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롤모델들의 향연
영화에게...
잠시 잊고 있었던 지혜, 용기, 절제를 아우르는 정의에 대해 곱씹어 보게 돼.
절대 반지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절대 권력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싶어 해.
며칠을 굶어 이성을 잃어 갈 때쯤 앞에 놓인 음식을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만큼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은 절대 반지 앞에서
어떻게든 이 반지를 파괴하여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때로는 실수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욕심을 절제하고, 두려움 앞에 용기를 내고, 지혜를 모으는 과정은 보는 내내
뭉클한 감동이 가시지를 않았어.
특히 나는 세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첫 번째는 '아라곤'과 '프로도'의 대화야.
다른 동료가 반지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는 것을 경험한 프로도는
도망치다가 아라곤을 만나고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치게 돼.
그 모습에 놀란 아라곤은 걱정스레 프로도에게 다가가고
프로도는 반지를 내밀며 아라곤에게 시험 아닌 시험을 하게 되지.
여기서 아라곤은 반지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을 절제하고
프로도에게 모든 충성을 맹세해.
그 모습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눈빛, 말투, 행동 모든 것이 완벽하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그 자체여서
이 장면을 얼마나 돌려 봤는지 몰라. (비고 모텐슨 배우에게 경의를:)
현실에서 사람을 믿는다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목격되는 것을 보면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세상 살기 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돼.
하지만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또한 공존하는 것 같아.
신뢰할 수 있는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타인이 어떤지에 따라 선택권이 주어지겠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된다는 것은 내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기에
그렇다면 내가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
'아라곤'처럼 되기에는 내 그릇이 한없이 작아 보이지만
적어도 노력하다 보면 나도 눈빛,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레
정의롭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진심으로 스며들어 있지 않을까.
두 번째는 프로도와 간달프의 대화야.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절대 반지 운반자가 된 프로도는
눈앞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고
이곳저곳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즐비한 가운데
앞으로의 여정마저 험난하게 다가오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망의 생각을 하게 돼.
그때 간달프의 말을 떠올리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그런 일을 겪게 된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럴 때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것뿐이지"
이 말이 정말 인상 깊었어.
나 또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나만 이런 방향으로 일이 풀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원망의 목소리를 냈던 적이 참 많거든.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
결국은 어떻게 해야 할지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나가며
모두가 살아가는 거지.
그렇지, 누가 봐도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속에는 어떤 고민이 들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일생이 내가 원하고 계획대로만 된다면
인생은 누구에게나 쉽겠지.
인생이 어렵다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거야.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은 이곳저곳에 서 있고
이런 상황은 내 권한 밖이지.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기에
항상 절제하고, 용기 있고, 지혜로운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
노력하다 보면 나도 정의로운 선택을 하며
제대로 살아가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겠지?
세 번째는 프로도와 샘의 대화야.
샘은 프로도가 길고 어려운 여정을 떠날 때부터 함께 한 친구야.
간달프와 '절대 프로도 곁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한 이후부터
어떤 상황에서든 재지 않고 그저 프로도 옆에 꼭 붙어 있지.
수영을 못해도 배를 타고 혼자 떠나려는 프로도를 향해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드는 샘.
그 미련하리만큼 약속을 지켜내는 이 친구를 보면서
나는 과연 현실을 살면서 이렇게 약속을 잘 지켜냈던가 돌아보게 됐어.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게 살아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 속에서
요즘은 약속을 등한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
한번 한 약속은 우직하게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
현실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겠으나
옳은 가치 앞에서는 이 우직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제발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영화를 보고 나서도 또 보고 싶은 정말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