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엔 세포 보다 미생물이 더 많다

타인의 흔적이 나를 만든다

by 서하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약 30조 개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은 약 39조 개 이상이다. 인체 세포 수의 약 1.3배에 달한다.

말 그대로, 우리는 나 자신 보다 ‘남’이 더 많은 생명체다.

위나 장, 피부까지, 어떻게 보면 우리는 타인으로 이루어진 생태계인 것이다.




이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땐, 약간 징그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내 몸인데, 내 것이 제일 많지 않다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오롯이 독립된 존재라고 믿고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변해나가고 성장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직장에서 티타임을 하며 나눈 짧은 안부 인사 한 마디,

지하철에서 우연히 듣고 웃은 재미있는 이야기,

친구의 고민을 듣고 나서 생긴 생각들,


이런 작은 순간들이 내 안에 쌓이고 쌓여서, 내가 자각하지 못한 사이 내 감정과 생각을 조금씩 움직이게 만든다. 즉, 내가 나를 이룬다고 생각한 그 자리엔 이미 타인의 자취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절친한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친구의 말투와 리듬이, 이제는 내 말투에도 남아 있다는 것을

마치 오래 입은 옷처럼, 어느샌가 익숙해져 버려서 분간도 되지 않던 흔적들을 되돌아보면,

나를 만든 건 내가 아니라 부모님, 연인, 친구, 직장 동료, 낯선 사람의 말과 행동까지, 타인의 것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나 자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나보다 나 아닌 것들이다.

즉, 내 몸속에, 삶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타인들이 나를 나답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는 혼자라는 감각이 예전보다는 두렵지 않다.

조용한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을 때조차, 나는 수많은 관계의 잔향으로 존재하고 있다.

내 안에는, 함께 웃고 울었던 친구의 말투와 나를 걱정해 주던 엄마의 목소리와 같이 보이지 않게 살아 숨 쉬는 타인들의 흔적이 있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와 나눈 말, 웃음, 위로, 그리고 아주 작은 마음의 진동까지,

그 모든 것들이 쌓여 나를 다듬고, 변화시키고, 또 지탱해 준다.




그러니 가끔 나라는 사람이 어딘가 낯설고 불안하고 우울할 때,

내가 왜 이런 생각과 감정을 갖지라고 생각하며, 왜 이럴까 자책할 때,

그건 어쩌면 내가 여전히 누군가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 그러한 생각에 몰두하지 않고, 이러한 영향들은 나를 더 단단하고 곧게 만들 것이니, 기꺼이 그 흔적들을 받아들이고 넓히고자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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