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
20대 초반에 나는 가슴속에 박힌 화를 풀어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나의 화는 내 유년시절에서 비롯됐다.
그러던 도중 20년 봄에 학교 상담센터에서 당분간 상담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니 심리적으로 접근이 쉽다고 많이 신청하라고 홍보를 했다. 왜인지 그 공고문이 눈에 들어와 일주일에 하루, 50분간 심리상담을 하게 되었다.
처음 상담을 받기로 했을 때 내가 그에게 앞으로 심리상담을 하기로 했다 말하니 그는 내가 그런게 왜 필요하냐며 굉장히 놀랐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 복지 차원으로 해주는 거니 그냥 한번 해보려 한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자잘한 스트레스가 있어 마음이 더 편해지려고 받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상담은 생각보다 훨씬 큰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고, 매주 상담이 있었던 날이면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잠에 들었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자다 밤늦게 깨는 나를 걱정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본인의 부모님에 대한 불만을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고 다른 가족 흉을 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종종 순진한 그에게는 내가 너무 약았다고 느꼈다.
그는 나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감자 기분이 나아질까?'라고 자주 물었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위해 노력한다는 개념이 낯설게 느껴져 뭐라 대답해야 될지 몰랐다.
그는 도시락을 항상 보온가방에 넣어줬는데 가끔은 보온가방을 열어보면 도시락 위에 접어놓은 편지가 있었다. 주로 내가 과외를 가는 날에 들어있었다. 내가 학교 갔다 과외하러 가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줄 아는구나... 싶었다.
양심이 찔렸지만 그가 쓴 편지를 읽는 게 너무 좋았다. 그의 편지는 감동적이면서도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다.
나는 그와 반년을 같이 지내며 야식의 세계에 입문했는데 우리는 야식을 먹으면서 맥주를 한두 캔 씩 즐겼다. 그는 내가 지쳐 보이는 날 맥주 한잔 하자는 말을 많이 했는데 특히 상담이 있는 날에 그랬다.
그가 야식메뉴로 자주 만들어주는 음식은 닭발이었는데 대만식 닭발을 먹어보니 한국닭발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가 어느 날 요리를 하다 대뜸 말했다. 한국은 정말 살기 편한 나라야.
내가 왜? 하고 되묻자 그는 대만은 닭발에 발톱이 다 달려있어서 닭발 요리할 때 일일이 가위로 발톱 잘라야 되는데 한국은 발톱이 잘린 채로 파니깐 너무 편해라고 말했다. 발톱이 달려있다고....? 갑자기 대만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한 번은 그가 아침에 냉장고를 뒤지다 물었다. 감자야 도시락으로 닭발 먹는 건 좀 창피하지?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무 좋아!!!!
하루는 데면데면하던 동기가 닭발을 뜯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거 맛있어?
응! 대만식인데 약간 동파육 양념이랑 비슷해.
오 그렇구나...
먹어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가 한참일 때라 조심스러웠다. 옆에서 계속 지켜보길래 혹시나 하고 물었다.
하나 먹어볼래?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를 잡고 먹었다. 맛있다고 하나 더 먹고 싶다고 하자 거기 있었던 다른 여자 동기들이 다 몰렸다. 그날 집에 가서 남자친구에게 동기들이 닭발 하나씩 잡고 뜯었다 말해주니 뿌듯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