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셀린 시아마의 첫 번째 선언 '워터 릴리스'에 관하여.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톰보이>에 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세 번째 셀린 시아마 감독의 연출작인 <워터 릴리스>는 셀린 시아마의 연출 데뷔작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러하듯 자신의 주변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통해 출발선에 선 셀린 시아마라는 작가의 근본적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톰보이>를 인상적으로 감상한 관객에게는 관람 자체가 진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워터 릴리스>가 그만큼 발견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만드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워터 릴리스>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톰보이>까지, 셀린 시아마의 경력을 거슬러 올라온 관객에게 찾아온 또 한 번의 반가운 역영인 셈이다.
삼삼오오 수영복을 맞춰 입은 소녀들은 저마다의 무리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서로 화장을 고쳐주거나 머리를 만져주고, 같은 동작을 거듭 연습하고 합을 맞추는 소녀들의 얼굴에는 각기 다른 떨림과 설렘이 교차한다. 그들의 입장과 함께 시작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대회에서 열심이긴 하나 어설픈 초등부 경기가 이어지고, 이를 바라보는 한 소녀의 무심한 얼굴이 화면에 들어온다. 그런 소녀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건 이어지는 중등부 경기와 함께 한 소녀가 입장한 이후부터다. 별 관심도 없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지만 대회에 출전한 친구 안나(루이즈 블라쉬르)를 응원하고자 수영장을 찾은 마리(폴린 아콰르)는 그렇게 플로리안(아델 에넬)만 보게 된다.
<워터 릴리스>는 소녀들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성장을 그리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통증이 되는 시간, 어쩌면 상대를 갈망하는 것보다도 스스로가 품은 마음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가 없어 막막하고 괴로운 시절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성장통에 관한 영화다. 동시에 10대 소녀들의 세계를 그린 이 영화는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셀린 시아마가 스스로의 성장통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라는 점에서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세계다.
“<워터 릴리스>에는 내게 친숙한 소재와 감정이 담겨있다. 실제로 10대 시절에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에 집착하기도 했고, 내가 느낀 것들을 영화 속 감정에 충실하고 정직하게 반영하고자 했다. 허구라 해도 모든 이들이 공감할만한 것이길 원했다. 그래서 실제처럼 구성된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그 이면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채워 넣고자 했다.” <워터 릴리스>의 감독 셀린 시아마의 말처럼 <워터 릴리스>의 원형은 셀린 시아마 그 자신이었지만 결코 그 자신에게 갇힌 결과에 머무르지 않았다.
플로리안에게 모종의 감정을 느끼는 마리는 그 감정의 정체를 명확히 짚어내지도, 표현하지도 못한다. 그저 플로리안의 주변을 지키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관계에 충만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그런 자신의 입장에 회의감을 느끼고 덧없는 분노에 사로잡히는 감정적 기복을 거듭 경험한다. 동시에 자신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소년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안나는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옷을 억지로 끼워 입고 콤플렉스를 감추려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다다를 수 없는 감정은 애먼 곳으로 튕겨져 나가거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튀어가 뜻밖의 상실과 증오를 품거나 쥐게 만들 뿐이다.
<워터 릴리스>는 각기 다른 뾰족한 고민을 품은 채 굴러가는 10대 소녀의 일상을 개별적으로 돌보며 독립된 자아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남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그 모든 사연을 아우르며 보편적인 관점을 확보한다. 퀴어라는 독립성을 사랑이라는 감정의 보편성 안에서 나열한다. 10대라는 특수성을 이해하면서도 결코 전형적일 수 없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관찰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규정하거나 제안하는 대신 접근하고 지켜본다. 내밀한 감정에 세심하게 접근하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적정 거리감을 유지하는 영화의 시선으로 인해 관객 역시 철저히 관찰자의 영역에 머무르며 그 시선을 견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극 안에서 그 감정의 주체에게 직접적으로 개입할 연결고리를 철저하게 밀어낸 각본과 연출 덕분이다.
“10대가 주인공인 하이틴 무비 같은 장르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다. 그런 영화에는 보통 남자와 여자, 아이와 어른의 관계가 드러난다. 하지만 <워터 릴리스>에서는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이 10대 소녀의 관점으로 영화를 보길 원했기 때문이다.” 셀린 시아마의 말처럼 <워터 릴리스>에는 10대 소녀들의 세계에 관여하는 어른의 시선이나 관점이 개입하는 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의 감상을 좌우할만한 영화 내부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관객에게 오롯이 감상의 주체에게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워터 릴리스>의 시선이 인물에 대한 감정을 온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외적인 갈망으로 인해 내적인 갈등을 느끼는 소녀들의 세계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듯한 카메라의 시선에서는 일관된 온기도 함께 전해지는데 이는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품은 작가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했다. 열쇠 구멍으로 탈의실을 감시하는 누군가의 시선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관객이 마치 영화 속에 있는 소녀 중 하나가 돼서 라커룸에 있는 것처럼 느끼길 원했다. 그래서 정말 간단한 촬영 방법을 선택했다. 요점을 벗어나지 않는 안에서 사랑스럽고 정중한 시선으로 정말 가깝게 다가서듯이 말이다.” 소녀들의 행동에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카메라의 관점은 처음부터 그 시선에 담긴 온기를 일관되게 보존하겠다는 의지에 표명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워터 릴리스>는 셀린 시아마에게도 자신으로부터 발굴한 세계에 다가서는 법을 익히는 첫 번째 통과의례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레즈비언 감독이지만 여성 감독이자 프랑스 감독이다. 그 모든 것을 더해서 바라보는 건 괜찮지만 그중한 가지만 분리해서 규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논한 셀린 시아마의 입장은 <워터 릴리스>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유용한 것일지 모른다. 남다른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체험이 아니라 보편적인 세계를 채우는 다양하고 개별적인 일상에 대한 공감대. 원하는 것을 늘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상실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이 늘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결실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기에 만만치 않은 두께의 나이테가 생성되는 성장통의 계절. <워터 릴리스>는 그렇게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세계를 아우르겠다는 작가주의 감독의 선언이었던 것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톰보이>에 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세 번째 셀린 시아마 감독의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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