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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Oct 07. 2020

'비밀의 숲 2' 아직 못다 한 이야기

황시목 검사가 밥 한 공기 뚝딱 헤치우는 시즌 3의 엔딩을 기대하며.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문득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황시목(조승우)은 결국 ‘황시목’한다. <비밀의 숲>에서 그러했듯이 <비밀의 숲 2>에서의 황시목도 그렇다. 여전히 좀처럼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고, 상사가 아무리 갈궈도 노여움을 타지 않는다. 그리고 할 일을 한다. 검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황시목은 <비밀의 숲>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법이 없다. 물론 그 비결은 잘 알다시피 대단한 집념이나 의지 같은 게 아니다. 유년시절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직무 의외의 욕망이 없다. 이는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약속이다. 그는 감정적으로 흔들릴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안심하고 그가 가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사리사욕도, 전전긍긍도 없다. 검사 선배와 검찰 상사의 지시를 곧잘 따르는 것 같지만 부당한 상황에서는 당돌한 물음표를 던진다. 면박을 줘도, 겁박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상대의 심리적 허점을 파고들며 왜곡하려는 진실을 단호하면서도 담담하게 되묻는다.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다. 덕분에 한여진(배두나)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인간적 면모나 직무와 엇갈린 않은 사적인 욕망들이 더욱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비밀의 숲 2>는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밑도 끝도 없는 죽음을 바라보는 황시목을 통해 시작된다. <비밀의 숲>이 어느 가정집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는 황시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비밀의 숲 2> 역시 통영의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익사사고를 목격하는 황시목을 통해 시작한다. 그리고 단순한 강도사건과 사고로 보이던 두 사건은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거대 권력의 이름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사소하게 정리하거나 단순하게 처리할 수도 있겠다고 여겨진 사건의 배후를 황시목은 끝까지 궁금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말 그대로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건의 무게를 감당하고 굴려나가는 자만이 열어볼 수 있는 존재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비밀의 숲 2>는 어지럽게 널린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들고 집요하게 맞춰나간 자만이 그릴 수 있는 관계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전자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권한을 남용하는 것에 탐닉하게 된 권력자의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라면 후자는 권한 그 자체가 목적이 된 권력자들이 그늘 아래에서 맞잡은 손을 양지로 끌어내 폭로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만큼 훨씬 복잡다단하게 뒤엉킨 사건과 관계의 배후를 풀어내는 호흡이 필요했다. 사건의 갈래가 늘어난 만큼 주변 인물의 역할도 보다 강화됐는데 특히 한여진은 황시목과 함께 이야기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주요 캐릭터로 자리를 잡은 인상이다.

<비밀의 숲 2>는 검찰의 전관예우 문제와 함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갈등을 주요한 쟁점으로 묘사한다. 전작에 비하면 보다 사회적인 화두를 던지는 셈인데 이 덕분에 경찰 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관찰하는 한여진의 역할이 전작에 비해 보다 강력한 구심점을 갖게 되는 인상이다. 그러니까 한여진은 황시목과 함께 <비밀의 숲 2>의 쌍가마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비밀의 숲 2>에서는 황시목뿐만 아니라 한여진 역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지휘 문제에 직접적으로 휘말리는 당사자가 되고, 자기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게 되는 내부고발자의 숙명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황시목은 국이 짜면 물을 섞으면 되듯이 불합리한 상사의 비리를 폭로한 뒤에는 지방 검찰청 발령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사람이다. 노여움을 타지 않는다. 


하지만 한여진은 견뎌야 한다. <비밀의 숲 2>는 그 지점에서 <비밀의 숲>이 보여주지 않았던 진실 하나를 시청자에게 쥐여준다.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는 황시목이 검찰 비리를 도장 격파하듯 깨부수는 과정은 일말의 판타지다. 그는 결코 다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판타지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한여진과 같다. 조직의 총애를 받던 정보국장이자 누구보다도 자신이 존경했던 상사 최빛(전혜진)의 운명을 비틀어버린 한여진은 그 정의로움으로 인해 조직 내에서 투명인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여진은 리얼리티의 통증이다. 더 이상 드라마로 간과할 수 없는 이 사회의 민낯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시청자의 마음을 움켜쥔다. 정의로움에는 대가를 요구하는 조직에서는 기댈 사람이 없으니 쓴 소주로 달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이해하게 만든다.

<비밀의 숲>에 비해 <비밀의 숲 2>가 산만하고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처럼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결말에 다다라서 여전히 떡밥은 살아있고, 죽지 않고 돌아온 서동재(이준혁)가 쥐고 있는 패와 한조 그룹의 회장 이연재(윤세아)의 야심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황시목으로 인해 범죄행각이 드러난 부장검사 우태하(최무성)의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고, 황시목의 보기 드문 뒷배라 할 수 있는 동부지검장 강원철(박성근)은 야인이 됐다. 그리고 한여진은 조직생활이 고독해졌고, 황시목은 또다시 강원도로 발령이 났다. <비밀의 숲 2>는 엄연히 한 번의 시즌으로 완결될 이야기가 아니다. 애초에 다음 시즌을 노리고 기획된 절반의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새로운 절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비밀의 숲 3>를 기대한다. 그 못다 한 이야기를 완수했을 때, 이 절반의 이야기에 대한 평가도 온당해질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이젠 황시목이 마음 편히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는 모습도 한 번쯤은 보고 싶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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