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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13. 2021

'유 퀴즈 온 더 블럭'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성공을 전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지난 방송이었던 유 퀴즈 ‘담다’ 특집은, 각자 인생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어떻게 담고 살아왔는지를 전해드리고자 기획하였습니다. 저희는 그 이야기를 다루면서 제작진의 무지함으로 시청자분들께 큰 실망을 드렸습니다. 이에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이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제작진이 공식입장으로 전한 사과문 중 일부다. 제작진이 이렇게 사과문을 발표하게 된 건 지난 1월 6일에 방영한 88회에 섭외한 게스트와 관련된 논란 때문이었다. <유퀴즈> 88회에서는 ‘2021년, 우리는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비우면 좋을지?’라는 기획 의도로 ‘담다’ 특집을 마련했는데 여섯 개의 의대에 동시에 합격했다는 신 씨의 출연으로 프로그램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실 <유퀴즈> 88회를 봤다고 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고 지나간 사람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법은 아니니까,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섯 개 의대에 동시에 합격한 것이 불법은 아니다.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 과정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해당 방송에서 밝힌 것처럼 신 씨는 경기과학고등학교 졸업생이다. <유퀴즈>는 신 씨가 졸업한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자막 처리하면서 ‘영재학교’라는 자막을 부연하듯 함께 달았다. 똑똑한 수재의 출연이라는 화제성에 날개를 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한 날개가 달려버렸다.


방송 직후 <유퀴즈>가 질타를 받은 건 과학고등학교 출신 학생이 의대 계열에 지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재학교와 과학고는 이공계와 과학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학교다.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교육 기관이다. 그래서 과학고 재학생이 의약학계열 대학에 지원하면 장학금을 비롯해 3년간 학교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회수하는 등의 불이익을 준다. 2021학년도 경기과학고 신입생 입학 전형요강에 따르면 ‘본교는 이공계열 수학,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영재학교이므로 의대, 치의예, 한의예, 약학 계열로의 진학은 적합하지 않음. 본교 입학을 위한 지원서 작성 과정에서 이에 관한 사항에 동의하는 경우에만 지원 가능함’이라고 명시돼있다. 


과학고에서 이렇게 강한 조치를 강구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약학계열에 지원하는 재학생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오전 11시 30분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를 비롯한 교육연대체는 ‘영재학교와 과학고 설립 취지에 맞는 입시와 체제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졸업생 기준 345명이 의약학계열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민 세금을 들여 만든 국가 교육 기관을 개인적인 입신양명의 발판으로 삼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불법은 아니다. 이공계에 투신하고 싶은 뜻이 있어서 과학고에 진학했지만 3년간의 재학 기간 중 의대에 가고 싶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10대라는 나이에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한 시행착오의 대가로 3년간 받은 지원금을 환수하고 교내 수상 경력에서 지워지는 과정을 경험한다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 해도 미화해선 안 될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그 선택 역시 존중할 수 있는 법이라지만 그 선택이 끼친 사회적 손실을 생각하면 그것을 두고 대단한 무언가를 이룬 것이라 칭송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단순히 한 사람의 이탈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기회와 가능성을 지워버린 결과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유퀴즈> 88회는 그러한 사회적 손실을 감당하게 만든 개인적 성취를 미화하고 권장하는 꼴이 돼버린 셈이 돼서 문제라는 것이다.


<유퀴즈> 88회에 신 씨가 출연한 건 수시전형에 지원한 여섯 개 의대에 모두 합격했기 때문이다. 보기 드문 성취를 보여준 수재라고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그가 왜 ‘2021년, 우리는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비우면 좋을지?’라는 기획 의도에 걸맞는 게스트인 걸까? 매번 귀감이 될만한 인물이 출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해당 주제에 어울리는 게스트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신 씨가 증명한 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시험을 잘 봐서 여섯 개 의대에 합격한 후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는 것일 텐데 그의 인생 어느 구석에서 2021년의 우리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비우면 좋을지 알려주는 힌트를 찾아야 하는 것인지, 해당 방송을 보면서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여섯 개의 의대 합격 사례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담고 비울 지혜란 무엇일까? 결과적으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성취라는 것이 드러난 지금의 상황을 보자면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이는 결국 성공이라는 수식어에 도취돼버린 실수가 아니겠는가.


<유퀴즈>의 미덕은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을 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각기 다른 이야기로 채워진 세계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루는 세계의 너비를 깨닫게 만든다는 점에서, 요즘 보기 드물게 진짜를 전하는 독보적인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비록 코로나 유행으로 예전처럼 길에서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됐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의 인사를 초대하며 다양한 흥미를 충족시키는 방식은 <유퀴즈>가 길에서 쌓아온 신뢰를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논란은 그동안 <유퀴즈>가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반환점처럼 보인다. <유퀴즈>가 성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답은 <유퀴즈>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에 있을 것이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주식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도 행복하겠지만 그것만이 인생의 척도 일리 없다. <유퀴즈>가 지금까지 길에서 증명해온 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평범하게 지나치던 수많은 얼굴로 살아온 각양각색의 삶,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란 결국 그런 삶의 희로애락으로 돌아가는 진짜 이야기라는 것. <유퀴즈>가 계속 진짜 이야기에 두 발을 딛고 걷길 바란다. 만인에게 허락될 수 없는 비좁은 욕망을 부채질하는 대신 건강한 삶을 꿈꾸는 프로그램이길 희망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잃지 않길 바라며, 지켜보겠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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