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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an KIM Dec 20. 2016

[ESC] (3) 휴식

이완과 수축 그리고 전자기기

I. 소극적 휴식


1. 이완의 에너지


  어제와 오늘처럼 집에있는 날은 몸 속 혈액이 굳어버리면서 ‘공간’에 파묻히는 기분이 든다. 피곤함과 무력감은 주변 공간 녹아들어 나를 얽어맨다. 움직이려는 노력은 옅은 이산화탄소와 미세한 피부껍질 그리고 각종 쓰레기를 남길 뿐이다. 그렇게 나는 공간의 인질이 되어 거머리에게 피를 빨리듯 침대에 박제된다.


 한없이 주도권을 잃어가던 중 어느 순간부터는 과거 언젠가 내가 주체였었다는 생각, 또는 내가 너무 객체화되어 더 이상 존재하기 싫어진 공간에서 지금 당장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철저히 나의 주체됨을 외부세계에 내어주고 그 세계에서 나를 객체화시켜버리는 쉼(소위, 멍때림), 나는 이것을 ‘소극적 휴식’이라 칭하고 싶다. 소극적 휴식은 내 몸과 정신에게 스스로를 정비할 기회를 준다.


2. 전자파 다이어트


  다만 여기에 하나의 단서가 달린다. 즉, ‘전자파’를 쬐는 것은 휴식이 아니다. 전자파가 나오는 기계에 나의 온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에 내 몸과 정신에 집중할 수가 없다. 전자파를 보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 나를 즐겁게 하거나 좀먹는 또 하나의 일감에 불과하다. 전자파 다이어트는 물리적 휴식의 필요조건이다.


  그럼에도 전자파를 쬐도록 이끄는 온갖 유혹요소들이 존재한다. 전자기기는 소극적 휴식보다 우선순위라고 인식되는 화제들을 자꾸 내놓는다. 사실 나는 내 유혹요소들의 100%를 전자기기가 차지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휴대폰, 인터넷 TV, 아이패드 등등을 보면, 스타2 최근 결승전은 봐야지, 사망토론 아직 안 본 클립은 봐야지, 밀려있는 웹툰은 봐야지, 최순실 사건 뉴스기사는 한 번 훑어야지, 외신의 반응은 어떨지 봐야지, 페이스북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나 한 번 봐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그 과정에서 소극적 휴식은 요원하고 내 정신의 살점은 계속하여 깎여나간다.


  그래서 내 삶을 바로잡기 위하여 나는 휴대폰의 각종 app들을 잠가놓는다. 회사 인터넷 PC에는 열공백배를 설치했다. 내 의지로 안하는 것이 좋겠으나, 그 행위에 나아가지 않을 만한 상황을 창출하는 것도 의지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행위가 달라지고, 행위가 쌓이면 습관이 된다.  휴대폰을 보지 않는 행위가 쌓여서 휴대폰을 보지 않는 습관이 된다.


II. 적극적 휴식


1. 적극적 휴식의 당위


  소극적 휴식 후에는 외부 세계로 박차고 나가 스스로의 에너지를 느끼며 자신의 생명력을 자각하는 역동적 휴식이 뒤따라야 한다. 이완 후에는 반드시 수축이 있어야 하듯, 소극적 휴식에는 반드시 적극적 휴식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극적 휴식은 용수철이 늘어지듯 정신적․육체적 우울(depression)의 단계로 반드시 접어들게 된다.


  역시나 전자파는 적극적 휴식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헬스장 가서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나같이 말이다. 전자기기를 사용하면 소극적 휴식도 안되고 적극적 휴식도 안 되는, 빠져나갈 수 없는 고통에 빠져버린다. 그게 무간지옥이다. 무간지옥에서 헤메다 보면 소극적 휴식도 안되는 상태에서 정신적․육체적 우울(depression)의 단계에 빠져버린다. 시간낭비와 인생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시간은 들였는데 쉬지는 못한다.


2. 적극적 휴식의 촉매


  그러므로 스스로를 전자기기로부터 차단하고 생명력을 자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단 운동을 하면서 적극적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운동을 하기 위한 훌륭한 촉매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전거를 샀고, 헬스기구들을 샀고, 운동을 하면서 들을 스피커도 장만했다. 뭘 사든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나를 소극적 휴식에서 끌어내 나의 동물적 감각을 일깨워 주기만 하면 된다.


III. 결론


  나는 어떻게 쉬고 있는가? 전자기기를 눈에 붙이다 늦게 자고, 전자기기에 눈을 붙여놓고 출퇴근하고, 낮에는 또 전자기기 속을 서핑하는 것이 나의 삶 아닌가? 단 10초의 휴식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책을 보고 공부할 때 내 몸과 마음이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공부할 때에는 전자기기로부터 자유로우니까. 제발, 나의 몸에게 휴식을 주자, '순도높은 이완'과 '동물적인 수축'이라는 커다란 휴식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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