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갱년기 극복하기, 하염없이 우울해질 때

갱년기 극복기

by 김경희


한 남자가 새벽시장에 나가 사과, 포도, 무, 배추 거리에 쪽파, 양파, 당근, 땅콩, 해바라기씨, 쥐눈이콩, 고춧가루 등등 수레 하나 가득하게 사서 싣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런데 수레를 끌고 가는 한 남자 뒤에 찰칵! 사진 찍는 한 여자가 있다. 자신의 그림자가 찍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수레 끄는 한 남자의 모습을 몰래 찍고 있다.


그녀는 바로바로 브런치 작가인 현지 마미다.ㅎㅎㅎ 물론 수레를 끄는 한 남자는 현지 마미의 낭군이다.ㅎㅎㅎ



우리 둘이는 남의 일기는 왜 훔쳐봐가지고라는 책에서 갱년기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하염없이 우울해질 때면


<아내의 일기>


시장에 가면


아침 일찍부터 남편이 시장 갈 채비를 했다. 하도 재촉하기에 허둥지둥 집을 나섰는데 이미 아침 시장은 부지런한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생선 비린내와 쿰쿰한 건어물 냄새, 향기로운 과일 향기와 사람들의 땀 냄새까지 시장의 모습은 갓 잡은 물고기의 팔딱거림처럼 생생히 살아 있는 현장이었다. 사는 게 늘어지고 하염없이 우울해질 때, 그곳에서 느껴지는 치열한 삶의 에너지 덕분에 활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갱년기에 접어든 탓인지 요즘 들어 종종 우울한 감정이 찾아오곤 한다. 지금까지 의미를 두고 열심히 해 왔던 일들이 다 무슨 소용 있을까.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제 아이들도 다 자라서 제 밥벌이들 하게 되었으니 지금 죽는다 해도 아쉬움 없을 것 같은 허무한 감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은 호르몬 변화 때문에 특별한 이유 없이도 우울한 감정이 생길 수 있고 몸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하니 기분이 이상하기만 하다.


남편에게 요즘의 심경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니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며 주말 아침마다 나를 시장에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엔 생선 살을 반죽해 직접 튀겨주는 따끈따끈한 어묵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다. 따뜻한 어묵 국물이 마음까지 데워 주는 것 같았다.


-남의 일기는 왜 훔쳐봐 가지고 190~191쪽-



<남편의 마음>


갱년기 처방


나의 둔감함 때문인가? 아내가 갱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늘 열심히 바쁘게 생활하는 아내만 보았으니까. 아내에게 갱년기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고민 끝에 아내와 시장 구경을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시장 구경을 가자고 제안했을 때 아내는 지저분하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내 끈질김에 마지못해 따라나섰고,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시장에서 새벽 시장의 맛을 알게 되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현장에서 느끼는 활력과 소박한 이웃들의 진솔한 풍경에서 삶의 활력을 다시금 느끼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가 활기차게 장사하시는 모습을 본 아내가 "저 할머니도 갱년기를 겪으셨을까?"라고 물었다. "저렇게 바쁜데 갱년기 겪을 시간이 있으셨을까?"


내가 다시 되묻자 아내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남의 일기는 왜 훔쳐봐 가지고 192~193쪽 -


1602598344075.jpg






50세가 되던 즈음부터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고 갱년기의 우울한 증세를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옛 어르신들께서 경험상 하시는 말씀이 60세가 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덜 아프다고 하시던 말씀도 생각난다.


여성들은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오십 살 주변부터 육십이 되기까지 몸이 짜긋짜긋 왜 그렇게 아픈 걸까? 나의 경우엔 몸도 아프고 뼈마디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던 것 같다.


요즘 세상은 그래도 심리학적인 배경지식도 널리 알려져 있고 생물학적이고 과학적인 지식까지 더해져서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갱년기 증세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에 한참 갱년기 증상이 있었을 당시 의학 공부를 하던 아들이 나한테 그랬다. 엄마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갱년기 증상이 많이 심한 편은 아니지만 증세가 너무 심해지면 호르몬 치료받으면서 잘 이겨내야 한다고.


그리고 동생에게 엄마 심리상태 잘 살펴봐야 한다면서 아빠는 이런 것 잘 모르는 세대니까 우리가 엄마 상태 잘 체크하자고 동생과 둘이서 자분자분 얘기하는 걸 곁에서 슬쩍 엿들었다.


내가 지금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낳은 자식들이 이론적으로나마 알아준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었다.


가족이 지지해 주는 갱년기에 대한 인식은 공감이고 사랑의 약이 되어서 감정을 코칭할 수 있는 여력까지 생기게 되었던 것 같다.


다행히 나는 그 뒤로 갱년기 증세가 더 심해지진 않았다. 순간순간 슬쩍슬쩍 찾아오는 이상한 감정들이 일어날 때마다 '지금의 이런 감정은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나면 다운되었던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또 피로감이 몰려오면 예전엔 기를 쓰고 참아냈지만 어디라도 스르르 누워 잠시 쉬기도 했다. 또 불면증 때문에 잠이 안 오는 날에는 억지로 잠을 자려하지 않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다음날엔 꼭 햇빛을 받고 걸어서 잠이 오는 방법을 시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처럼 갱년기 우울 증세가 있을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면 금세 좋아지곤 했던 순간들이 말이다.


