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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an KIM Mar 09. 2017

[ESC] (6) 인간관계와 돈

축의금 정산내역을 보고

인간은 서로에게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며 하나됨


결혼을 준비하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지만, 인간은 유한하고 또 유한하다. 시간과 돈은 항상 모자라다. 심지어 백만장자에게조차 적어도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그럼에도 인간과 인간이 만나 시간과 비용을 같이 소비하는 것은 그만큼 한정된 시간과 돈을 상대방과 나누고 싶다는 결심 때문이다. 인간들은 그런 결심에 서로 감동하고 서로 뭉친다.


돈은 인간관계를 표시


돈이 인간관계를 만들어주진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결혼 과정을 겪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돈만이 인간관계를 재단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돈은 인간관계를 ‘표시’해준다. 


사람들의 이름과 축의금 내역을 주루룩 정렬해 보니 돈이 갖는 표상적 기능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 수 있었다. 축의금 내역은 30살까지 내가 쌓아온 인간관계의 정산표였다.


정말 거짓말처럼 내가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이 준 사람에게는 감사하게 되고, 내가 투자한 것보다 더 적게 주거나 아예 축의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모종의 배신감까지 느끼게 되더라.


결국,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돈으로 인간관계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돈으로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돈 문제로 인간관계가 끊길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생은 연속적 게임


물론 내가 밥을 사주었어도 결혼식장에 오지 않고 축의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서운하다.


그러나 인생은 한 번의 게임이 아니다. 수많은 게임이 계속 반복된다. 처음 베풀었을 때 나와 함께할 사람은 언젠가 반응하게 되어있고 나와 끝내 떨어질 사람은 잠잠히 떨어져 나가게 되어있다. 그런 사람은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언젠가부터 잠잠히 손을 놓아주면 된다. 나와 함께 반응해주는 사람들과 유한한 세상을 행복하게 나누는 것만도 바쁘다.


돈은 애정을 담는 그릇


사실 돈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기란 정말 쉽지 않다. 나도 받은 만큼 줘야하고, 상대방에게 준만큼 받고 싶다.


그렇기에 웬만큼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면 신경을 쓸 여력이 정말 없다. 귀찮다는 얘기가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감정과 일상을 교류하지 않는 사람을 챙기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 서로 복잡한 불확정기한부 채무를 지고 불확정기한부 채권을 가지는데 각 기한이 언제 확정될지 항상 체크해야 하는 일이니 얼마나 신경이 많이 소모되겠는가.


그럼에도 때때마다 서로 챙긴다면 그것은 돈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의 애정을 표시해준 고마운 일일 것이다. 돈은 애정을 담는 효과적인 그릇이다. 다만 부정한 청탁을 담는 효과적인 그릇이 되기도 하므로 직무상 관계에 있는 지인이라면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의 사람들


놀랍지 않은가. A와 B사이에 채권관계가 있었던게 아님에도 A가 B에게 10만 원을 지급했고 그 후 얼마지 않아 B가 A에게 10만 원 상당의 물건을 인도했다.


서로 10만원을 주고받아 제로섬이 되었는가? 아니다.  A와 B에게는 'A와 B의 관계'라는 자산이 생긴다. 1과 1을 주고받으면 관계라는 자산이 각자에게 추가되므로 2씩을 가지게 되는게 인간관계고 그런 관계들 속에서 삶이 풍요로워진다. 즉, 인간관계는 Non-제로섬  게임이다.


돈만을 매개로 관계를 맺자는 얘기가 아니다. 돈이 없으면 시간을 주면 된다.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의 값진 시간을 주고받는 관계가 생긴다. [시간]과 [시간]을 주고받으면  각각 [시간+관계]를 가지게 되는게 인간관계다.


나는 앞으로도 지인들과 내 시간과 돈을 베풀고 싶다. 그러면서 끝까지 나와 붙어먹을 ‘나의 사람’들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


주의  

돈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들도 사실 많다. 축의금 정산내역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 글을 쓰는 나도 사실은 그런 부류다.

돈을 주고받는 행위는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형법 등 위반의 형사범죄가 될 수 있다.

'돈을 주고받는다' 용어는 서로 밥을 산다든지 선물을 하는 등 서비스와 물건을 주고받거나 각종 경조사비를 챙기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넓은 범주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돈이 인간관계를 추리-유지-관리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는 건 사실이나 인간관계의 핵심은 언제나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없는데 돈만으로 인간관계를 꾸리는 것만큼 돈낭비도 없다. 인간관계에서 행복과 풍요로움을 얻고 싶다면 사람에 대한 진정성은 오히려 당연한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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