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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 May 10. 2021

심각함을 가볍게 볼 수 있는 시간 만들기

소중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세 친구

동서남북 위아래가 꽉 막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이렇게 여유가 없을 때는 모든 게 다 잿빛으로 보인다. 모든 상황이 다 힘들고 어려워진다.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준비를 하면서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1분 1초가 너무도 중요한 요즘, 나는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영화도, 책도, 만남의 순간도 모두 다 멀리하고 시간을 아끼고 또 아껴 썼다. 그런데 그렇게 아껴 써도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고, 불안감이 밀려왔다. 

조금만 조금만. 

불안할 때마다 조금만 견디면 된다고 나를 채찍질했다. 그러다 며칠 전 만남을 멀리하는 것이 공공연한 미덕이 되어 버린 요즘 흐름에 기대어, 나의 상황과 함께 핑계를 만들며 미루던 친구와의 만남을 더는 미룰 수 없어 약속을 잡았다. 서로의 일상이 있기에 우리의 만남은 단 4시간으로 한정했다. 그런데 그 4시간은 나의 모든 잿빛 시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고민의 무게도, 불안감의 무게도, 모든 것이 무겁고 스스로를 반성하기에 급급한 일상을 보내던 내게서, 힘들게 짊어지고 있던 곰 한 마리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홀가분해졌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밥 먹고 잠깐의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특별할 것 없는 그 시간이 너무나 힐링이었다. 심각한 순간을 잠시 떨어져 가볍게 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리틀 포레스트'가 있다. 혹자는 이상적인 농촌 판타지라고 보기도 하는데, 나는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세 친구의 자연스러움이 참 좋다. 스스럼없지만 서로를 아끼고, 서로에게 부담을 안겨 주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가 될 수 있는 세 사람의 관계가 보는 내내 편안하다. 혜원, 재하, 은숙이 함께하는 씬들은 각 캐릭터가 있는 그대로 살아 있다.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세 사람의 조화가 돋보인다. 그 점이 참 좋다. 

건강하고 사랑이 있는 좋은 관계란 그런 것 같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가 될 수 있고, 관계 속에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관계, 언제든 잿빛 시각을 전달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회 속에서 스스럼없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관계. 



가끔 보면 사랑한다고 아낀다고 말을 하지만 그 관계 속에서 정작 사랑도, 존중도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에너지만 소비될 뿐 마음에는 무의식적인 상처가 자리 잡는다. 사랑과 존중을 준다고 하는데 받는 사람은 전혀 느낄 수 없을 때 과연 그 관계는 건강한 관계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사랑과 존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쪽으로 치우쳐 건강하지 못한 관계는 힘든 일상을 더 힘들게 만들어 버리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요즘은 예상치 못한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만나는 시간 자체가 너무도 소중해졌다. 그 소중해진 시간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는 건강한 관계로만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힘든 시기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관계만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그런 존재로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며칠 전 소중한 만남을 통해, 오랜만에 다시 찾아본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마음에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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