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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28. 2021

'경이로운 소문' 비록 유종의 미는 아니었다 해도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의 가능성을 한 뼘 넓힌 '경이로운 소문'에 대하여

기대 이상이었다. 2020년 11월 28일에 방영을 시작한 <경이로운 소문>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드라마였다. 사실 1화는 재미있게 본 원작 웹툰을 실사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점에 대한 호기심이 동해서 봤다면 2화부터는 원작의 영향력보단 드라마 자체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주행 했다. 일단 필연적으로 원작과 달라진 몇 가지 변화가 원작과 차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상이다. 특히 몇몇 캐릭터의 성격이나 기질이 조금씩 변형되고, 역할과 비중에도 변화가 생겼다. 결과적으론 모든 캐릭터가 제 자리를 준수하게 사수하며 서사의 너비를 입체적으로 확장하는 모양새라 성공적인 각색이라 평할만하다.


<경이로운 소문>은 한국판 슈퍼히어로물이라 칭해도 좋을 만한 가능성을 연 작품이다. 퇴마사의 슈퍼히어로 버전 같은 ‘카운터’는 코마에 빠진 이들에게 악귀를 잡는 새로운 생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적절한 설득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카운터로서의 생과 개인으로서의 삶이 충돌하는 내러티브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면에서도 준수한 캐릭터 착상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전통적인 사후 세계의 이미지를 응용한 듯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자리한 영역인 ‘융’과 그곳에서 카운터를 관리하는 ‘융인’과의 관계는 작품의 판타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카운터들과의 감정적 갈등과 봉합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쓸모가 많은 설정이다.

이렇듯 <경이로운 소문>은 슈퍼히어로물과 퇴마 장르를 버무린 컨벤션처럼 보이면서도 아류작으로 주저앉지 않고 자기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유사 장르물의 기시감을 느끼게 만들지만 진부하게 모방하는 대신 독창적으로 응용해낸 결과다. <경이로운 소문>이 드라마로 제작될 수 있다고 여겨진 첫 번째 자질은 아마 이런 세계관 덕분이었을 것이다. 한편 드라마는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자칫 방심하면 유치하게 방치되는 꼴이 될 수도 있는 원작의 세계관을 보다 현실성 있게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카운터들의 만화적인 초능력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는데 공헌한 특수효과의 조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배우들의 호연이 극을 탄탄하게 받쳐준 공헌도가 크다.


타이틀롤을 맡은 소문 역의 조병규는 <경이로운 소문>을 통해 주연배우로서 자기 역할을 끌고 가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설득했다. 무엇보다도 <경이로운 소문>의 재발견은 도하나 역의 김세정인데 원작을 즐겨본 독자 입장에서도 원작의 캐릭터를 잊을만한 호연을 펼치며 이후 활동에 대한 기대감마저 쥐여준 인상이다. 가모탁 역의 유준상은 진지한 톤에 비해 만화적인 위트가 굉장히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점에서 독특한 개성을 확보하고 장르적인 흥미를 캐릭터 표현 자체로 잘 보좌해냈다. 주매옥 역의 염혜란은 만화적인 설정이 부각돼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 라인에 생생한 감정을 불어넣는 리액션으로 극에 현실감을 더한다.

카운터의 반대편에 선 메인 빌런 지청신 역을 맡은 이홍내의 살벌한 인상은 그 자체가 <경이로운 소문>의 장르적 미장센이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백향희 역의 옥자연 역시 새로운 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과장된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도 보다 다채롭고 유연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배우라고 짐작할 만한 호연을 보여줬다. 김세정만큼이나 이후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배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슈퍼히어로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메인이벤트나 다름없는 끝판왕의 위력이 대단해야 한다는 것인데 권력에 대한 욕망이 들끓는 음흉한 내면을 숨기고 온화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표리 부동한 정치인 신명휘를 연기한 최광일의 호연도 그만큼 돋보이는 것이었다.


드라마로 극화된 <경이로운 소문>이 원작과 가장 크게 거리를 벌린 건 정치인과 재벌 그리고 공권력의 부패한 삼위일체를 보다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정경유착을 타파하는 카운터들의 활약상을 메인 플롯에 가깝게 재배치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작 팬들의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다분한데 이러한 선택이 분명 결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메인 플롯인 악귀를 잡는 카운터의 활극을 중심으로 정경유착의 뿌리를 추적하는 서브플롯이 더해지며 이야기의 결을 보다 확장하고 플롯 간의 내러티브를 입체적으로 구조화하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악귀를 잡는 카운터의 활약상을 토대로 정경유착과의 대결로 진입하며 본론이 달라진 인상이다. 그만큼 결말부에 다다를수록 독자적으로 구조화된 이야기를 좀 더 확실하게 갈무리하는 서사를 밀고 나가면서도 장르적인 연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보였다.

<경이로운 소문>을 정주행 한 시청자라면 13화부터 전반적으로 작품의 설정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카운터들과 악귀가 들린 신명휘의 대결로 압축되는 시점부터 서사도, 연출도 자꾸 머뭇거리는 인상이다. 2화 분량이면 해결될 일이 4화를 버티느라 애쓰는데 정작 할 말이 없어서 이상한 짓을 보태는 것만 같다. 이전화에 비해 낭비적인 액션 연출이 눈에 띄게 잦아졌고, 캐릭터 간의 밸런스도 붕괴돼서 전후의 아귀가 맞지 않다는 의심을 갖게 만들며 대결 신의 긴장감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기본적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각본이 망가진다는 인상인데 필연적으로 각본가가 하차한 것이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심증이 다분하다. 그런 면에서 초반의 기세를 생각했을 때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듯한 결말부의 형세는 여러모로 아쉽다. <경이로운 소문>은 분명 새로운 장르물로서 좋은 선례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받을 만한 자질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이로운 소문>이 나름의 성취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므로, 이미 제작을 확정한 시즌2에서는 이러한 아쉬움을 잘 만회해주길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잔인하지 않아도 좋은 장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한 OCN 작품이란 점에서 <경이로운 소문>은 이미 좋은 선례일지도 모른다. 장르물의 긴장감을 만드는 건 피범벅의 미장센이 아니라 매력적인 서사와 캐릭터다. <경이로운 소문>의 매력은 분명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들의 ‘사이다’ 활약상을 지켜보는 쾌감이었다. 그런 면에서 장르 전문 채널을 표방하는 OCN이 <경이로운 소문>을 통해 경험한 경이적인 시청률을 약처럼 삼킬 수 있길, 보다 다채롭고 도전적인 장르적 재미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성취가 명확한 드라마의 각본가를 중간에 교체하는 건 독약을 삼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 또한 제발.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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