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가 대두되는 현상에 관하여.
“요즘 넷플릭스 뭐 봐?”라는 물음이 안부인사처럼 자연스럽다. ‘몰아보기’가 아니라 ‘빈지와칭(Binge-watching)’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태초에 썼던 언어처럼 손쉽게 발음하는 것도 이제 흔한 일이다. ‘넷플릭스 본다’는 말은 이제 ‘TV 본다’는 말보다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일상이 됐다. 사실 오래된 일도 아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16년 1월이었다. 그러니까 불과 5년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요즘 넷플릭스 뭐 봐?”라는 물음이 안부인사처럼 자연스러워진 것이 말이다.
모든 커피를 ‘스타벅스’에서만 마시는 게 아니듯 모든 영상 콘텐츠를 넷플릭스에서만 보는 것도 아니다. 넷플릭스는 OTT 서비스의 주류로 꼽히는 고유명사다. 여기서 OTT란 ‘Over The Top’의 약자로 즉 셋톱박스(Top)를 넘어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총칭하는 신조어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케이블 채널이나 IPTV가 셋톱박스와 같은 물리적 장치를 대여하는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과 달리 넷플릭스로 위시한 OTT 서비스는 인터넷 망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스트리밍 방식으로 서비스한다.
OTT 서비스 춘추전국시대
현재 국내에서 구독 가능한 OTT 서비스는 넷플릭스 외에도 다양하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여겨지던 2019년부터 가시화되던 국내 OTT 서비스가 대부분이다. KBS, MBC, SBS 지상파 방송국 3사가 운영하던 ‘푹’과 SK브로드밴드에서 운영하던 ‘옥수수’를 통합한 ‘웨이브’와 CJ ENM과 종합편성 채널 JTBC가 합작한 ‘티빙’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미디어 플랫폼인 방송사가 직접적으로 OTT 서비스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에 가깝다.
한편 IPTV와 위성방송을 비롯해 1300만 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KT는 OTT 서비스 ‘시즌’을 독자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영화 평점 앱으로 시작한 ‘왓챠’는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중점적으로 제공하는 OTT 서비스로 변모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독보적인 이커머스 기업으로 꼽히는 쿠팡은 유료 멤버십 고객에게 제공하는 OTT 서비스 ‘쿠팡 플레이’를 시작했다.
국내 OTT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20년 유료 가입자 수가 330만 명에 달한다고 발표한 넷플릭스가 압도적이다. 국내 OTT 서비스가 넷플릭스의 독주를 막을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단순히 넷플릭스를 이기는 것이 국내 OTT 서비스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대두된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빠르게 촉진된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비전을 확보해야 하는 건 영상 플랫폼 산업의 숙명이다. 게다가 넷플릭스만큼 강력한 글로벌 OTT 서비스가 연착륙할 예정이기도 하다. 영토를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디즈니플러스가 온다
지난 4월부터였다.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꼽히는 월트디즈니컴퍼니의 OTT 서비스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진출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5월부터 서비스될 것이라 전망하는 매체도 있었지만 결국 ‘헛다리 짚기’로 판명된 가운데 올해 안에는 확실히 국내 서비스가 시작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 대부분의 중론으로 보인다.
‘아브라카다브라’ 같은 주문을 외우는 게 아니다. 지난 4월 28일 영상물등급위원회 온라인등급분류서비스에 <만달로리안>을 비롯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등급분류 심의 신청이 이뤄졌으며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앤뉴가 디즈니플러스와 5년간 매년 한 편 이상의 콘텐츠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지난 2019년 11월에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플러스는 1년 4개월 만에 구독자 1억 명을 돌파했다. 넷플릭스가 10년 동안 모은 구독자 수를 불과 2년도 안 되는 기간만에 확보한 것이다. 현재에는 넷플릭스의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는 디즈니플러스의 폭발적인 성장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지금의 성장 지표가 일부 아시아 국가와 동유럽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디즈니플러스의 성장세에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시장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만달로리안> <완다비전> <팔콘과 윈터 솔저> <로키> 등 <스타워즈> 시리즈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스핀오프로 기획한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기다리는 국내 팬들은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서비스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필수적으로 구독해야 할 OTT 서비스로 분류될 가능성도 높다.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서비스는 국내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독주를 막을 라이벌의 등장을 의미하는 셈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존재감은 미비하지만 <007> 시리즈를 제작한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제작사 MGM 인수가 임박했다는 아마존에서 운영하는 아마존 프라임도 국내에서 구독이 가능하다. 정확한 국내 서비스 시점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이민호가 주연을 맡은 <파친코>와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는 <미스터 로빈>과 같이 국내 구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오리지널 시리즈를 활발히 기획 중인 애플TV 플러스 역시 OTT 서비스 시장의 복병이다.
포스트 코로나 19 시대의 OTT 서비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용호상박이 예견되는 가운데 OTT 서비스 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 19의 유행일지도 모른다. 지난 2020년 코로나 19 유행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반사이익을 본 기업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 서비스 업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야외 활동에 제약이 생긴 만큼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OTT 서비스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올해 상반기 성장세는 예상보다 주춤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백신 공급이 활발해지고 코로나 19에 대한 공포가 둔화되면서 장기간 야외 활동이 제한되는 상황에 대한 반대급부로 실내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OTT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볼만한 콘텐츠를 거의 다 소비한 구독자들의 흥미를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의 유입이 더딘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 19로 인해 야외 활동에 제약이 생긴 만큼 전 세계적인 콘텐츠 제작 여건도 원활하지 않은 탓이다.
결국 넷플릭스도, 디즈니플러스도, 콘텐츠 확보가 경쟁력인 셈이다.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의 선례를 따라 발 빠르게 국내 제작사와 손을 잡고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킹덤>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로컬 콘텐츠의 사례는 디즈니플러스에게도 필요하다. 웨이브와 시즌을 비롯한 국내 OTT 서비스 업체들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 콘텐츠가 플랫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OTT 서비스의 경쟁력은 양질의 콘텐츠를 수급하고 제공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는 셈이다.
OTT 서비스의 경쟁은 보다 심화될 것이다. 국제영화제 마켓에서 좋은 영화를 선점하려는 경쟁만큼이나 OTT 서비스 플랫폼의 콘텐츠 수급 경쟁 또한 심화될 것이다. 이런 경쟁은 구독자 즉 소비자들에게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플랫폼마다 지속적인 구독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는 플랫폼을 골라서 월마다 구독과 해지를 적절히 선택하면 될 일이다. 물론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영상 콘텐츠 소비 방식은 점점 보편화될 것이다. 그러니 소비자 역시 그러한 시장에 빠르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성가신 광고를 볼 필요도 없다. 세상은 이미 그렇게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교정> 6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