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더라도,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면 충분하다
"무지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물리적인 위치가 없다.
어떤 특정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햇빛이 공기 중의 물방울을 통과하면서 꺾이고, 반사되고, 다시 굴절되면서 만들어지는, 그 순간, 그 각도에서만 생기는 시각적인 환상이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시각적 착시이다.
그래서, 눈으로는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달할 수 없다.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각자 보는 위치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 무지개의 시작점을 찾으려고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무지개가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지개를 보면 사진을 찍고, 잠시 멈춰 바라본다.
나도 무지개에 관한 사실을 알았지만, 여전히 무지개가 보이면 핸드폰을 열고 카메라를 킨다.
보이지 않더라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의미가 된다.
회사 생활도 비슷한 것 같다. 회사에서 무지개 같은 순간은 분명 찾아오지만, 보통 티가 나지 않는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신입 사원 2명이 입사하게 되어 그들의 멘토링을 맡았다.
기존에 맡았던 업무와 우연히 겸하게 된 TF팀의 업무, 아직은 팀의 막내 포지션에서 수행해야 했던 각종 사소한 업무, 신입사원 멘토링까지. 매일 일에 치이며 바쁜 나날을 보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고단하게 느껴졌던 하루가 있었다.
그날은 평소처럼 바빴지만 평소보다 유독 지치는 하루였다.
회의는 계속 이어지고, 아이디어는 생각나지 않고, 행동 끝에는 후회만 남고, 어쩐지 실수가 반복되어 스스로 자책하게 되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조금은 늦은 시간에 퇴근하게 되었는데, 문득 바라본 하늘에 있는 달이 너무 예뻐서, 그 순간 어쩐지 내 하루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성과도, 포상도, 기록되는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그건 어쩌면 나만 볼 수 있었던 그날의 무지개였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의미는 가시성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남이 알아줘야 의미가 있다"라고 착각하곤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정 욕구가 그렇게 착각하게 만들곤 하지만, 사실 진짜 힘든 날에 나를 붙잡아주는 건, 누구도 몰라주는 작고 사적인 순간들이다.
출근길에 문득 접한 울컥하는 위로의 가사와 멜로디,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잘 정리한 슬라이드 한 장,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 있겠지만, 내겐 무지개처럼 깊게 스며든 순간들이다.
무지개는 굴절된 빛으로 생긴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꺾이는 순간들, 실패처럼 느껴지는 굴절의 날들이 오히려 내 안의 진짜 색을 만들어주는 빛이 된다.
빛이 굴절되었기에 무지개가 생기듯, 마음이 흔들렸기에 위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무지개는 본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록되지 않아도 내가 의미 있다고 느낀 순간이라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의 칭찬, 인정, 평가와 같은 외부의 기준보다는 내가 마주한 무지개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고자 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게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