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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도감자 Aug 26. 2024

대만 남자친구의 한국어 습득기

놀부가 왜 씨를 뿌려?


 연애 초반에는 그와 영어로만 대화했다. 그러다 연애가 지속될수록 우리 대화에서 한국어 비율이 점점 늘어났다.

나는 언어에 재능이 없는 편이다. 한국어조차 제대로 못해 뭘 쓰고 말해도 늘 어색하다. 그에 반해 그는 소위말해 귀가 트여있었다. 내가 내뱉는 짧은 한국말이나 길에서 들은 여러 소리들을 듣는 족족 바로 습득하는 재능이 지녔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감탄하여 언어 센스가 좋다고 칭찬하곤 했는데 그는 칭찬받는 게 좋았는지 자신이 익힌 한국어를 자랑하는 걸 즐겼다. 그는 한국어로 나를 놀라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웃기기도 했다.


 한 번은 카페에서 주문을 기다리는데 우리 바로 앞사람이 기프트콘 잔액 환불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폭언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며 직원이 힘들겠다 싶었는데 웬걸.. 우리 차례가 되니 그 직원은 우리한테 기분을 풀고 싶었는지 짜증을 내며 굉장히 무례하게 주문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내민 카드도 낚아채듯이 사납게 가져갔다. 그 황당한 상황에 '왜 여기다 화풀이야' 라고 생각하며 남자친구를 보았는데 그는 왜인지 신나는 표정을 하더니 입술을 씰룩였다. 그리고 주문 후 자리에 앉자마자 나를 보며 말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그러고는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아... 그는 무례고 나발이고 직원이 짜증 낸 순간 본인이 아는 한국 속담을 뽐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냥 기뻤던 것이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왔고 이런 일은 남자친구가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계속 반복되었다. 가끔은 한창 소리를 내서 깔깔 웃어야 웃음이 멈출 정도였다.


 한창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을 때, 우리 매일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리며 이 시기를 흘려보내지 말고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며 여러 공부를 해보자 다짐했다.

그러던 와중 그가 비장하게 말했다. "나 한국어를 좀 본격적으로 배워볼래." 그는 그 말을 하고 며칠뒤 한국어 학원에 등록하여 하루에 50분 수업을 두 개씩 듣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복습하는 시간까지 하루 3시간 가량을  한국어 공부에 쏟았다.


 빠르게 발전되는 그의 한국어 실력에 나날이 놀라던 어느 날, 그는 한국어를 좀 더 빠르게 익히는 방법이 없을까 물었고 나는 미국 시트콤 프렌즈가 떠올랐다.

어릴 적 프렌즈를 쉐도잉 하며 영어 회화 실력을 늘렸는데 그때가 내가 유일하게 영어공부를 즐기면서 했던 경험이었다. 그에게 한국이나 드라마를 쉐도잉 하는 방법을 권했고 그도 흥미를 느끼는 듯 했다. 적합한 예능 프로도 골라주었다.


 그런데 처음엔 쉐도잉을 열심히 하며 자랑하더니 얼마 뒤부터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효과가 없었는지 이유를 묻자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감자야. 네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한국 드라마나 예능에는 비속어나 욕설이 너무 많이 나와. 나는 어른이 써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고 생각해. 20세가 넘은 성인이 마치 초등학생처럼 말하는 건 듣기가 불쾌하더라고. 그 후로 쉐도잉은 그만두고 매체로만 즐기기로 했어.


 할 말이 없었다. 한국 드라마 때문이 아니라 내 언어습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쓰는 말버릇. 미친, 개오바 등등 내가 이렇게 섬세한 내 연인에게 나쁜 말을 들려주었다는 게 너무나 창피해졌다. 그때의 대화는 꽤나 충격이었기에 처음으로 나는 이제부터는 정제된 언어를 쓰며 나잇값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신조어나 비속어를 쓰는 걸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며 알게 된 여러 단어들을 내 옆에서 뱉었다. 곡선이 아름다운 건물을 보며 수려하다고 표현하고, 어떤 공원을 회상할 때 목가적이어서 좋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음성을 들으며 이따금씩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되었다.  



 지금 그는 한국말을 꽤나 잘한다. 일상 대화는 크게 어려움이 없고 비즈니스 레벨로 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남자친구는 한국어 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오자 각종 한국 매체, 한국 정서, 한국 역사 등을 빠르게 습득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밀과 보리가 자라네'라는 동요를 듣고 그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 노래는 한국 최고의 노래라며 요리를 할 때면 밀과 보리 자리에 온갖 식재료를 넣어서 개사하였다. 만약 그날 또우장(대만식 두유요리)을 만드는 날이면 그 노래 가사는 콩과 보리가 됐고, 루로판(대만식 돼지고기 덮밥)을 만드는 날이면 밀가 돼지가 자라는 노래가 됐다.


 그러다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그가 요리를 하며 그 노래를 부르는데, 수도 없이 들은 노래가 그날따라 뭔가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놀부가 씨를 뿌려~ 흙으로 다시 덮어~

내가 물었다. "왜 놀부가 씨를 뿌려?"

 그는 놀부가 주걱으로 얻어맞은 사람이 아니냐 물었다. 난 그가 흥부와 놀부를 읽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오류는 바로잡아야 했기에 주걱으로 맞은 사람은 흥부고, 놀부는 흥부의 형이며, 흥부를 때린 사람이 놀부의 아내라고 똑부러지게 알려줬다. 남자친구는 잠깐 헷갈렸다며 '가난한 건 흥부, 놀부는 부자'를 되뇌더니 놀부를 흥부로 수정하여 다시 노래를 불렀다. 나도 하나 알려준 게 신나 같이 불렀다.

~흥부가 씨를 뿌려~ 흙으로 다시 덮어~

 이 노래를 부르며 그가 한 번은 왜 같은 집안의 형제끼리 이렇게 빈부의 차이가 컸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조선의 장자상속 개념을 설명해 주었다. 꼬치꼬치 물어보길래 한국사 자세히 모르는거 티날까봐 대충 얼버무렸다. 또 하루는 놀부가 소작농을 둔 지주였을거라는 이야기를 하다, 그가 일본과 미국이 관여해 소장농과 자작농의 비율이 급격히 변화했던 대만의 20세기 농지개혁사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흥부가 씨를 뿌리는 노래를 100번 정도 부른 뒤의 어느 날이었다. 그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감자야! 씨를 뿌린 건 흥부가 아니었어!" 오잉 그럼 누구란 말이지.. 내가 물었다. "그럼 진짜 놀부가 씨를 뿌렸단 말이야?" 남자친구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니! 씨를 뿌린 건 바로 농부였어. 감자는 이제 나한테 한국말 배워!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놀부가 아닌 이유에 대해 그렇게나 설명했는데! 그 뒤로 남자친구가 한국에 관해 무언가를 물어볼 때면 검색창에 먼저 확인받고 알려주는 버릇이 생겼다.

그는 수도관에서 김이 펄펄 나던 일본 공원을 목가적이라 했다. 매우 붐비는 곳이었기에 뜻을 잘못 알고있나 했는데 알고보니 추억속 그의 평화로운 할머니 댁이 시골 온천마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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