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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 Dec 24. 2019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함께해서 좋은 '친구'

15년의 세월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

30대 중반을 향해는 가는 나에게 '친구'는 나를 항상 학창 시절에 머무르게 하는 존재다. 



하하호호 잘 웃고, 타인에게 잘 맞춰주는 나였지만, 30대가 넘어가고, 내가 생각한 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고,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라는 것을 점점 알아가다 보니 이제는 하루에도 웃는 시간이 점점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없어졌다. 일부러 스마트폰을 검색하며 귀여운 동물영상이나, 웃긴 동영상을 검색해서 웃을 일을 만들지 않으면 웃을 일이 잘 생기지 않는 무거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칙칙한 요즘 시대 속에서 이런 일은 나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긍정적인 마음을 무한히 선포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은 쉬어도 되고, 마음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이는 책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요즘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임은 틀림없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은 크게 별 볼 일도 없고,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놀라운 커리어도 없고, 나이도 팔팔한 20대를 넘어 숫자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웃는 일은 점점 희미해져 가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온 친구들은 이제 그냥 얼굴만 봐도, SNS로 별일 아닌 일상을 전하는 메시지만 봐도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오는 존재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떡진 머리,  아무 치장도 안 한 반질반질한 얼굴로 하루의 대다수를 함께 하고, 조마조마한 수능을 함께 하고, 만족스러운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꿈꾸던 첫 직장! 첫 사회인!이라는 명함을 단지 며칠 만에 눈물 콧물 쏟으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도 함께 느끼고, 30대가 되고 보니 잘 놀지도 못하면서 20대 때 후회 없이 잘 놀지 못한 것에 후회도 함께 하고, 그렇다고 일탈도 잘할 줄 모르면서 남들 하는 호캉스라는 것을 해보며 어른처럼 잘 놀았다고 뿌듯해하고, 맛집에서 행복해하고, 예쁜 카페에서 즐거워하고, 배부름에 짜증 내다가도 또 맛있는 음식 앞에서 고민도 함께 하고, 나이 들었다고 살 빼야 한다고 운동에 목매다가도 오늘만 먹자라고 계획도 함께 미루고, 새로운 도전을 앞두면 응원해주고, 남들에게 잘 치이는 성격이면서 친구가 치이고 오면 마음껏 함께 미워해주고, 위로해주고, 그렇게 술도 잘 못 먹고 시끄러운 곳 싫어하고, 너무 늦게 돌아다니는 건 피곤해하는 모범적인 내 친구들과의 10년이 훌쩍 넘는 별의별 일상을 함께 하면서 우리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고, 눈만 봐도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존재가 되었고, 함께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 너무 즐겁고 남부러울 것 없는 즐거움이 가득한 존재들이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아도 흥이 무한히 솟아오르고, 사회에서 말이 없던 나지만 친구들 앞에만 가면 절대 이해 못할 정도로 쉼 없이 수다쟁이가 된다. 노래를 못해도 불협화음으로 큰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못 춰도 시키지 않아도 흐느적거리고 장난도 많아지고, 그때 그 시절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그렇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점점 생일 케이크의 초가 늘어나면서 긍정적인 일들보다는 부정적인 일들로 인해 일상의 어려움들이 어깨를 짓누르고 책임감이 뒤따를 때가 많아진다. 그럴수록 친구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힐링의 시간은 눈 깜짝하고 지나갈 만큼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려 헤어지는 시간이 되면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2019년이 지나가는 아쉬움을 달래며 힐링의 시간을 함께하기로 친구들과 모임을 계획할 때가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즐거웠던 1박 2일이 끝나고 벌써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다가왔다. 왜 이렇게 나이가 들수록 즐거운 시간은 짧고 즐겁지 않은 시간들은 점점 더 길어지는 것만 같은지. 맘에 드는 일이 많지 않은 현재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동심을 잃지 않도록 내 곁을 함께 해주는 소중한 친구들이 함께 이기에 짜증 나는 일상들을 잘 견뎌내 본다. 



연말을 맞이하며, 넓은 인맥을 만들려고 아등바등 마음에도 없는 모임에서 마음을 낭비하기보다는 내 곁에서 내 마음의 동심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소중한 존재에 더 집중하는 행복한 연말이 되기를. 



나를 웃게 하는 내사람들 


탁한 세상 속에서 나는 점점 구겨져간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겉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점점 구겨져간다. 

나의 노동을 흡수한 탁한 세상은 점점 에너지가 샘솟고 

노동을 내어준 나는 낙엽 같은 지폐들과 함께 점점 구겨져간다. 


구겨진 주름이 너무 깊어져 견디기 힘들어지면 ‘친구’라는 이름의 내사람들을 찾는다. 


셀 수 없는 시간을 함께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추억을 함께 한 ‘친구’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구져진 나의 모든 것에 힘이 솟는다. 

활짝 핀 꽃이 여기저기서 향기를 내뿜는다. 

아련한 동심의 시절 깔깔대던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입가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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