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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Dec 16. 2020

'싱어게인' 노래여 영원히

듣고, 보는 즐거움을 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관하여

새삼 놀랍다.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새삼 놀란다. 세상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참 많구나. 요즘은 지난 11월에 시작한 JTBC <싱어게인> 덕분에 그렇다. <싱어게인>은 무명가수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된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마치 <슈퍼스타 K>와 <투유 프로젝 –슈가맨>을 오디션 프로그램의 틀에 넣고 적절히 흔들어 섞은 듯한 인상이다. 실제로 <싱어게인>의 제작진은 대부분 <슈가맨>을 연출한 PD들로 구성된 만큼 지난 성공 사례로부터 힌트를 얻어 파생된 후속 기획처럼 보인다. 이름을 알리고 싶은 무명가수와 과거 유명한 노래를 불렀지만 잊힌 가수가 함께 경합을 벌이는데 새로운 얼굴을 보는 신선함과 노래나 이름을 통해 재발견하는 반가움이 교차한다. 그만큼 세대를 아우르는 화제성을 낳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월 14일에 방영된 5회는 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새롭게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싱어게인>만이 아니다. 차세대 포크&어쿠스틱 뮤지션을 발굴하는 국내 최초 포크 뮤직쇼 <포커스>와 가수 지망생 자녀를 둔 부모와 직접 심사위원이 대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캡틴>도 지난 11월부터 엠넷에서 방영 중이다. 어쿠스틱 뮤지션을 발굴하겠다는 <포커스>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참가자의 공연이 이어지는데 어딘가 지나치게 단조롭다는 인상이다. 수준급 실력을 가진 참가자의 무대도 적지 않고, 무대에 집중하는 편집 덕분에 듣는 재미가 상당할 법도 한데 상대적으로 밋밋한 연출이 무대의 생동감을 제한하는 것 같다. 동시에 심사위원들의 리액션도 대체로 심심하고, 진행을 맡은 장성규의 역할도 부재한 인상이다. 전반적인 활기가 빈약하다.


가수를 지망하는 10대 자녀와 부모님이 함께 동석하는 콘셉트로 오디션 프로그램계의 ‘스카이캐슬’로도 불리는 <캡틴>은 참가자의 오디션보다 참가자의 부모님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애초에 음악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를 염두에 둔 것 같지 않다는 인상이 느껴질 정도인데 결국 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심지어 회차가 거듭될수록 자식의 오디션 준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부모의 모습을 부각하면서 보다 자극적인 편집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느껴지는데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하향 평준화된 <프로듀서 101> 스핀오프 버전처럼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포커스>와 <캡틴> 모두 1%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며 <싱어게인>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화제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반면 <싱어게인>은 시청자의 흥미를 다양하게 사로잡는 동시에 참가자의 매력을 확실하게 드러내면서도 진행자인 이승기와 심사위원들의 역할을 적절하게 안배하고 있다는 인상이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는 JTBC의 <팬텀싱어>를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는데 진행을 맡은 전현무가 매끄럽게 흐름을 잡아주고 심사위원들이 전문성 있는 심사를 하는 동시에 때론 시청자 입장으로 참가자들의 공연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리액션을 하는 방식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가 <싱어게인>에서도 감지되는데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는 다양한 세대의 시청자들을 공감하게 만드는 동시에 지나치게 가혹하지도, 관대하지도 않은 적정한 전문성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동시에 무대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적당한 활기를 불어넣는 이승기의 진행도 원숙하다.

잘 알려진 노래를 부른,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의 무대를 만나는 재미. <싱어게인>이 방영 초기부터 화제를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발견과 재발견이 어우러진 무대 그 자체였다. 6개 조로 분류된 참가자 개인의 무대를 보여준 1라운드에서는 얼굴만 봐선 알 수 없어도 막상 노래를 듣게 되면 '어?' 하게 만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잘 알려진 노래를 부른,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의 무대를 처음으로 접하는 놀라움은 그야말로 <싱어게인>의 '킥'이나 다름없었던 것. 특히 크레용팝의 멤버인 초아가 홀로 무대에 올라 그 유명한 히트곡 ‘빠빠빠’를 부르는 순간은 <싱어게인>의 하이라이트로 꼽힐만한 무대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음정을 유지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다섯 명이 함께하던 무대를 홀로 소화하는 광경으로부터 전해지는 절실함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선희의 ‘한바탕 웃음으로’를 부른 초아의 2라운드 듀오 무대는 이 프로그램의 결실을 목격하는 순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유명세에 비해 저평가받았던 가수를 발굴해낸다는 취지와 완벽하게 부합한 무대였다.


그러니까 결국 노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이들은 많지만 결국 누군가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때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매회마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순간을 시청자는 즐기지만 결국 참가자에게는 그 순간이 매번 마지막 기회일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획자가 이 잔인한 게임을 마음 편히 즐기게 만든다는 건 상도덕에 어긋난 행위다. 참가자 당사자의 실력이 떨어져 탈락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당사자의 절실함을 뭉개버리는 편집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싱어게인>은 그런 예의를 아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최선을 다한 출연자를 최대한 매력적으로 비추고, 매정하게 밀어내지 않는다. 탈락한 참가자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그 이름을 받아 적는 심사위원의 행위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예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냉혹한 무대다. 누군가에게 다음 무대가 허락된다는 건 누군가는 다음 무대를 허락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연적으로 회를 거듭할수록 무대는 넓어질 수밖에 없다. 무대에 설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처럼 보이지만 막상 무대에 선 사람에게 소중한 건 당장 그 무대에 섰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무대를 헛되지 않게 배려하는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력이나 다름없다. 물론 누가 붙고, 떨어지는가를 따라가는 것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재미란 바로 그 누구에게 일말의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에게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무대에 선 참가자를 매 순간 빛나는 별로 만들어주는 것, 그럼으로써 프로그램의 가치를 보다 높은 곳에 세우는 것, 그것이 성공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비결이 된다는 것, <싱어게인>은 그걸 잘 알고 있는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끝까지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대는 끝나도 영원할 노래를 위한 프로그램이길 바란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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