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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 Dec 31. 2020

정체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용기
(영화-두 교황)

[넷플내별:넷플릭스에서 내가 고른 두 번째 별]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실수를 한 뒤 그 실수를 통해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 변화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에 따라 사람의 영향력이 뻗칠 수 있는 방향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은 그 변화의 초점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경우를 너무 쉽게 만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이 있더라도 대의를 위해, 이런 사소한 일 하나쯤이야... 그렇게 하나 둘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만들어내기에만 바쁜 세상이 되어가다 보니 불평등과 이기심, 상처와 아픔이 이곳저곳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소리를 쳐도 그 소리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온기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일에서조차 그 구분이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못 하는 경우도 흔해지다 보니 희망과 기적이라는 긍정적인 삶의 영향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씁쓸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 실망을 너무 많이 해서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 두 교황을 보며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은 아닐까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따뜻하고 포근한 영화의 온기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저 두 노장이 대화하는 장면으로만 채워져 있는 이 영화를 보는데 왜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는 건지, 왜 이렇게 마음이 위로를 받는 건지, 한 장면도 지루함이 없는 건지,  실화의 힘이 대단한 걸까 영화의 힘이 대단한 걸까. 



영화 두 교황은 연이어 터져 나오는 스캔들과 자신이 대처해 왔던 방식에 대해서 후회를 느끼고, 성직자로서의 역할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져 버린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자진 표명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뒤를 잇게 되는 과정을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다. 보수적 원칙 하에 사랑을 실천하는 방식을 고수했던 베네딕토 16세와, 자신의 옛 잘못을 참회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 변화를 실천하는 프란체스코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우정을 쌓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장면 장면은 특별한 사건이나 결정적인 장면이 없이도 눈과 귀를 뗄 수 없이 다 매력적이다. 특히 실존 인물을 벤치마킹하며 외모부터 섬세한 제스처까지 실현해 내려고 노력한 두 배우의 고심은 고스란히 정성스럽게 느껴진다. 


"돌아보면 뚜렷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당시엔 모두 헤매기 마련이죠" - 영화 두 교황 中 베네딕토 16세 



사소한 실수부터 돌이킬 수 없는 실수까지 앞일을 알지 못하는 나약한 우리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과 걱정을 하고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이것저것 지식과 정보도 섭렵하지만 실수 없이 살아가기란 어렵다. 돌아보면 그때 어떤 선택이 가장 옳은 선택이고, 그때 이렇게 했다면 지금 이런 결과를 맺었을 거라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 당시에 그런 통찰력을 갖기란 참으로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헤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헤매는 과정이 항상 실수의 연속이어서는 곤란하다. 실수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으로 인해 또 더 나은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영화 속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신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신도 변화한다고 이야기한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그에 맞게 옳은 방향을 맞춰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인물에서 구정물로 정체되어 있지 말고 계속 흘러가는 맑은 물로 살아가라는 단적인 표현이 아닐까. 맑은 물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고인물에 안주해 버리는 실수를 너무 자주 저질러 버린다. 진짜 위험은 늘 내부에 있다는 프란체스코의 말에서 마음의 안일함에 빠져 실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본다. 



두 교황은 묵직한 주제를 두 인격체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서 대부분 표현하지만 그 방식이 무겁기만 하지 않고 농담과 유머를 통해 쉽게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게 스토리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어렵지 않게 집중할 수 있었다. 정체 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는 실수들을 어떻게 반성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답이 필요할 때는 이 영화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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