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에게 대만남자를 만난다고 처음 말했을 때 엄마는 예상외로 굉장히 쿨했다. 사진을 보더니 인상이 좋다며 한번 데리고 오라고 할 뿐이었다. 오히려 동생들이 내가 외국인과 국제장거리 연애를 시작한다는 것에 걱정을 하자, 엄마는 마음이 있으면 다 잘 만날 수 있다며 국적이나 거리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열려있는 사람인 걸 예상하지 못했어서 엄마의 반응이 신기했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꽤 시간이 지난 어느날, 나는 엄마에게 여름방학 때 남자친구 고향으로 2주간 여행을 가려고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엄마는 남자친구의 본가에서 자는 거냐 물었고 나는 인사는 가겠지만 남자친구와 나는 숙소를 따로 잡아 그곳에서 잘 거라고 말씀드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몇 분 뒤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 전화는 딸의 순결이 아직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남아 있을 리가..
벙찐 순간에서 벗어나자 이 질문을 위해 굳이 다시 전화를 건 엄마가 웃겼다. 내가 계속 웃자 엄마는 말했다.
"엄마 지금 진짜 진지해. 너 정말 이미 잔 거야?"
"당연하지. 만난 지가 몇 달짼데 아직도 안 잤을 거 같아?"
그러자 엄마가 충격받은 듯 말했다. "너 엄마한테 그 말을 그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어?"
오잉 "왜 못해?"
정적이 흐르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엄마말은... 남자친구라도 함부로 자고 다니지 말라는 거야!"
자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자고 다니지 말라는 건 뭐야. 내가 남자친구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는 줄 아는 건가. 우리 집에서만 자는데...
"엄마도 아빠랑 연애했을 때 잤을 거 아니야." 그러자 엄마는 절대 아니라며 요즘 애들 같은 줄 아냐 타박했다. 아빠랑 학생때부터 연애하고 결혼했으니 당연히 잤을 줄 알았는데! 엄마 꽤나 고전적인 여자였군...
그러다 어느 날은 아빠랑 둘이 등산을 갔다. 가도 가도 정상이 한참이어서 얘기가 끝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빠가 옛날에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을 때 엄마랑 한라산을 등산한 얘기를 막 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결혼 전에도 등산을 하러 엄마와 지방을 여러 번 다녔다고 했다.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아빠, 엄마랑 지방에 등산 가면 그래도 하루 자고 갔지?"
"응 그럼~ 내려가는 시간이 있는데 기왕 온 김에 구경도 할 겸 2박 3일은 있다가 왔지."
"그럼 그때 숙소 같이 썼어?"
"당연하지."
"그럼 그때 엄마랑 손만 잡고 잤어?"
그러자 아빠는 엄청 웃었다.
"야! 지금 나이 든 사람들도 예전에는 다 젊었어. 젊을 때는 에너지가 많은데 어떻게 손만 잡고 자..."
그랬다. 엄마는 결혼 전에 아빠랑 잤다! 그것도 등산을 여러 번 갔으니 한두 번 잔 게 아닐 것이다. 어쩌면 국제 장거리로 연애하는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잤을 수도 있다.
몇 년이 흐른 뒤 엄마에게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에 잠옷을 입고 집에서 편하게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사진이 아늑하다 생각했지만 엄마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엄마는 그 사진을 보고는 또다시 내가 결혼 전에 남자친구와 잤다는 사실을 한번 더 구박하셨다. 이때다.
"엄마! 저번에 들으니깐 아빠가 결혼 전에 엄마랑 잤다던데!"
엄마는 정색을 했다. "아니야 그런 적 없어."
나는 집요했다. "등산 갔을 때 물어봤는데 지방에 등산 가서 여행하다가 지방에서도 잤다는데!"
엄마가 경악했다. 약간 뭉크의 절규 같았다.
엄마는 애써 가담듬고 말했다.
"엄마는 사귀면 결혼하는 거고 이 남자가 내 인생의 남자라는 확신이 있었어. 그리고 적어도 대학은 졸업하고 잤지. 요즘 애들처럼 그냥 사귀다 자고 좀 안 맞으면 헤어지고 이런 게 아녔어."
이건 나도 좀 억울했다. 나도 남자친구와 평생을 함께 할 거라는 마음으로 만나는 건데.. 내 마음을 말하자 엄마도 더는 뭐라 하지 않으셨다. 다만 딸에게 진실을 밝힌 남편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었다.
아빠 미안...
남자친구에게 이 얘기를 하니 그는 이 얘기가 재밌는지 굉장히 신나했다.
대만은 부모님이 아들이든 딸이든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써. 우리 엄마도 그 제주도 가는 비행기 타던 날 나한테 피임 잘하라고 하셨어.
왓?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가족들과 서울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나와 마주친 후 예정되어 있던 제주도행에 함께 하지 않았다. 그는 공항에서 가족들을 배웅하고 서울에 남아서 나와 시간을 보냈었다.
뭐? 그럼 어머니께서 나랑 너랑 만난 지 3일 만에 잔 줄 아시는 거야?
"아마 그러셨으니깐 피임얘기가 나왔겠지?"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빨리 지금 가서 정정해!
그러자 그가 웃었다. "대만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니깐?" 나는 진심으로 그런 오해는 받기 싫었다. "아냐 아냐 지금 전화 끊고 빨리 어머니께 전화해서 그런 일 없었다고 말씀드려!“
나는 심각했는데 그는 이 상황이 웃긴 듯했다. "감자가 어머님이 보수적이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감자도 보수적이야. 우리가 만약 그날 잤다고 해도 그 뒤에 잘 만나고 있는데 뭐 어때? 대만에서는 먼저 자보고 잘맞아야 사귀는 애들도 꽤 많아."
내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처럼 엄마의 눈엔 내가 그렇게 보였다고 하니 충격적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와 잤다고 나를 몇번이고 구박한 엄마를 아주 조금은 이해했다.
땅콩과 참깨소스의 비빔면인 마장면은 아마 한국인의 입맛에 제일 잘 맞는 대만음식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친구들에게 먹여봤을때 반응이 제일 좋았다. 그는 파스타면 종류 중에 카펠리니면을 좋아하는데 카펠리니면은 천사의 머리카락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만큼 보통 파스타면보다 가늘다. 도시락으로 파스타를 싸줄 때는 삶은 면에 먼저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그 위에 소스를 부어주는데 마장면도 그렇게 싸준다. 로스햄과 오이, 당근과 함께 비벼먹으면 너무 고소하다.
카프레제 샐러드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샐러드여서 자주 만들어 먹는다. 후추를 살짝 뿌리면 더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