험한 것은 결국 우리 마음이었다. 진짜 부는 통장 속 숫자가 아니라 마음속의 평온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주식을 계속할 것이다. 다만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 벌고, 그만큼 기다리며, 우리만의 속도로 투자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주식투자는 지식 게임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이 들어서도 생각하고 배우며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건 단순한 경제 행위 이상의 일이다. 나는 주식을 통해 돈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배운다. 오르는 날엔 감사하고, 내리는 날엔 단련되며, 결국엔 기다림 속에서 견고해진다. 투자는 결국 숫자를 넘어, 자신의 한계를 알아가고 확장하는 일이다. 이렇게 오늘도 차트 너머의 삶을 배워간다.


다시 천만 원 투자 생활로 돌아가서 종목별 비중 조절과 매매 방법에 대해서는 3장 왕초보를 위한 주식 가이드에서 자세히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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