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희사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Jun 19. 2021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 입심의 재발견

맛깔나는 입심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꼬꼬무2'의 비결에 관하여.

“요즘 사람들이 이거 많이 보더라.” 아내의 말을 듣기 전까진 리모컨 채널을 돌리던 손가락이 멈출 계획이 없었다. 아내가 ‘이거’라고 지칭한 프로그램은 SBS의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이하, <꼬꼬무 2>)였다. 당연히 처음 보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다만 시즌2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몰랐다. 물론 시즌제에 돌입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게 중요했다는 건 아니고, <꼬꼬무>가 시즌을 이어갈 만큼 대단한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의미다.


사실 처음에는 좀 간지러운 콘셉트라고 생각했다. 소위 ‘장 트리오’라고 불리는,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이 세 사람의 화자가 각각 청자 역할을 하는 연예인 게스트 한 명을 앞에 두고 과거에 일어났던 어느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화자는 고정이고, 청자는 매번 바뀐다. 여기서 간지럽다는 의미는 화자와 청자가 모두 흥미진진한 얘기를 하고, 듣는다는 듯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의 연출 자체가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당일의 화두로 내세운 이야기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그게 아닌 척 연기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치 사담을 나누듯 만난 두 사람의 모습을 연출하는 방식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는 의미다. 그래서 일찍이 <꼬꼬무>를 챙겨보는 시청자는 아니었다. 해당 프로그램의 연출 방향이 개인적인 취향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보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탓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편의 방송을 챙겨본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꼬꼬무>에서 <꼬꼬무 2>로 시즌을 이어가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납득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해 보기 전부터 간지럽게 느끼긴 했지만 <꼬꼬무>가 화자와 청자를 1:1 대화 형태로 연출하는 건 영리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꼬꼬무>와 유사한 토크 예능의 형식을 떠올려보자. 구체적으로 <알쓸범잡>이나 <수요괴담회> 같은 프로그램이 적절할 것 같다. 대여섯 명의 패널이 나란히 앉거나 둘러앉아서 저마다 한 번씩 화자 역할을 하고, 누군가가 화자 역할을 할 때 나머지 패널이 청자 역할을 한다. 모두가 말할 권한이 있고, 들어줄 책임이 있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또 다른 분리된 관객이 된다.


비유하자면 <백분토론> 같은 구조다. 시청자는 화면 너머에 자리한 이들끼리 말하고 듣는 것을 구경하는 장외의 관객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꼬꼬무>는 정확하게 화자 역할을 하는 진행자와 청자 역할을 하는 게스트가 1:1 구조로 구성돼있다.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듣는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물리적으로 장외에 있지만 의식적으로 장내에 자리한 것처럼 실감한다. 화자 역할을 맡은 고정 패널의 말에 집중하며 충실하게 청자 노릇을 하는 게스트는 시청자의 감정을 중매하듯 리액션한다.

<꼬꼬무>는 그렇게 시청자로 하여금 친근한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착각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보다 생생한 몰입감을 주입한다. 그 과정에서 화자 역할을 하는 세 사람,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은 <꼬꼬무>의 삼위일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란 결국 재미있어야 듣는 것이다. 아무리 놀라운 주제나 소재를 말한다고 한들 말이 심심하면 두세 마디를 견디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장트리오의 입담은 <꼬꼬무>를 듣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만든 알파이자 오메가다. 그리고 이렇게 세 화자의 입을 빌린 형식 역시 흥미롭다.


사실 입은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하지만 <꼬꼬무>는 각기 다른 장소에 자리한 세 인물이 각기 다른 세 인물과 제각각 동일한 주제를 두고 대화하는 풍경을 교차편집하며 인위적인 각본을 바탕에 둔 프로그램이라는 의식을 적절히 무마시킨다. 그리고 각기 다른 세 공간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오가는 편집 형식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듣는 이들의 다양성을 인지하도록 유도하며 이를 통해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근거와 여지를 폭넓게 제시하고 확보한다. 그리고 컷 단위로 속도감 있게 이어 붙인 교차편집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역동적인 감상을 부여하며 극적인 흥미를 끌어올린다.


이러한 연출의 묘는 <꼬꼬무>의 궁극적인 지향점 즉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맛깔나게 살리는 수식어와 같다. 출연자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효과적인 기교를 동원한 셈이다. 그러니까 <꼬꼬무>의 주인공은 바로 이야기 자체다. 그리고 <꼬꼬무>에서 다루는 이야기란 주로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던 정치적/사회적 사건이다. 그러니까 잘 알려진 사건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문 사건의 내막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 작금의 시대에서 곧잘 간과되는 어떤 화두를 제시한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대도와 탈옥수의 말로와 고백은 법치주의의 구멍 속에서 자라나는 악의와 열광의 아이러니를 체감하게 만든다. 대통령 영부인을 시해한 총탄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무너진 백화점은 허술한 시스템이 야기하는 부작용과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인간의 욕망이 망가뜨린 현실을 곱씹게 만든다. <꼬꼬무>는 사건의 이면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럼으로써 중요한 진실이 손쉽게 훼손되고 왜곡된 진실이 세상을 유린하는 작금의 세상을 보다 세심하게 살펴보길 권하는 것 같다.


온갖 자극적인 거짓말이 돈이 되는 시대다. 진실과 무관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배후에 무언가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이런 주장이 만인의 사고를 지배하는 데 성공하면 수익이 발생한다. 유튜브를 비롯한 SNS와 다양한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서 밑도 끝도 없이 돌고 도는 의혹은 어느 순간 참말이 되고, 불분명한 배후의 소행이라는 음모까지 더해지며 왜곡된 이야기가 규명해야 할 진실의 탈을 쓰고 세상을 되레 유린한다. 그런 면에서 <꼬꼬무>는 진실 자체가 사랑받는 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보다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다 떠나서 듣는 재미가 상당하다.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펜트하우스 3' 게임의 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