지금은 호르몬의 변화에 몸이 적응했는지 이상한 감정들이 나를 흔들지는 않는다. 갱년기 우울 증세가 나를 흔들어봤자 넘어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듯 말이다.


갱년기 증세는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남성들도 갱년기를 지나면서 증상을 겪는다. 하지만 여성들은 갱년기에 접어들면 급격하게 호르몬 수치가 추락하지만 남성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서서히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월동준비를 하듯 갱년기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몸도 준비해 나가야 하고 마음도 준비해 나가야 한다.


갱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1) 규칙적인 운동하기.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적절하게 섞어서 해야 합니다. 사실 저는 워낙 운동을 싫어하던 사람이었는데 갱년기에 접어들면서는 의지적으로 운동을 했다.


혼자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안 하는 날이 많아질 것 같아서 요가와 필라테스 학원에 수강신청을 했다. 운 좋게도 대학을 다니느라 집을 떠나 있었던 딸이 졸업 후 엄마 곁으로 돌아와 직장을 잡게 되어서 모녀가 함께 운동을 다닌다.


딸과 함께 시시덕거리며 운동하러 가는 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둘 다 여중생이 되었다 여고생이 되었다 하면서 친구가 되어준다. 확실히 어디에 메인다는 것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깃대에 메여있어야 깃발이 휘날리듯 말이다.


2) 25년 넘게 운전하던 습관을 그만두고 자동차를 없애고 걷거나 시내버스 타고 다니기. 차가 꼭 필요한 날은 남편 차를 이용하니 차량 유지비도 절감되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가지고 다닐 때 보다 걸어 다니거나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참 많았다.


'내가 지금까지 다니던 길에 이런 것도 있었다니' 하며 놀라는 순간을 자주 경험하면서 햇살에 그을리기도 했다. 이렇게 햇볕 세례를 받으며 걷는 생활을 한 지 1년이 지나면서 놀라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3) 밥에 콩을 많이 넣어먹기. 나는 어려서부터 콩을 너무 싫어했다. 엄마가 콩밥을 하시는 날에는 밥에서 콩을 모조리 골라내고 먹었으니까. 하지만 콩에는 여성 호르몬인 이소플라본이라는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밥을 할 때 콩을 엄청 많이 넣어서 먹기 시작했다.


콩밥 덕분인지 지금은 갱년기 증상을 거의 못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물론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약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4) 칼슘제와 유산균, 석류즙, 규칙적으로 복용하기. 이것저것 챙겨 먹어서 그런지 호르몬 감소로 인해 관절이 아프고 피부가 건조해지고 손톱과 발톱이 얇아지다가 지금은 많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


5) 눈 건강에 좋은 영양제와 들깨, 들기름과 올리브유 섭취하기. 챙겨 먹어야 하는 것 많아져 때론 귀찮을 때도 있지만 젊음을 놓쳐버린 대가라 생각하고 몸에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규칙적으로 섭취하고 있다.


6) 또래 친구들과 모여서 함께 수다 떨기.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려 노력한다. 이전엔 서로 직장 생활하느라 바빠서 만나는 것보다 일이 더 우선이었는데 이젠 하나 둘 퇴직들을 하고 나니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물론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프다 보니 서로 만나면 건강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거나 어떤 것이 몸에 좋더라는 얘기를 주로 하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7) 독서모임과 취미 활동하기. 갱년기를 지난 많은 선배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무조건 활동해라"이다. 활동에는 경제적 창출을 위해 움직이는 활동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창출을 하는 활동도 있다.


특히 독서모임에서 책을 읽고 서로 나눔을 하고 나면 정신적 풍요와 만족감을 느끼게 되고 취미활동을 통해서는 집중력과 성취감이 생겨서 좋았다.


8)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일주일에 하루는 봉사 활동하기. 40세가 지나면서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지금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 선택해서 일주일에 하루는 대학교의 상담실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봉사활동은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더 유익함을 느낀다.


9) 남편과 친밀한 대화 자주 나누며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맘 덜어내기. 노년기를 힘들지 않게 보내기 위해선 최소 4억이 필요하다느니 빵빵한 경제력이 필요하다느니 참으로 경제적인 준비에 관한 말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우리 부부는 몸 건강 마음 건강이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언제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니 욕심부리지 말고 퇴직 후 우리에게 주어진 한도 내에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소박한 삶을 이루어가자고 자주 대화한다.


그래서 그런지 미래에 대한 막연한 염려가 없어졌다. 돈 쓸 일이 닥치면 체면 같은 건 벗어던져버리고 형편에 따라 하면 되고 별일 없으면 감사하며 살아가면 되니까 말이다.


10) 브런치에 글쓰기 활동. 브런치에 이런저런 글을 마구 쓰다 보니 나이가 더 들어서까지 오래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