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가 순심이와 보낸 3647일은 둘만의 시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태어남은 늘 죽음으로 종착하므로, 만남 역시 헤어짐으로 수렴할 운명이다. 그리고 언제라도 그러하듯이 죽음 너머로 다가오는 애수의 시간은 살아남아 그 이별을 감당하는 이들의 몫이다. 그렇게 죽음이 생을 더욱 생생하게 환기시킨다는 건 살아가면서 감내해야만 할 역설의 진리다. 그리고 그 모든 죽음이 산 자의 삶을 비애와 우울에 가두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보다 일찍이 다가온 환희와 사랑을 환기시키며 그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전에 찾아온 빛의 시간을 마주하게 만든다. 서로에게 전해지던 체온과 박동의 감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아마 단 한 번이라도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시간이 있다면, 그래서 그들과 이별했던 경험이 있다면 두세 번쯤 마음이 울컥했을 것이다. 지난 5월 9일과 16일에 1부와 2부로 나눠 방영한 SBS <TV 동물농장>의 특별기획 ‘효리와 순심이’를 시청했다면 말이다. ‘효리와 순심이’는 지난 2020년 12월 23일 새벽 다섯 시경에 세상을 떠난 순심이와 함께 3647일을 보낸 이효리의 시간을 재구성한 기획이다. 이효리의 유명세만큼이나 함께 유명해진 반려견 순심이는 잘 알려진 것처럼 처음부터 사랑받을 팔자를 타고난 것처럼 살아온 강아지였던 건 아니었다.
이효리가 순심이를 처음 만난 건 봉사 활동을 하던 안성 평강공주 보호소였다. 견사에 두세 마리씩 함께 자리한 보호소에서 유독 홀로 분리된 강아지가 눈에 띄었고, 다른 아이들의 공격을 받아 따로 혼자 분리하게 됐다는 것이 그 연유였다고 한다. 성격이 순해서 그리 불리게 됐다는 순심이는 그렇게 이효리의 눈길을 끌었고,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다. 그 뒤로도 한 달에 한 번씩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순심이를 만나게 된 이효리는 유기견과 함께 잡지 화보 촬영을 할 기회가 생겨 이것이 순심이를 입양 보낼 기회라 여겼다.
하지만 순심이는 이미 한쪽 눈이 실명됐고 자궁축농증이 심해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리고 수술 후 입양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진 순심이를 다시 보호소에 돌려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린 이효리는 결국 순심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유기견으로 길거리를 헤매다 동해시 보호소에 입소한 뒤 안락사 직전에 한 봉사자 손에 구조돼 안성의 보호소에서 3년을 지낸 순심이는 여섯 살의 나이에 비로소 이효리를 만났고, 3647일 동안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3647일은 비단 이효리와 순심이를 위한 시간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 명에 달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동물들이 버려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지난 5월 17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표한 ‘2020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유기동물의 수는 13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9만 5000여 마리의 개와 3만 4000여 마리의 고양이가 유기됐고 그중 반려인에게 다시 인도된 수는 11%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25% 이상의 유기동물이 자연사했고, 20% 이상을 안락사했다고 한다. 이는 등록된 반려동물의 수 안에서 집계한 결과이므로 보다 많은 반려동물이 유기되고, 죽어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입양한 고양이 ‘구니니’는 페르시안 친칠라 계열로 추정되는 품종묘다. 애초에 길고양이였을 가능성이 희박한 아이였다. 심지어 중성화 수술까지 된 상태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네 놀이터에서 지인이 발견했고, 집에서 잘못 나와 돌아가지 못한 고양이일수도 있으므로 다양한 경로로 주인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서 임시보호를 하다 결국 입양한 뒤 지금까지 4년째 함께 살고 있다. 가끔씩 구니니를 보면서 이 아이가 대체 왜 길을 헤매게 됐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버려지는 동물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반려동물을 손쉽게 사고파는 사회에 대한 근심이 생겼다.
