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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Sep 24. 2020

'청춘기록' 청춘은 돌아오는 거야

청춘은 젊음의 동의어가 아님을 깨닫게 만드는 드라마 '청춘기록'에 관하여

‘어느덧 20대 중반에 다다른 박보검은 겸허함과 뜨거움이 교차하는 청춘의 시계를 돌고 있다. 온전히 푸르르고, 완연히 화창하다.’ 2년 전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박보검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기사 전문으로 썼던 문장이다. 기사의 제목은 ‘청춘보검’, 푸릇한 웃음 사이에 벼린 각오 같은 것이 일어서는 듯한 박보검과의 대화 사이에서 ‘청춘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문득 떠오르는 물음표를 품었다. 그리고 <청춘기록>을 보며 그 날의 물음표가 퍼뜩 떠올랐다. 


청춘이란 내일을 꿈꿀 수 있어서 창창하다고 하지만 헛헛한 오늘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꿈이란 것이 요원하게만 다가오는 시절이기도 하다. 상록수 같은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때가 되면 잎이 말라 나뒹굴까 두려워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청춘기록>은 희망과 불안 사이 그 어디쯤, 청춘이라는 단어가 놓여있었던 그 시절을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게 만드는 드라마다. 


사혜준(박보검)과 원해효(변우석)는 배우를 꿈꾸는 톱모델이자 절친한 사이이지만 두 사람은 물고 태어난 수저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투신하는 사혜준에게 가족이란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틈나는 대로 빈틈을 노리고 헤집으려 드는 존재일 뿐이다. 그나마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는 할아버지로부터 받는 응원과 격려를 통해 가시방석 같은 집을 버틴다. 반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해효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는 어머니의 은밀한 지원 덕분에 부족함 없이 경력을 쌓아나간다.

“어떻게 시간만 공평할 수가 있냐? 계속 공격받고 있어. 현실한테.” 혜준의 말처럼 인생에서 공평한 건 오로지 흘러간 시간의 총량뿐이다. 어쩌면 그마저도 저마다 주어지는 시간의 여백의 차이에 따라 공평해지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것이나마 공평할 것이란 믿음이 삶을 밀어나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작동시키는 동력일지도 모르겠다. 금수저 해효의 삶을 동경하지만 흙수저 혜준의 삶에 보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건 모두가 이미 불공평한 삶을 일찌감치 견디며 어른이 된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단 가난이라는 단어로 규정되는 불공평이 아니라 해도 그렇다. 


그럼에도 인생은 알 수 없는 법이기에 드라마도 뻔하듯 뻔하지 않게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입에 물고 태어난 수저 색깔로 불공평한 세계가 공고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만드는 이야기란 늘 반가운 법이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딛고 선 땅을 박차고 오르려는 이를 함께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청춘기록>에서 청춘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 푸른 언어에 깃든 패기를 전하는 동시에 그 마음을 걱정하는 주변인의 파리한 마음까지 공감하게 만드는 덕분이다. 


‘하고 싶은 거 하게 놔두면 밥벌이도 못하고 평생 빌붙어 살지도 몰라’서 아들을 닦달하는 아버지(박수영)와 ‘적어도 지 하고 싶은 건 하고 망가지’는 것이 낫다며 아들을 응원하는 어머니(하희라)의 갈등은 사실상 혜준의 마음에 뿌리내린 상록수 같은 꿈 때문에 자라난 가지들이다. 청춘이란 이렇듯 늘 환대받을 수는 없어도 응원하고 싶은 것이 된다. 그리고 청춘이란 꿈꾸는 것이 허락된 어느 시간을 가리키는 언어가 아니라 꿈꾸는 이에게만 허락된 자격일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아들 볼 면목 없이 살아왔기에 후회가 막심한 혜준의 할아버지(한진희)는 자신을 구박하는 아들이 밉다가도 눈에 밟힌다. 그래서 아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 혜준을 통해 알게 된 시니어 모델이 되고자 매일 같이 부단히 노력을 거듭한다. 그렇게 새로운 꿈을 품는다. 이렇게 <청춘기록>은 청춘이 꼭 젊음의 동의어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젊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도 청춘은 꿈꾸는 자에게 떠오르는 태양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다지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청춘기록>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음 한 구석에 뜨거운 불씨를 지펴줄 드라마가 될 것만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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