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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고운 Sep 08. 2022

“똑, 또각,” 하이힐 소리

이 짧은 여행에도 내 곁을 바투 지키고 있었다.

순천만 국가정원 서문


또각,” 하이힐 소리     


  얼마 만인가? 이렇게 혼자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여행이…. 

  그냥 우렁이 껍데기 같은 집을 떠나자고 생각했다. 벗어나서 묵은 시간을 정리하고 나를 찾아보기로 했다. 삶의 절정을 이룰 때에 간병인이 되어 15년을 견디다가 끝내 아내를 보내고 나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었다. 그 아픈 시간이 만든 상처만 오롯이 떠안아 ‘홀로 노인’으로 사는 집에서 떠나보고 싶었다.     


  설날, 큰딸 집에 모두 모여 세배를 받고 한바탕 왁자하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볼 때는 즐거웠다. 밤이 되어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비좁은 집이 허허벌판으로 다가왔다. 적막강산에 홀로 던져진 듯 외로움이 날 덮쳤다. 현관문을 닫고 나와 아파트 단지 앞 도로를 걸었다. 설날 밤, 가게의 불이 모두 꺼져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차갑거나 쓸쓸해 보이거나 텅 비어 있었다. 

  밤에 보는 거리는 더욱 외롭고 처량했다. 저마다 가족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내는 설날 밤의 거리는 내 쓸쓸한 마음을 더욱 사위게 할 뿐이었다. 집도 거리도 날 받아주지 않는 밤, 어딘가에 사람이 모인 곳도 있을 터이지만, 노인이 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 ‘노인의 삶이란 뭔가를 잘 견디는 일’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다가 어딘가 떠나보자는 생각이 떠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겉옷도 벗지 않은 채 노트북을 열었다. 코레일 회원 카드로 차표가 남은 지역을 찾았다. 서울 쪽은 빈 좌석이 없고 남쪽으로는 표가 얼마든지 있다. 일단 순천까지 갈 생각으로 다음 날 오전 새마을호 열차표를 예매하여 프린터로 출력했다. 며칠 여행할 준비를 했다. 카메라에 충전기를 연결해 두고 가방에 속옷과 책 한 권, 필요한 것들을 챙겨 넣었다. 


  퍽 오랜만에 타는 기차, 순천역에서 내려 순천만 국가정원까지 꽤 먼 거리를 걸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웬만한 거리는 걸으며 천천히 세상을 보기로 작정했다. 걷다 보니 누구의 손에 잡혀 있다가 놓여난 듯 해방감이 발가락 끝까지 퍼져나갔다. 순천만 국가정원 동문으로 들어갔다.

  명절 연휴를 즐기러 나온 시민이 제법 많다. 남녀가 짝을 이루어 나오거나 가족들이 대부분이고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 외로움은 거기서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꽃이 피면 더할 나위 없다는 순천만 국가정원이지만, 아직 겨울을 채 벗지 못한 터라 볼거리가 별로 없다. 구불구불, 오밀조밀 새롭게 나타나는 여러 정원의 형태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냥 걸었다. 작정한 대로 지칠 때까지 걸으며 살아가는 의미와 명분을 생각했다. 그렇게 걷다가 보니 오후 5시, 잠시 식당에 간 시간을 빼면 4시간 반은 꼬박 걸은 셈이다. 

  지친 몸을 쉴 겸 다음 행선지를 생각하기 위해 서문 출입구 근처 벤치에 앉았다. 날씨가 흐려지며 구름이 짙어져 슬금슬금 어둑 발이 돋는 시간이다. 피로가 몰려오고 다시 외로움이 스멀스멀 비어져 나와 나를 휘감는다. 걸으면서 느끼지 못하던 노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이 슬슬 감긴다. 장거리를 운전하다 졸릴 때 잠시 눈을 붙이듯 잠시 졸겠다는 생각으로 벤치에 팔을 걸치고 머리를 기댔다. 일순, 머리가 비워지면서 아련한 잠 속에 빠져드는 참이었다.


  그때, “똑, 또각, 똑, 또각, 똑, 또각” 귀에 익은 하이힐 소리가 난청인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 옛날에 아내가 가슴을 내밀고 도도하게 걷던 그 소리, 아내를 만나려 기다릴라치면, 모습보다 먼저 소리가 들려와 내 가슴에 두 방망이질을 해 대던, 그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몽롱하도록 그리운 소리, 아내가 발병하여 하이힐을 신을 수 없었을 때, 다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서로 붙안고 통곡했던 그 아픈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는 들을 수 없던 그리운 소리가 순천만의 한 벤치에 들려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들어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영혼이 부르는 소리, 잊힌 듯 아득하던 그 소리다. 누가 이런 소리를 내면서 걷는지 궁금했다. 젊고 팔팔해 보이는 여자가 가슴을 불쑥 내밀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면서 내는 구두 소리였다. 그녀가 옆에 나란히 걷는 남자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50년 전에 아내와 나의 모습을 또 다른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에 어떤 묵직한 것이 치밀어 올라왔다.  


  아내는 숨을 잃고 한 줌 재로 내 곁을 떠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우주의 원자로 돌아가, 이 짧은 여행에도 내 곁을 바투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다시 원자로 분해되어 이 별을 떠날 때까지 그녀의 원소들은 내게 머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냥 그리워하며 외로워하며 있는 그대로 살던 대로 지내면 좋을 것을 이 측은한 ‘홀로 노인’이라는 이름을 잊어보려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벌교를 거쳐 목포로 갔다.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목포에서 어렵게 아침을 먹고 서둘러 전주에 돌아왔다. 아직 내게 홀로 여행은 과분했다. 겨우 24시간, 혼자가 아닌 홀로 여행한 셈이다. 


  집에 돌아오니 책상 위 사진틀 속에서 그녀가 배시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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