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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 먹고 있지?"라는 말에 신경이 쓰여서.....

아내의 외출과 시래기 영양밥

by 김경희


코로나라는 단어를 더 이상 사용하고 싶지 않은데 코로나 시국에 살고 있다 보니 오늘도 글의 맨 첫 단어를 코로나로 시작하고 만다. 바로 아래 동생이 6개월의 힘든 항암의 과정을 마치고 회복기에 접어들었기에 친정 자매들이 황토집을 짓고 사는 막내 동생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동안 병문안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다들 궁금해하는지...... 물론 카톡창과 줌을 통해서 끊임없이 만나긴 했으나 아날로그 세대의 사람들이니 살을 비비며 만나는 것에 어디 비할 수 있으랴.


막냇동생이 사는 도시는 거리 두기 3단계 발령인지라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상태지만 언니는 코로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모두 마친 지 2주가 오래전에 지났다.(그러니 모임 숫자에서 제외) 새언니와 나, 그리고 두 동생들도 2차 접종을 다 마친 상태라 이제야 매해 한 여름에 가졌던 "봉숭아 물들이기"올 해의 모임을 하게 되었다. "자매들의 봉숭아 물들이기 모임"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궁금한 마음도 들지만 다들 아직은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 거리 두기 3단계 모임>


4명까지 사적 모임 가능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 다만, 아래 사항에 대해서는 사적 모임의 예외 적용

① 동거가족, 돌봄(아동‧노인‧장애인 등), 임종을 지키는 경우

② 스포츠 영업시설(경기 구성을 위한 최소 인원이 필요한 스포츠)

* 단, 운동 종목별 경기 인원의 1.5배 (예: 풋살 15명) 초과 금지

③ 상견례의 경우 8인까지 예외적 허용

④ 돌잔치의 경우 16인까지 예외적 허용

⑤ 예방접종 완료자의 경우



한참 일할 때 연수니 세미나니 해서 2박 3일 아니, 3박 4일 집을 비운다고 해도 쿨하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던 그이의 태도가 요즘은 약간 달라졌다. 친구들과의 여행도 아니고 동료들과의 나들이도 아니고 피붙이 친정 자매들과의 만남인데 내심 심란한 표정을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처럼 즐비하게 늘어놓는다. 혼자서도 씩씩하던 그이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코로나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이후에 모든 사회활동을 멈추고 온전한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제대로 한번 해보자 마음먹고 자발적으로 외식문화를 집 밥 문화로 바꿔나갔다. 전화번호만 누르면 계란찜까지 문 앞에 배달해 주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바깥 음식이 얼마나 사람 몸을 살찌게 하는지(정말 맛있으니까) 염려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래도 나에게 코로나로 인한 집 밥 행진은 작년부터 지금까지 1년 하고도 두 계절이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일한다는 핑계로 잦았던 외식문화는 그렇게 내 삶에서 점점 추방되어 가고 있다.


이왕 차려내는 것, 나와 내 가족의 몸속에 잉여된 영양이 쌓이지 않도록 요리에 색을 더하고 기름기를 빼고 염분을 줄여 나가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침엔 야채샐러드와 견과류, 영양 수프나 해독주스로 대신하고 저탄저지에 식물성 단백질이 듬뿍 들어간 음식과 오방색을 갖춘 야채를 많이 먹기 위해 늘 고민을 한다. 그러다 보니 국, 밥, 김치, 찌개에 의존했던 오래된 그이의 식습관도 바뀌기 시작했고 내가 차려낸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 보기 좋다는 말을 자주 연발하며 바깥 음식보다 집밥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남편은 며칠 전부터 친정 자매들과 만나는 날짜를 자꾸 묻더니 어제는 문득 "나는 뭐 먹고 있지?"라며 두 눈을 깜박거렸다.'아니, 아기도 아니고 먹을 것은 냉장고에서 꺼내서 만들어 먹던지, 차려 먹으면 되는데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시래기 영양밥 맛있게 해 놓고 갈게.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양념장에 비벼 김치하고만 먹어도 충분할 거야."라고 다독이며 대답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떨어지기 싫어하는 그이를 보며 나도 집에 홀로 남겨질 그이가 신경 쓰인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서로 너무 의존적인 관계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든다. 나도 그이도 둘 다 말이다.






언니 동생과의 동거를 위해 집을 떠나는 오늘 "나는 뭐 먹고 있지?"라고 하던 그이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쌀을 씻어 불리고, 병아리 콩을 삶고, 마른 버섯을 불렸다. 냉동실에서 꽁꽁 언 채로 꿀잠을 자고 있던 시래기나물과 깻순도 꺼내서 미지근한 물에 동동 띄워 녹이고 나서 가마솥에 쌀을 안치고 물을 적당히 부은 다음 삶아놓은 병아리콩을 얹었다. 그 위에 시래기나물과 깻순을 넓게 펴서 얹은 후 잘게 다진 당근과 불린 표고버섯을 넣고 시래기 영양밥을 지었다.




시래기 영양밥이 익어가고 있는 동안 양념장을 만들고 있다 보니 시집와서 식구들 끼니 맡아 지내느라 일생토록 친정나들이 한 번 제대로 못하셨다던 시어머니가 생각나고, 우릴 위해 외박 한 번 하지 않았던 친정엄마도 생각이 났다. 그땐 그것이 당연했다는데, 진짜 그랬다는데....... 지금으로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얼마나 친정에 가고 싶었을까? 얼마나 친정식구들을 만나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 밟고 지내던 친정집 앞마당과 뒷마당을 얼마나 밟아보고 싶었을까 말이다.


시래기 영양밥이 고소한 냄새를 뿜어내며 익었다. 나 없이 그이가 홀로 먹을 시래기 영양밥을 한통 두통 담아서 식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반찬도 눈에 잘 보이도록 유리 용기에 담아 넣어두고, 침대 위의 시트도 더 가지런히 한번 더 단속해 두고, 중간중간 끓여먹을 차도 이것저것 챙겨서 식탁 위에 꺼내놓고 언니를 만나러 동생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 아내의 외출은 이다지도 단순하지가 않다.


집을 떠나가서는 또 여기 일은 다 잊고 언니랑 동생이랑 둘러앉아서 손톱에 발갛게 봉숭아 물을 들이며 "하하 호호 까르르" 거릴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인지, 이제야 철이 들어가는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침 출근길에 "나는 걱정 말고 재미있게 놀다 와."라고 말건넴 하던 그이의 말을 깃대 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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