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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Sep 30. 2020

신해철 그리고 아무도 없는가

'선미네 비디오가게' 신해철 편을 보고 마음이 뜨거워졌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 같았다. TV를 보다가 조우한 이름 석자가 마음속에서 뜨겁게 살아났다. 지난 9월 27일에 방영한 <선미네 비디오가게>에서 호명된 그 이름, 신해철 때문이었다. 신해철을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인기 있는 솔로 가수였던 그를 보며 어른들이 혀를 찼던 것을 여전히 기억한다. 머리가 길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더니 대마초를 피워서 잡혀간 전력도 있다고 했다.


신해철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건 그보다 머리가 조금 더 컸다고 말할 수 있었던 중학교 시절이었다. 신해철을 좋아하는 누나 덕분에 넥스트의 음악을 들었고, 몇몇 노래의 가사에 전율을 느꼈던 그 당시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그 정도로 대단한 고민이 있었던 시절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의 노래는, 보다 정확하게 그의 가사에는 어린 마음을 흔들고 깨우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카이브 휴먼 다큐 토크쇼를 표방하는 <선미네 비디오가게>는 진행자 선미가 비디오가게 주인으로 손님을 초대해 해당 게스트의 과거를 돌아보고 이를 통해 지나온 시대를 조망하는 기획에 가깝다. 이날 방송에서는 고인이 된 신해철 대신 그의 절친이자 동료 뮤지션이었던 윤상이 자리해 신해철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나갔다. 그리고 김태원, 홍경민, 양동근, 크라잉넛, 페퍼톤스, 기타리스트 김세황, 음악평론가 배순탁 등 신해철에 관한 추억이 있거나 전문적인 식견을 더해줄 뮤지션과 음악평론가의 인터뷰를 중간중간 삽입하며 인간 신해철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해나갔다.


신해철의 목소리가 들어간 음반은 모두 갖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팬심을 드러낸 홍경민은 사실 의외의 게스트라고 생각했다. 신해철과 특별한 음악적 접점이 없는 가수라고 느껴졌던 탓인데 그래서 오히려 더욱 깊게 공감할 수 있는 게스트이기도 했다. 팬으로서 신해철의 음악과 신해철의 가사를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경청해온 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 덕분이었다. 크라잉넛과 페퍼톤스는 무명의 인디밴드일지라도 재능 있는 후배의 길을 열어주는 선배로서의 신해철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런 사람은 앞으로 안 나올 거 같아요. 적어도 저 살아있는 동안.” 신해철에 관한 수많은 말 중에서 배순탁의 말에 깊게 수긍한 건 실제로 신해철이 남긴 빈자리가 지금까지도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이전에 없었던 록스타였고, 권위에 기대지 않는 개인이었다. 페퍼톤스의 신재평의 말처럼 “가수인데 100분 토론 나와서 저렇게 자기 생각을 말해도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TV 토론에 출연하면서 격식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나오는 또라이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신해철을 독설가라 부르곤 했다. 하지만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잘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독설가라는 단어는 오히려 신해철과 가장 거리가 먼 언어처럼 느껴진다. 그는 언제나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는 데도 평온해 보이는 세상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불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를 해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질서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방치된 약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동성동본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 법으로 규정된 세상이란 게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도 있겠지만 그런 시대도 있었고, 그런 시대의 그림자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사랑을 위해 신해철은 노래하기도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만큼 자신이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신해철은 “아니요. 겁나죠”라고 답한다. 하지만 계속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란 이랬다. “사실은 입을 콱 다물어버리는 게 편한데 입을 다물면 상당히 이기적인 상황이 와요.” 자신이 있어서 입을 여는 게 아니라 입을 닫으면 세상이 망가지는 것에 일조하는 사람이 된다는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벼린 주관과 깊은 공감으로 신중하게 선별한 언어로서 세상이 외면하거나 간과하는 진실과 진심을 건드리는 사람이었다.


“남의 고민의 경중을 판단하지 마라. ‘에이! 뭘 그거 가지고 그래!’ 이걸 위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주위에 힘들다는 분에게 이런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신해철의 언어는 찌르는 칼이 아니라 내미는 손이었다. 냉정하게 자르는 게 아니라 따뜻하게 감싸는 것이었다. <선미네 비디오가게>를 보면서 새삼 그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세상의 구멍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라며 순수한 용기를 쥐게 만들던 이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없다. 신해철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세계였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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