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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10. 2021

데이비드 보위가 노래한 미지의 내일

데이비드 보위는 어제를 노래하지 않았다.

1976년, 데이비드 보위는 29세였다. 30세를 목전에 두고 있던 데이비드 보위는 가진 게 없었다. 파산 직전이었다. 코카인 중독으로 영혼까지 야위어 있었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분간을 못했지만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알았다. 영광은 아득해졌고, 일상은 피폐해졌다. 삶을 다시 일으킬 전환점을 찾았다. LA를 등지고 독일로 날아가 베를린에 착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베를린이었다. 당시 독일은 분단국가였다. 동독과 서독이 나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경계가 국토라는 물리적 영역으로 구획된 세상이었다. 


“We can be heroes, just for one day.” “단 하루만이라도, 우린 영웅이 될 수 있어.” 데이비드 보위가 1977년에 발표한 12번째 정규앨범 <Heroes>는 베를린 장벽 인근에 위치한 한사 톤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데이비드 보위의 베를린 3부작이라고 불리는 앨범 중 하나인 <Heroes>에 수록된 타이틀 넘버 ‘Heroes’는 머리 위로 총알이 빗발치는 세상 속에서도 입을 맞추고 사랑함으로써 너와 내가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절규하듯 외치는 노래였다. 그리고 끝내 베를린 장벽을 흔드는 울림이 됐다.


1987년 6월 6일, 데이비드 보위는 독일 국회 의사당에 설치된 무대에서 너른 광장을 마주보며 ‘Heroes’를 노래했다. 베를린 장벽 너머의 동베를린 시민들도 베를린 장벽 앞으로 모여 함께 불렀다. 장벽을 기어오르는 이도 있었다. 그들을 진압하는 경찰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막진 못했다. 공연은 3일간 이어졌다. 그리고 3일 뒤에도 장벽 너머의 사람들의 끓는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2년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2013년, 데이비드 보위는 66세의 나이로 25번째 정규앨범 <The Next Day>를 발표했다. 10년만의 신보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과거형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던 데이비드 보위의 신보는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영국 앨범 차트 정상에 올랐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Heroes>의 커버 위에 <The Next Day>라는 타이틀이 기록된 사각 프레임을 얹은 커버아트가 인상적이었다. 1977년의 데이비드 보위를 가린 사각 프레임 위에 얹혀진 ‘The Next Day’는 어쩌면 데이비드 보위가 깨달은 미지의 내일이었을 것이다. 지워지거나 잊혀진다 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단지 미지의 내일이 다가올 뿐이라는 대가의 깨달음. 


<The Next Day>는 영웅을 노래하던 1977년의 데이비드 보위가 짐작하지 못했던 미래였다. 그리고 2013년의 데이비드 보위가 직면한 현실 또한 언젠가 지나갈 날이었다. 미래는 언제나 미지의 세계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있었다. 타이틀 넘버 ‘The Next Day’에서 그는 “난 여기 있어. 그렇게 죽지 않아(Here I am, not quite dying)”라고 노래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The Next Day’는 다음날의 삶이 아니라 다음날의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사라진 이후에도 자신의 존재를 바라볼 이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노래하던 1977년의 자신도, 2013년의 자신도 흘러간 지난 날이 되겠지만 사라지지 않을 별이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The Next Day>에 수록된 ‘The Stars (Are Out Tonight)’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별은 결코 잠들지 않아(Stars are never sleeping).’ 2016년 1월 10일, 데이비드 보위는 눈을 감았다. 26번째 정규앨범 <Black Star>를 공개한 다음 날이었다. 잠들지 않는 별을 남기고 그렇게 떠났다.


('ESQUIRE KOREA'에 썼던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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