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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Feb 19. 2022

눈 내리던 날의 상념

개가 만나는 눈밭에는 항상 먼저 간 그녀가 있다.

이 글에도 앞에 '눈 오네!'에 있던 아내가 있다.

눈은 그녀와 나를 이어준 중매장이였다.

그래서인지 눈이 녹아 스러지듯, 그녀도 눈 처럼 녹아 내게서 떠나갔다.

그리고 겨울마다 돌아와 날 깨우고 불러 같이 걷자고 일으킨다.



눈 내리던 날의 상념    

 

  영하 9도라는 기온을 실감할 수 있던 날, 눈 이 자지러지던 오전 10시쯤에 집을 나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 부끄러움이나 추잡한 일들을 가마아득한 과거의 그늘에 가두어둔 눈 천지. 그 멋진 순간을 보고 느끼고 마주해보겠다고 나선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왜냐면 아파트 단지를 나가서 공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난마 같던 내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눈보다 더 희게 정화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발밑에서 눈이 뽀드득거리는 소리,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고 비탈을 내려오며 질러대는 희열에 들뜬 목소리를 보청기를 통해 들은 것만으로도 이미 내 귀는 사치를 맛본 셈이다. 나뭇가지에, 울타리에, 벤치에, 가로등에, 세상 만물에 다보록하게 내려앉은 솜사탕을 스마트폰에 연신 담으며 걸었다.      

     

  가루눈이 살살 뿌려지고 있었지만, 해가 운무에 반쯤 가려 눈 사진을 찍기엔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작은 공원과 길 건너 공원을 잇는 구름다리에서 번하게 트인 하늘 쪽을 보고 ‘찰칵’, 한 장의 사진을 담았다. 작은 두 공원을 사이에 두고 도로가 나 있는데, 도로 위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안전과 편의를 도모한 구상은 퍽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 다리가 없었더라면 아마 두 공원은 작고 쓸모없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가서 눈이 고봉밥처럼 쌓인 벤치에 앵글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아련한 추억이 스멀스멀 기억 저편에서 살아 나왔다. 눈을 퍽 좋아하던 그녀, 눈이 내리면 “눈 오네”라며 “일찍 퇴근해서 눈 맞으러 가자”라던 여자. 눈이 내리면 회사 앞 커피숍에서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리던 그미. 눈이 엄청나게 내리던 밤에 전주 다가공원 벤치에서 코트를 둘러쓰고 진한 입맞춤에 뜨거운 볼을 비비던 여자. 눈 쌓인 벤치를 퍽 좋아하던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가슴을 열고 터져 나왔다.     


  20살을 갓 넘은 나이에 처음 만나, 타오를 듯 뜨겁게 사랑하고 연약한 듯 강한 생활력을 보여주었던 그녀. 인생의 황금기에 뜻밖의 병을 얻어 내게 16년간 병상을 지키게 했던 그녀가 눈 덮인 벤치에서 살아 일어나 내게로 왔다. 언제나처럼 화사한 미소에 예쁜 덧니를 보이며 다가서고 있었다. 떠나기 전에 내게 자신의 모든 것을 활짝 열어 보여주며 미안했던 일, 화가 났던 일, 기쁘고 슬펐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내가 옆에 없는 시간에 가뭇없이 가버렸던 그녀가 내 가슴에서 깨어났다. 나는 눈을 털어내고 벤치에 앉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이 수없이 바뀌어 흘러갔다. 시간과 드러나는 모든 사물이 뒤섞여 지난 반세기의 삶이 사이키 조명 아래 흔들리듯 명멸했다. 과거로 가는 열차표를 파는 악마가 있다면 내 영혼을 그에게 팔고라도 나는 그 열차에 타고 싶다. 가서 단 하루를 살더라도 그녀를 만나서 내가 다 주지 못했던 사랑을 모두 보여줄 수 없을까. 가슴 속에서 꺼내지 못했던 생각과 말이 되지 못하고 혼자 입가에 맴돌다가 바닥에 버려진 숱한 사랑과 그리움의 언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 그녀의 귓가에 부어주고 싶었다. 미안하고 아팠던,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깊은 속내를 송두리째 털어 빌고 용서받고 싶었다. 그러나 메아리조차 없는 내 생각과 말은 가슴을 후비는 꼬챙이로 남을 뿐, 오늘도 말이 되지 못하고 눈 바닥에 떨어져 녹아 어딘가로 스며들고 말았다.     




  서석화 시인은 ‘외로움은/매끄럽게 넘어가는 게 아니야/그것은 늘 목에 걸리고/심장 가운데쯤 걸리고/뱃속에 내려가서도/가스가 차듯 헉헉거리지’라고 그녀의 시에서 말했다. 


  혼자 살았지만, 내겐 병상의 그녀가 있었기에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었고, 그 병상을 지키며 눈만 깜박거리면서도 내 말을 알아듣고 생각을 전하는 그녀가 있었기에 외롭지는 않았었다. 누워만 있던 그녀의 존재가 이처럼 큰 것일 줄은 차마 짐작하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고 제대로 찾아온 외로움이 오랜 그리움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온몸을 찌르고 후벼 파고 있다.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을 아파한 들 어이하랴. 벤치의 냉기가 몸에 스며들어 감기로 오기 전에 일어섰다. 벤치 앞에는 내가 걸어 들어온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이제 저 발자국이 찍힌 눈길을 다시 걸어 나갈 참이다. 이미 과거가 된 발자국을 보며, 저 발자국이 찍히던 그때의 내 생각과 그 길을 되돌아가는 시간이 다르고, 생각도 많은 차이가 있음을 실감한다. 들어오면서 눈을 밟으며 뽀드득거리는 감각에 어린 시절의 눈밭이 아스라이 떠올랐는데, 지금 나가면서는 먼저 간 아내를 향한 그리움에 아파하고 있지 않는가? 이처럼 시간은 쉼 없이 흐르면서 모든 것을 바꾸거나 또, 새롭게 하고 있음을 절절히 느낀다.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리움도 세월을 따라가다 보면 희미하고 아득하게 될 터이지만, 외로움에는 세월이 약이 되지 못한다. 외로움에 세월이 더해지면 더 짙어지고 독이 되어 사람을 상하게 한다. 나름대로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자신 있어 했다. 컴퓨터로 이런저런 작업을 하고 할 일들이 많아 문제없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아내를 먼저 보내고 그리움이라는 녀석이 외로움과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더불어 그 녀석은 내 편이 아니라 외로움의 편이 되어 날 괴롭히고 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편은 없다. 2대 1로 겨루기를 해야 하는 이 노년이 너무 버겁다.     

 

  제대로 된 겨울 맛을 보겠다고 눈 내린 산책길에 나섰다가 또 한 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났다. 뼛속 깊이 스미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털어내려 안간힘 해봐도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안다. 원래 외로움과 그리움은 한 켤레여서 한쪽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이 같이 있으니 어찌하랴? 어떻게든 녀석들의 헤살을 피하고 이겨내서 남은 시간을 슬기롭게 보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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