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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Oct 14. 2019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설리의 생을 추모하며.

어느 날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입 안 가득 생크림을 들이붓고 꿀꺽 삼키는 영상을 올렸다. 그 아래로 누군가는 강한 혐오를, 누군가는 열렬한 애정을 댓글로 남겼다. 솔직히 설리가 생크림을 삼킨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뜨겁게 엇갈린다. 하지만 설리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듭 전시한다. 게임의 룰을 지배한다. 아이돌 스타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충족시켜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적나라하게 꺼내 보인다. 놀랍지 않은가. 솔직히 나는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자기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아이돌 스타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해 본 적이 없다. 마치 김연아의 트리플 컴비네이션 점프를 보는 것만 같다. 주저하지 않고 뛰어올라 차분하게 착지한다. 그리곤 뒤돌아 보지 않고 제 갈 길로 가버린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두고 설왕설래하거나 말거나 자기 일상을 마음대로 전시할 권리를 충실히 이행한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이 그녀의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꼭 알아야 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고, 설리에게 그것을 해명할 의무도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두고 떠들어대는 세간의 태도와 대조되는 설리의 전지적 방관은 상당히 유쾌한 일이다. 그리고 우린 이렇게까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돌, 아니, 연예인을 목격해본 기억이 없었다. 우리가 예상하는 전형적인 아이돌 스타에 대한 관습적 기대감을 완벽하게 부수고 자신의 행복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강한 욕망을 가릴 것 없이 드러내는 당당함. 자신의 사랑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선언할 수 있는 자신감. 거짓말처럼 툭 하고 나타난 판타지스타랄까. 계속 설리를,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싶다. 이토록 매력적인 당당함과 자신감을 계속 팔로우하고 싶다. 설리라는 건강한 욕망을.



지난 2016년 <그라치아> 매거진에 썼던 설리에 대한 칼럼 중 일부를 옮겨본다. 대중의 선비질과 미디어의 이슈팔이 속에서 가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설리가 그에 맞서는 방식은 세상이 이상하다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되레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런 설리를 보는 쾌감은 상당했고, 설리가 보다 건강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세계를 보존해나가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 괜찮은 척했지만 나름대로 안간힘을 다해서 애썼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당사자의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풍경을 보며 박수를 친 기분 같아서, 착잡하다. 그러니 부디, 이제라도 평안하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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