예쁜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당연하겠지만 예쁜 것이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 욕망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예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이유로 아이를 사고팔 수 없듯이 예쁜 개나 고양이를 갖고 싶다는 이유로 사고팔 수 없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장려하고 사용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액세서리처럼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기는’ 의미를 지닌 ‘애완’ 대신 ‘짝이 되는 동무’라는 의미를 가진 ‘반려’를 사용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주인과 애완동물이라는 종속된 관계가 아닌 반려인과 반려동물이라는 동등한 관계로 바라보자는 제안인 셈이다. 소유가 아닌 공생을 권하는 운동인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백 번의 주장이 아니라 한 번의 실행이다. 이효리와 순심이가 보낸 3647일의 시간은 그 어떤 권유보다도 강력한 메시지다. 물론 이효리가 순심이를 입양하고 함께 살아온 나날이 유기된 동물을 입양하자고 권유하기 위한 결심에서 비롯된 행위였다는 납작한 주장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이효리를 본받아 당장 유기견 보호소에서 동물을 입양하자고 권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두가 공감한 이야기를 복기하는 것뿐이다. 어차피 이효리와 순심이의 사연에 코끝이 찡한 감정을 느낀 당신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하는 것만큼이나 버려지는 동물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동물을 사고파는 행위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 당장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반려동물을 손쉽게 사고파는 사회에서 손쉽게 버려지는 반려동물들이 상당하다는 건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문제다. 가장 약한 존재를 잘 돌보려는 노력은 결국 모든 이들이 잘 살아가는 환경을 꿈꾸는 노력과 같다. 인간의 그림자를 살피는 노력만큼이나 동물의 그림자를 살피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란 결국 인간만을 위한 세상일 수 없는 법이다. 꼬질꼬질해진 털에 덮여 우울하게 주눅든 보호소의 개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 윤기 나는 털과 밝은 표정을 회복한 모습을 볼 때 보는 이의 마음도 함께 회복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생각 이상으로 그렇게 함께 행복해진 세계에서 희망을 느끼고 그런 세상을 염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지만 한때 개와 함께 산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하늘이라고 불렀던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6년이 됐다. 혈액암에 걸린 하늘이는 1년여 동안 항암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났다. 김포에 있는 화장장에서 마지막으로 만진 하늘이의 몸이 너무 차가워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울컥해진다. <TV 동물농장>의 ‘효리와 순심이’를 보면서 그날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이효리의 말처럼 이제는 그때만큼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 않지만 여전히 하늘이와 함께한 순간이 떠오르고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조금 알게 된 것이 있다.
당장 찾아온 이별의 슬픔을 견디고 나니 그 이전의 기쁨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헤어짐의 슬픔은 결국 지난날의 기쁨이 밀어낸 파도 같은 것임을 알게 됐다. 한 주먹만 한 크기로 온 집안을 방방 뛰어다니던 하늘이의 모습이 여전히 선하다. 하늘이와 보낸 8년여의 시간은 그 이별을 통해 더욱 선명해졌다. 하늘이와 함께한 시간은 여백처럼 방치했을지도 모를 어떤 시간을 보다 정성껏 채색한 시간이었다. 선물 같은 순간들이었다. 이효리와 순심이가 보낸 시간을 통해 문득 그 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에 대해 곱씹게 됐다.
순심이를 보낸 이효리는 순심이가 가고 나서 다른 개들에게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이별하는 순간에 제일 후회했던 것들을 후회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자신을 변화시키고 간 순심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렇게 떠나간 순심이가 남긴 선물을 곱씹었다. 그렇다. 이별을 받아들인다는 건 지난 날의 슬픔을 견디고 누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지금을 더욱 소중하게 아낄 수 있는 마음을 전해준 시간에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잊는 것이 아니라 더욱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했던 시간을 더욱 간절하게 그리워함으로써 지금을 보다 진실되게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에게 살아갈 위안과 용기를 준다. 그렇게 다른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선한 영향력이란 말이 쓰이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멋진 미담이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효리와 순심이가 보낸 3647일의 시간은 이효리와 순심이의 관계를 넘어 세상에 찾아온 멋진 선물 같다. 수많은 동물들이 버려진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수많은 마음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버려진 동물이 다시 좋은 반려인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고요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은 그렇게 떨어진 마음을 다시 한번 품게 만드는 일이 된다. 그렇게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핀다. 우리는 분노가 아닌 공감을, 악의가 아닌 선의를 갈망하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 믿음을 주는 이야기란, 삶이란 귀하고 중하다. 그러니까, 사지 말고 입양하길. 그리고 함께 한다면 반드시 끝까지 함께 하길. 그렇게 당신도 평생을 함께할 선물 같은 시간을 만날 수 있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