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코스피 지수가 4,000을 넘어섰다. 시장이 좋은 시점에 다시 천만 원 종잣돈으로 주식장에 들어섰다. 처음 천만 원으로 투자할 때만 해도 계산 없이, 그야말로 우당탕탕 아무 때나 주식을 사고팔았다. 운 좋게 수익이 마이너스 아닌 플러스였다. 절대로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행운이 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계획적으로 투자에 임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주식 고수들처럼 주도면밀한 수준은 아니다.
투자금 천만 원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30%는 장기 투자, 30%는 스윙 매매, 그리고 30%는 단기매매, 나머지 10%는 현금으로 놔두기로 했다. 현금도 하나의 주식 종목으로 가지고 있으면 좋다. 하락장에서 매수하고 싶은 종목이 생기면 언제든 살 수 있으니까. 장기 투자에는 코스피 종목 중 시가 총액 상위의 안정적인 가치 주를 사면 좋다. 스윙 매매용 종목은 코스닥에서, 단기 매매는 요즘 뜨는 테마주 중 거래량 많고,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종목 위주로 고르면 된다. 매수 종목을 고를 때는 최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반도체, 원전, 방산, 조선, 로봇, 제약·바이오 등 주요 테마 중에서 각 영역의 주도주를 선택하면 된다.
1년 전, 감으로만 매매하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계획적인 투자 생활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언제 사고 언제 팔 것인가’의 문제는 숙제로 남는다. 여러 지표를 분석하며 매매하는 슈퍼 개미나 고수들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컴퓨터 화면에 각종 표를 띄워놓고 분석하는 법을 배우면 좋겠지만, 복잡한 일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그럴 능력도 없다. 나이 많은 K 아줌마라서.
차트가 중요한 단기 매매의 경우 실전투자대회 1억 리그 1위이자 국내 신기록 수익률을 보유한 ‘불개미’, 그리고 실전투자대회 5관왕 ‘대왕 개미’의 채널을 즐겨본다. 그들은 단기매매법에 대해서 초보자들도 따라 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자신들이 실수했던 점과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방법까지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나보다 앞서서 길을 걸어간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그들의 매매전략을 참고하며 투자하다 보니 조금씩 나만의 리듬이 생긴다.
천만 원으로 하는 투자 비율은 미리 나눠 두었지만, 처음 하는 투자는 천만 원을 모두 사용해서 스윙 매매를 시도했다. 스윙 매매가 단타보다 쉽게 느껴진다. 장기매매처럼 긴 기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빠르게는 며칠에서 몇 개월 내에 수익 실현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사흘 전 매수한 로봇 관련주가 이틀 연속 상승했다. 첫날은 상한가, 다음 날은 19% 상승. 계좌의 빨간 숫자가 올라가니 입꼬리도 따라 올라갔다. 선택한 종목 하나가 홈런을 치고, 다른 종목이 안타를 쳤다. 합산 수익은 이틀 만에 310만 원, 며칠 만에 한 달 목표였던 200만 원의 수익을 훌쩍 넘어섰다. 초심자의 행운이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걸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코스피 지수가 4천을 넘어섰으니, 그야말로 물때를 만난 것이다. 지수가 좋으면 대부분 주식이 함께 오른다.
‘지금 팔아야 할까, 더 기다릴까.’
한 달 치 목표 수익금을 달성한 종목들을 보며 기쁨과 함께 고민이 밀려왔다. 남편은 팔지 말고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잠시 흔들렸지만, 차트를 다시 들여다보며 냉정하게 시장을 살폈다. 개인 투자자가 사고, 외국인이 파는 흐름이었다. 장대 양봉이 눈부시게 솟아 있었지만, 어쩐지 다음 날 하락할 것 같았다. 대부분의 주식은 장대 양봉이 솟은 뒤에는 조정을 받기도 하고, 캔들이 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매도했다. 수익금이 손에 들어오는 순간, 남편의 아쉬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더 오를 거라 믿는 눈빛이었다. 다음 날, 내 예상대로 주가는 18% 급락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단 하루 차이로 수익을 지킬 수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다행히 나는 안전하게 수익을 확보했고, 남편의 수익은 조금 줄었다.
이후 장대 음봉의 저점에서 다시 그 종목을 매수했다. 눌림목 뒤에 다시 오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스윙과 단타를 오가며 팔고 사는 주식은 예민하지만, 때로는 직감이 통한다. 다시 산 주식은 다음날 바로 올랐다. 30만 원의 이익을 실현하고 다시 매도했다. 하지만, 다음 날 16%가 더 뛰어버렸다. 120만 원의 수익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미련을 붙들면 길을 잃는다. 주식 창을 닫으며 마음을 재빨리 정리했다. 내 것 아닌 돈은 아무리 애써도 내 손아귀에 머물지 않는다.
주식은 사는 것만큼 파는 시기가 중요하다. ‘사는 것은 기술, 파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나는 필요한 수익이 나면 미련 없이 판다. 판 뒤에 주가가 더 오르더라도 그것은 내 복이 아니라 생각한다. 거대한 세력과 맞서 싸우며 깨지고 피 흘리기보다, 내 분수에 맞게 먹을 만큼만 먹는 절제가 더 중요하다.
비율을 조절해 투자를 다시 시작하니. 단기 매매의 짜릿함과 중장기 투자에서 오는 안정감을 맛보며 균형을 배우고 있다. 욕심과 두려움이 번갈아 찾아오면 어김없이 흔들리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 주식 계좌의 숫자는 하루하루 변하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수익이며, 진짜 성장이다. 주식이란 돈을 쌓는 게임이 아니라,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예술이니까.
오늘도 마음의 차트 앞에 선다. 화면 속 빨간 숫자보다 먼저 흔들리는 건 늘 내 마음이다. 탐욕이 손을 내밀면 잠시 멈추고, 두려움이 몰려오면 깊게 숨을 고른다. 주식은 결국, 내 안의 소용돌이를 읽고 통제하는 연습이다. 계좌 속 돈은 사라지고 돌아오기를 반복하지만, 마음의 근육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마치 폭풍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나무처럼,
오늘도 마음의 뿌리를 깊게 내린다. 주식을 사고팔 때마다 나를 시험하고, 숫자에 흔들리면서도 다시 중심을 잡는다. 주식은 돈의 싸움 같지만, 결국 마음의 수련이자 인생의 축소판이다. 이 시장에서 버티는 힘은 결국,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요즘 다시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