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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15. 2021

이모젠 커닝햄, 여성을 넘어선 사진가

최초의 여류 사진가로 꼽히는 이모젠 커닝햄은 사진가라는 정체성으로 살았다

이모젠 커닝햄의 이름은 그녀의 아버지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심벨린>의 공주 이모젠으로부터 빌려온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딸이 남다른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다. 그녀가 그 운명에 눈을 뜬 건 시애틀 워싱턴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06년경이었다. 등록금 원조의 명목으로 식물 사진 슬라이드 제작에 참여했던 그녀는 사진에 매료됐다. 훗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예술 위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내가 대단한 예술적 재능을 지녔다고 믿으며 예술학교에 진학시켰다. 하지만 사진가가 되길 원하진 않으셨다.” 왕이었던 아버지 심벨린이 점지해준 고귀한 신분의 남자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스스로 선택한 공주 이모젠처럼 이모젠 커닝햄은 아버지의 바람과 다른 길을 걸었다. 


이모젠 커닝햄은 70년의 세월을 카메라 뒤에서 살아왔다. 사진의 프레임을 회화의 캔버스처럼 인식한 회화주의적인 인물사진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그녀는 점차 사실적인 즉물주의로 나아가며 본격적으로 셔터를 눌러나갔다. 이모젠 커닝햄은 피사체의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추구하는 작가였다. 그녀가 바라본 뷰파인더 너머에는 이 세계의 맨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능적인 클로즈업으로 다양한 식물들을 스펙터클하게 포착하거나 다양한 남녀의 나신을 고요하게 응시한 사진들은 이모젠 커닝햄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모젠 커닝햄이 수많은 식물들을 근접해서 찍었다는 사실은 벌거벗은 인간의 육체를 과감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필름에 담아냈다는 점과 맞닿는다. 그녀의 누드는 섹슈얼리티가 아닌 오리지널리티에 가깝다. 그녀는 인간의 나체에 탐닉하는 대신 인간의 원형, 즉 육체를 드러냄으로써 자연적인 가치를 복원한다. 또한 그녀가 클로즈업한 식물들의 형태는 우리가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던 그 작은 형태 속에 담긴 세밀한 세계를 광대하게 비춘다. 이 말없는 피사체들의 나신이 저마다 하나의 우주로서 완성된 세계임을 인식하게 만든다. 원초적인 형태 자체가 이미 하나의 미학적 완결임을 깨닫게 만든다. 


“사진에 관한 나의 흥미는 미학과 관계가 있고 모든 것엔 작게나마 미적인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모젠 커닝햄과 에드워드 웨스턴, 안셀 아담스, 소냐 노스코비악 등과 함께 참여한 F64 그룹은 극도로 사실적인 형태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즉물주의와 사실주의의 미적 가치를 발전시켜나갔다. 대형 카메라 조리개의 최댓값을 의미하는 F64 그룹은 정밀 묘사가 가능한 카메라의 기계적인 특성을 이용해서 사진의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 사진 예술의 심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이 새로운 가능성이라 제시했고 이모젠 커닝햄은 그 그룹에 속한 유일한 여류 사진가에 머물지 않고 그룹의 비전을 제시하는 핵심 작가로 자리했다. 

화학 전공으로 사진 인화에 정통했던 이모젠 커닝햄은 <여성을 위한 직업으로서의 사진술>이라는 책을 출간하며 여성이 단순히 남성성에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를 위해서 전문적인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그녀는 페미니스트라는 규정을 넘어 자존적인 인간이자 자존적인 작가로서의 삶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식물을 찍었다는 걸 벌써 잊어버렸을 거다. 빛에 노출되는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아낸다는 생각으로 최고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팔고자 하니까.” 


1976년 9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모젠 커닝햄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최초의 여류 사진가로서가 아닌 사진가 한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셔터를 눌렀던 그녀는 '최초'나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사진'이라는 정체성으로 세상을 포착한 진정한 사진가였다.


(2012년 'ELLE KOREA'에 썼던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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