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칸나의 그림책방 Aug 05. 2018

여우

절망과 희망. 질투로 더럽혀진 우정. 반전을 거듭하는 잔혹동화

이미지 출처 http://www.picturebook-museum.com


 마거릿 와일드가 쓰고, 론 브룩스가 그린 작품.
< 여우 >.  출판사 파랑새에서 2012년 발간한 책입니다.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된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다양한 부분에서 상을 받은 '인증된'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표지에서 볼 수 있듯 아주 강렬하고 짙은 선으로 그려진 삽화들은 거칠고 딱딱한 느낌을 줍니다. 마치 감정이 스며들지 못하게 벽을 치는 듯한 느낌마저 들죠. 두꺼운 마띠에르에 투박하고 깊은 스크레치들이 메마른 땅의 느낌을 잘 살려 주었습니다.   


여느 동화와는 다르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이 책은, 삶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추악함을 하나의 짧은 이야기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소름 끼치게 사악하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질투심. 인간의 본질적 '악함'을 그림책이라는 말랑한 도구를 통해서 풀어낸 매력 있는 작품, <여우>를 소개합니다.  




여우


이미지 출처 http://www.picturebook-museum.com
이미지 출처 http://www.picturebook-museum.com/


잿더미로 변해버린 숲 속. 그 숲을 지나가던 '개'는 날개를 다친 '까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까치를 돕기 위해 자신의 동굴로 기꺼이 까치데려 갑니다. 개는 열심히 까치를 돌봐 줍니다. 그러나 날개를 잃은 까치는 말합니다. 살고 싶지 않다고. 날지 못하는 새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말이죠.

까치의 말에 개는 대답 합니다.


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산다는 건 멋진 일이야!



절망에 빠진 까치는 개의 도움을 거부하고 더 깊은 동굴로 숨어 들어갑니다. 그러나 혼자서 그 절망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까치는, 결국 개의 도움을 받아들이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되어 갑니다.  개의 등에 올라타 그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반쪽을 대신 보는 까치. 그리고 개는 까치의 잃어버린 날개가 되어 힘차게 달립니다. 신나는 바람을 느끼며 까치는 소리칩니다.


나는 너의 눈이 되어줄게! 너는 나의 날개가 되어줘!


이미지 출처 http://www.picturebook-museum.com
이미지 출처 http://www.picturebook-museum.com


이렇게 친구가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동물에게 여우가 접근합니다. 개는 어떠한 의심도 없이 여우 역시 친구로 받아들이지만, 까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강하게 여우를 경계합니다. 뭔가 속임수가 있을 거야. 뭔가 꿍꿍이가 있거라고. 여우의 의심에도 셋은 한 무리가 되어 함께 생활하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예상대로 까치를 유혹합니다.



난 개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어.
내 등에 타면  널 정말 날 수 있게 해줄게.



 까치는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우의 달콤한 제안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그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난 지금 행복해. 하지만 정말 날아보고 싶어. 지금보다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면. 정말 하늘을 날아볼 수 있다면.


깊은 밤. 잠에 빠져있는 개를 남겨둔 채. 까치는 여우의 등에 타고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절망에서 자신을 구해준 개를 버려두고 말이에요.  그리고 여우는 달리기 시작합니다. 정말 빠르게. 약속대로 개보다 훨씬 빠르게요. 쏜살같은 바람을 느끼며 잠깐이나마 까치는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난 정말 하늘을 날고 있어!


진실한 친구였던 개를 배반한 까치는 여우의 등에 탄 채 아주  멀리 달려갑니다.  나는 것 같다는 기쁜 환희에 찬 까치는 어디로 달려 가는지는 생각지 못합니다. 한참을 달려온 길. 둘은 붉은 사막에 도착하게 됩니다. 까치는 이제 정신이 듭니다. 여긴 어디지? 그 순간 여우는 까치를 등에서 떨어냅니다. 마치 벌레가 붙어있기라도 한 듯 말이에요.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늘 외로움에 찌들어 있던 여우는, 우연히 개와 함께 다니는 까치를 발견하게 되었고. 행복해 보이는 두 친구를 보며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낍니다. 그리고 그들을, 자신이 살고 있는 외로움의 구렁텅이로 함께 밀어 넣고자 결심합니다. 여우는 의도적으로 이 둘에게 접근했던 것이죠. 계획을 완수한 여우는 날지 못하는 까치를 사막에 버려둔 채. 적막한 사막을 유유히 떠납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요.


버려진 까치는 몸을 웅크린 채 한 동안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혼자 남겨져 있을 개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개도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개와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까치는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딛습니다. 비록 날 수는 없지만요.


  


배신과 후회
그리고 또 한 번의 희망


뻔한 동화처럼 시작했지만, 반전 있는 스토리로 완벽한 구성을 보여준 책 <여우>. 저는 보는 내내 정말 소름이 끼쳤어요. 언제나 행복한 삶을 꿈 꾸지만, 우리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자신의 힘으로는 이 불행에 대비할 수 없을 때도 많죠. 까치가 사는 숲이 불타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삶은 또다시 살아날 구멍을, 한 줄기의 희망은 남겨두지요. 개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유 없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우리는 예상치 못한 시련과, 또 예상치 못한 도움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결코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도 함께 해내곤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행복을 날려버릴 수 만 가지 유혹들은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고.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절망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여우가 그랬 듯, 이유 없이 불행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질투심. 혼자만 아플 수 없다는 그 못된 마음은, 견고히 쌓아 두었던 행복의 담도 허물어 버릴 만큼 강렬하죠. 여우의 계락은 너무도 악랄하지만, 한 편으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독자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가 질투를 느끼듯, 여우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정신을 차린 까치가 개를 찾아 떠난다는 엔딩은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결국 우리는 희망을 향해서. 온전한 사랑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까치는 개에게서 절망 속에서도 삶을 살아낼, 용기를 배운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결국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겠죠. 개가 내민 손을 까치가 잡았고 , 서로가 서로를 도왔던 것처럼요.


아름다운 동화처럼 시작한 이 이야기는 꽤나 심오하게, 세상의 본질적인 내용을 거침없이 풀어냅니다.  간략하지만 강렬한 스토리로,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 책. <여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가 나서 그랬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