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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도감자 Aug 25. 2024

대만 남자와 양파장아찌

매년 4월이면 햇양파를 찾는 남자의 사연

그가 낯선 나라에서 양파장아찌를 담그게 된 건 2019년의 여름이었다. 그와 연애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난 후였다. 하루는 식사를 하고 나와 걷는데 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랑 같이 식사하는 게 불편해?

나는 그때까지 스스로 내가 그렇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해서 왜 그렇게 묻냐 되물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식사할 때 널 쳐다보면 네가 먹던걸 멈추고 수저를 내려놔. 그리고 평소에 네가 메신저로 보내준 음식 사진을 보면 분명 양껏 먹었던데 나와 함께 식사할 때는 0.5인분도 못 먹어.’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그는 내 모습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넌 마치 코난 같구나... 

나는 그제야 내가 그 앞에선 양껏 음식을 못 먹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그는 잘 먹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는데 내가 내민 ‘부끄러워서 ‘라는 이유를 듣고 넘어가주지 않았다. 그 부끄러운 감정의 기저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그 자리에서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으니 지금 생각해 볼게! 하고는 그 자리에서 원인을 찾아보았다.


왜 나는 남자친구 앞에서 잘 먹지 못했을까? 평상시에 나는 1인분의 식사를 남김없이 끝내고나서 커피에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어야 한끼를 충족했다 여긴다. 그런데 왜 남자친구 앞에서는...?

먹다 입 주변에 무언가가 묻거나 치아 사이에 고춧가루 같은 게 끼면 추접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첫 번째.

또 나는 맵거나 뜨거운 걸 먹을 때 콧물이 잘 나는 편이다. 유치하지만 난 내 먹는 모습이 그다지 예쁘다 생각하지 않았고 그에겐 깔끔하지 않은 얼굴을 보일까 봐 편하게 식사를 못한 것이었다.


남자친구는 내 말을 들으며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을 했다. 그는 반대로 본인이 뭘 묻히면서 먹으면 자기가 싫어질 거 같냐고 물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 했고 그는 본인의 마음도 나와 같지 않겠냐 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만나면 1인분 먹는 연습을 하자고 했다. 이어 대만 여자들은 남자친구 앞에서 트림도 하고 방귀도 빡빡 뀌어서 네가 조금 더럽게 먹는다고 싫어질 일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그렇게 10번만 성공하면 감자도 이젠 편하게 식사하지 않을까? 난 네가 나 때문에 편하게 못 먹으면 미안해서 나도 밥 못 먹어."


그다음 날부터는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는 남자 친구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도 꾹 참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왜인지 부끄러움을 넘어 가끔은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먹다 보니 적응이 됐다.

면류나 찌개는 쉬웠다. 쌈 싸 먹기는 먹기전에 호들갑이 떤게 무색하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닭다리를 손으로 들고 먹는 건 좀 더 힘들었지만 발골을 대충 하니 할만했다.

마지막 단계는 쪽쪽 빨아먹는 간장게장이었다. 생각보다 더 힘들어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어쨌든 성공한 후엔 남자친구와 ‘이제 극복한 거 같아!’ 라며 마냥 신났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내가 단순히 내 먹는 모습만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삼겹살집에 간 날이었다. 남자 친구는 그 당시 처음 먹어보는 양파장아찌가 너무 맛있다며 감탄했다. 나는 남자친구가 한국음식을 잘 먹으면 덩달아 신이 난다.

그치? 이거 엄청 맛있어! 하며 양파장아찌로 가던 내 젓가락이 순간 멈추었다. ‘잠깐... 이거 먹으면 입에서 양파냄새 엄청 날 텐데..’

왜 안 먹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별로 안 좋아한다며 너 다 먹으라 했다. 하지만 그는 내 표정을 읽는 남자다.


“솔직히 말해봐. 너 양파를 신나게 집으려 하다 멈췄어. 왜 양파를 안 먹는 거야?”

아냐 진짜 안 좋아해! 솔직히 말해봐!

옥신각신 반복하다 털어놓았다. 이거 먹으면 입에서 양파 냄새날까 봐 못 먹겠어!

그는 가지가지하는 여자친구를 비난하지 않고 자기도 먹었으니 나도 먹어서 같이 입냄새를 풍기자 제안했다. 그 말을 듣고 아마도 나는 양파를 열심히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나는 양파장아찌를 너무 좋아해서 음식점에 오면 리필하곤 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리필은 두 번 정도 하면 눈치가 보이니 더는 안 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양파장아찌를 먹음으로 인해 냄새까지 극복했다고 난 이제 그의 앞에서 못 먹는 음식이 없을 거라며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연애하면서 내가 뭘 그렇게 좋다고 열심히 먹은 음식은 양파장아찌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가 대만으로 돌아가고 며칠 뒤 문자가 왔다.

I'll take charge of your onion forever

알바중에 이 문자를 확인하고 무슨 말인지 헤아리려 애썼다. 그때 당시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기에 가끔은 서로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었었다. 평생 내 양파를 책임진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알바가 끝나자마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양파가 뭐야? 그는 말했다.

네가 삼겹살 집에서 양파장아찌를 좋아하는데 이건 음식점에서만 먹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랬잖아. 그런데 찾아보니까 만드는 거 간단하더라고. 앞으로 내가 만들어줄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한 부분은 내가 말한 기억도 없는 부분이었다. 지나가며 한 말이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먹고 싶은 거 못 먹는 게 싫다며 앞으로 자기가 양파장아찌 공장이 되겠다는 말을 사뭇 진지하게 했다. 글로 쓰며 반추해보니 조금 웃기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눈이 뜨거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보고싶었는데 날 생각해 주는 마음이 전해져 그가 너무 그리웠다. 길바닥에서 울 수는 없단 생각으로 눈물을 참았다.


그 후로 그는 정말 양파장아찌를 열심히 만들었다. 한국에 오는 2박3일에 짧은 기간동안 내 자취방에서 양파만들기는 루틴이 되었고

강원도 본가에 갔을때도 양파를 사서 만들어놓았다. 대만에서도 양파장아찌  만들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처음 양파장아찌를 만들었을 때 그는 열아홉이었지만 웬만한 반찬가게 뺨치는 맛의 양파장아찌를 만들어냈다. 그때 내가 찍은 그의 사진을 보면 양파를 써는 손마저도 애기같이 뽀송하다.


그는 냉장고가 작은 나를 위해 소량씩 자주 만들어주었는데 오래 먹으려면 보존이 돼야 한다며 야무지게 월계수 잎도 넣어주고 갔다. 하지만 나는 보통 맛이 들자마자 일주일안에 먹어치웠다

그는 다년간의 양파장아찌 생산을 통해 양파장아찌 도사가 됐다. 양파는 장아찌 중에서도 맛이 금방 드는 채소였다. 만든 지 2~3주부터 맛이 드는데 1/4등분을 하면 열흘뒤부터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아찌용 양파와 저장용 양파가 다르다는 것, 양파도 암양파 수양파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고, 양파를 다듬을 때는 뿌리를 아주 조금만 도려서 뿌리 부분이 붙어있어야 깔끔하게 보관된다는 노하우도 익혔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내 곁에 그는 없었지만 그가 남기고 간 양파장아찌가 있었다. 한파가 가시고 슬슬 날씨가 따듯해지면 그는 어김없이 양파 얘기를 했다.

곧 햇양파가 나올 텐데..

남들은 봄소풍이나 봄꽃을 떠올릴 때 그는 수분기가 많은 햇양파를 떠올렸다.


그가 유리용기를 열탕소독하고 양파를 깨끗히 손질하는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가끔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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