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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27. 2021

그렇게 '싱어게인'은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아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대하여.

‘또?’라는 물음표가 절로 떠오른다.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또 한다니, 보기 전부터 식상해지는 기분이다. 그만큼 기억에 남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날 확률도 내가 산 주가처럼 떨어지는 느낌이다. 사실 지금도 적지 않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하고 있다. 하지만 리모컨 채널을 돌리는 손가락의 관성을 막을 만큼 마음을 사로잡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기억은 그만큼 드물고 또 드물다.


JTBC의 <싱어게인>은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아직 무대를 꿈꾸는 모든 가수들의 한 번 더 오디션’이라는 취지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흔한 K팝 아이돌 그룹을 조직하겠다는 야심도, 뜨거운 트로트 열풍에 탑승하겠다는 욕망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퇴물이라 불리는 혹은 퇴물이라 불릴 기회조차 얻지 못한, 무명이 됐거나 애초에 무명이었던 가수들이 무대에 등장해 노래를 하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자격에 대한 심사를 받는다. 활자로만 봤을 때에는 딱히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겠지만 <싱어게인>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새삼 깨닫게 만드는 저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슈가맨과 팬텀싱어

지난 2020년 11월 16일에 방영한 <싱어게인>의 1회 시청률은 3%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3회 만에 7%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뒤 7화까지 꾸준하게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화제를 모은 비결은 바로 화제의 무대에 있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참가자들이 무대에 오를 때까진 그 정체를 알 길이 없지만 막상 노래를 시작하게 되면 너무 익숙한 곡이라 노래하는 얼굴을 멍하게 쳐다보는 경우가 적잖게 이어진다. 그리고 처음 보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노래를 하는 순간 낯설던 얼굴이 강렬한 첫인상으로 돌변하는 무명가수들의 무대가 이어진다. 


이는 JTBC의 <슈가맨 프로젝트>와 <팬텀싱어>를 연상시킨다. 한때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잊힌 가수를 다시 무대로 소환해 그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고 후일담을 들려준다는 <슈가맨 프로젝트> 그리고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낯선 성악가나 뮤지컬 배우를 한데 모아 경연을 펼치며 스타성을 얻은 4중창 팀을 만드는 <팬텀싱어>의 성공 사례가 다방면으로 잘 이입된 결과처럼 보인다. 실제로 <싱어게인>은 <슈가맨 프로젝트>의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싱어게인>은 대중이 바라는 노스탤지어를 제공해본 경험이 충분한 제작진의 노하우가 잘 적용된 스핀오프인 셈이다.

 

심사위원의 눈물

<K팝스타>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박진영의 ‘공기 반 소리 반’ 발언은 지금도 회자되는 이슈다. 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의 존재감이 얼마나 막대한가를 대변하는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은 참가자보다 먼저 인식되는 존재다. 그만큼 심사위원의 존재감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종종 독설에 가까운 심사평을 통해 확고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심사위원이 해당 프로그램의 아이콘이 된 경우도 생겨난다. 하지만 참가자보다 심사위원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실질적으로 실패한 결과나 다름없다. 속된 말로 망한 것이다.


<싱어게인>에는 여덟 명의 심사위원이 등장한다. 각기 연령대가 다르고, 음악적 지향점도 다채롭다. 각자의 세대와 추구하는 장르가 다르니 동일한 경연자에 대한 평가가 종종 엇갈리기도 하지만 이는 결국 다양한 관점을 수용한 심사라는 측면에서는 공정성이 강화되는 인상이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대로 투표한 다수결 원칙에 의해 출연자의 탈락 여부를 가리니 민주주의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심사위원들의 코멘트가 지나치게 가혹하지도, 관대하지도 않은 적정한 전문성을 발휘하는 인상이란 점에서 보기에도 편안하다. 무대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적당한 활기를 불어넣는 이승기의 진행도 매끄럽다.


심사위원은 경연의 평가자이기도 하지만 공연의 관객이기도 하다. <싱어게인>은 종종 참가자의 경연에 몰입한 심사위원의 표정을 비추며 해당 무대가 전하는 감동과 흥분이 진짜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러다 간혹 몇몇 심사위원이 흘리는 눈물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누구보다 중립적이어야 할 심사위원이 눈물을 흘리다니 전문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결국 노래는 마음을 울리는 것이고, 무대에 선 경연자의 간절함이 반영된 무대를 마주하는 심사위원 역시 한 사람의 청중일 수밖에 없으므로 오히려 심사위원의 눈물은 시청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창과 같은 노릇을 한다.


스타 탄생

오디션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냉혹한 무대다. 누군가에게 다음 무대가 허락된다는 건 누군가는 다음 무대를 허락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연적으로 회를 거듭할수록 무대는 넓어질 수밖에 없다. 무대에 설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처럼 보이지만 막상 무대에 선 사람에게 소중한 건 당장 그 무대에 섰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무대를 헛되지 않게 배려하는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력이나 다름없다. 


<싱어게인>은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사연팔이에 골몰하는 기색도 없고, 시청자의 궁금증을 인질 삼아 불필요한 반복을 거듭하는 편집 따위를 동원하지 않는다. 경연자의 노래가 시작되면 그 무대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인상이다. 그러니까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는 재미로 망라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덕분에 뛰어난 공연을 펼친 경연자는 그만큼 주목받게 된다. 여전히 무명가수라 불리지만 경연에 계속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된 이상 무대 위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온전히 참가자의 몫으로 배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싱어게인>은 매번 찾아오는 무대가 어떤 결과로 종착할지 모른다 해도 무대에 선 참가자를 매 순간 빛나는 별로 만들어주고자 노력하는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빛나는 것에 끌리게 돼있다. 그래서 하늘을 보고 별을 가리키듯 스타가 탄생할 무대를 기대한다. <싱어게인>은 그걸 잘 아는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그렇다.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교정>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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