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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도감자 Oct 04. 2024

뜨거운 것이 좋아! 대만의 도시락 문화

대만은 도시락은 문화가 발달한 나라인데 대만의 도시락은 삐엔땅便當 이라고 한다. 한국과 다른 것은 우리는 도시락을 생각하면 집에서 싼 도시락을 떠올리는 반면, 대만에서 도시락은 거의 사 먹는 음식이다.  


대만의 집은 한국에 비해서 부엌이 굉장히 작은 경우가 많다. 특히 도시의 집은 더 그렇다. 날씨가 덥고 습하기 때문에 요리를 해 먹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맞벌이 가정이 표준적으로 자리 잡아 집에서 요리를 아예 안 해 먹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대만은 아침 식사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아침식사를 파는 식당들이 많다. 대만에서는 아침에 도시락가게에서 줄을 서서 도시락을 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만사람들이 다른 음식이 아닌 도시락을 사는 이유는 적당한 가격에 밥, 메인음식(고기 혹은 생선) 하나와 반찬 3,4개를 직접 골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밥에 반찬을 올린 도시락을 파는 걸 보고 신기했던 적이 있다.

가게에서 주는 종이 용기에 담아 도시락을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본인이 직접 가져온 도시락 용기에 담아 가는 사람도 많다.


그가 처음 내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하고 며칠 뒤에 새로 도시락통을 주문하길래 나는 사지 말고 그냥 집에 있는 밀폐용기에 싸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괜찮은 도시락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속으로 굳이 필요 없는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귀여운 도시락통이 하나 있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그렇게 그가 싸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 지 이틀째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가 주문한 도시락통은 칸이 나뉘어있어서 도시락통 안에 밥과 과일을 다 담기에 충분했는데 그는 도시락통 한쪽을 남겨서라도 과일은 다른 용기에 싸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과일에 음식 냄새가 밸까 봐 그러는 줄 알고 그에게 과일을 따로 싸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음식 냄새 때문이 아니라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울 때 과일이 같이 데워지면 안 되지 않냐 말했다.


오잉

"도시락 안 데우는데"

그는 깜짝 놀랐다.

"응?? 그럼 계속 차가운 도시락 먹은 거야?"

좀 식긴 했지만 차갑지 않았다. 그냥 미지근할 뿐이었다. 괜찮다는 내 말을 듣고도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과실에 전자레인지가 없어?"

"아니 전자레인지 있는데 굳이 안 돌려 먹어도 돼. 막 뜨겁게 안 먹어도 되는데? "

그러자 그는 밥은 뜨겁게 먹어야 한다며 누가 식은 밥을 먹냐고 그런 차가운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고 했다.

내가 그냥 그 소화가 안된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냐고 되묻자 그는 "그냥.. 그냥... 식은 밥은 원래 먹으면 안 되는 거야!"라고 했다. 여름에도 에어컨 속에서 뜨거운 물을 마시는 대만사람다웠다.


그러다 겨울이 다가오자 그가 말했다. "이제 슬슬 추워지는데 보온도시락을 사야 될 거 같아."

나는 그가 원래 싸주던 도시락이 가볍고 좋기도 하고 너무 뜨겁게 먹는 것도 안 좋아하기에 그냥 원래의 도시락에 가져 다니겠다고 했다. 그가 안된다며 여러 번 옥신각신하고 나서, 우리는 보온가방을 사서 원래의 도시락통을 넣어 다니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한 번은 대만에서 그의 어머님 회사에 가본 적이 있었다.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한잔 하며 어머님과 얘기 중이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섰다. 무슨 줄인가 했는데 직원들이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앞쪽에는 전자레인지가 네다섯 대 있었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는 모든 직원들이 가져온 도시락을 뜨겁게 돌려 먹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만에 가면 항상 편의점을 들러서 이것저것 먹어보는데, 한 번은 다른 손님을 따라 죽을 산 적이 있었다. 내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직원이 계산을 하자마자 바로 가져가더니 죽을 데워줬다. 괜찮다고 말할 새도 없었다.

그렇게 데워진 죽은 어찌나 뜨거운지 김이 아주 펄펄 났다. 손을 몇 초만 데고 있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대만 사람들은 그렇게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도시락을 먹고 다니니 내가 전자레인지에 안 데운다고 했을 때 그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구나 싶었다.

가끔씩 그가 국이나 죽을 먹는 걸 보다 보면 놀란다. 누가 봐도 마그마의 상태인데 그냥 꿀떡 삼키기 때문이다. 나도 국밥을 먹는 한국사람으로서 뜨거운 국물엔 면역이 되어있다고 자부했는데 그 레벨이 아니었다. 대만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고 별로 안 뜨겁다고 하는 것은 한국사람이 음식을 권유하며 별로 안 맵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만약 대만 친구가 죽을 권하며 별로 안 뜨거우니 지금 먹으라고 한다면 속지 말고 여러 번 불어 식혀먹어야 혀가 무사할 것이다.  



무생채, 백용과, 돼지갈비튀김덮밥排骨飯, 오이절임

대만의 도시락은 흔히 밥 위에 메인 음식을 올리고, 그 옆에 반찬을 겹쳐서 싸주는 식이다. 대만사람들은 반찬이 섞이는 걸 크게 개의치 않아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가 초반에 싸준 도시락 사진을 보면 밥 위에 고기들이 다 올라가 있다.

그러다 그가 도시락을 싸는 한국 유튜버 영상을 보다 한국에서는 밥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밥과 반찬을 따로 싸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렇게 고기를 밥 위에 올려주면 시간이 지나며 양념이 밥까지 배어서 더 맛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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