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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 Sep 21. 2020

뜻밖의 위로

시험. 

꾸준한 시간을 들이고, 꾸준히 걱정하고, 꾸준히 불편한 시간을 쌓아 시험기간을 버텨내고 드디어 디데이 날이 되면 한없이 떨리고, 불안한 기운에 온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렇게 온몸의 세포들을 시험에 집중하여 수많은 시간의 노력을 단 몇 시간 만에  끝내고 나면 기운이 쭉, 빠지고 만다. 영혼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조금 더 공부할 것을, 조금 더 과감하게 문제를 풀어낼 것을, 조금 더, 조금 더, 아쉬움에 아쉬움이 더해지고, 허무함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며칠 전 중요한 시험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시험만 끝나면 이것저것 마음껏 해야지 마음먹었는데, 신기하게도 시험이 끝나고 나니 누구한테 이야기하면서 풀어내기에도,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기에도 마음이 내키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힘 없이 집으로 가는 계단에 섰는데, 저 아래에서 모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서 있었다. 평소에 고양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크게 애정을 갖고 있는 편도 아니고,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가려는데. 내가 다가가는데도 고양이는 꿈쩍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심지어 내가 가까이 가니 "야옹~야옹~"소리를 내며 관심을 끌었다. 신기해서 내가 쳐다보니 나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내 발을 밟을 듯이 다가오던 녀석은 그대로 머리를 내 다리에 기대며 애교를 피웠다. 길 가던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 도망가거나 경계 어린 눈빛과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많이 봤어도 스스로 다가와서 먼저 아는 척을, 아니 오히려 친밀하게 다가오는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시험으로 허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며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오르는 내 마음이 신기했다. 길 가던 고양이에게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은 것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 나도 모르게 나는 다시 에너지가 생겨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단순한 행동 하나에도 위로를 받는구나. 

하물며 일면식 없는 고양이도 이렇게 위로를 주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던가. 받고 싶은 마음만 커서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적이 많지 않은가. 단순하고 가볍게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말도 나에게 잘해준 사람에게만 되돌려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차가운 이분법적인 이기적인 관계를 맺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은 모든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어떤 부분은 감추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가면을 쓰기도 한다. 그러니 겉모습만 보면서 이기적인 관계를 맺어가기보다 누군가의 마음에 나도 뜻밖의 따뜻함과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처럼 힘든 이런 시기에는 더욱이! 

길냥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는지는 몰라도 지나가는 길에 단순한 행동 하나에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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