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안이하고 아이들만 간절한 'LOUD:라우드'라는 무대에 관하여.
“아, 그런데 투 샷이 강렬하겠네요.” 싸이가 말했다. “긴장감 있어요.” 박진영이 말했다. 그와 함께 ‘방송 최초! JYP X PSY 보이그룹 프로젝트’라는 자막이 딱. 그렇다. 예고편에서 드러난 기대감 그대로 제목처럼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JYP의 수장 박진영과 피네이션의 수장 싸이가 심사위원이자 프로듀서로 출연하는 보이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니, 화제성은 이미 맡겨 놓은 당상이었다. 그렇게 보였다.
지난 6월 5일부터 방영한 SBS <LOUD:라우드>(이하 <라우드>)는 세계적인 보이그룹을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기획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박진영과 싸이의 존재감은 ‘세계적’이라는 수사를 내건 자신감의 근거였을 것이다.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JYP의 박진영과 BTS 이전에 빌보드 차트에서 파란을 일으킨 싸이가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흐름을 살펴봤을 때 조금 시대착오적인 기획처럼 보여서 한편으론 불안해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6월 5일에 방영한 1회는 9%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 화제성을 입증했다. 하지만 한주 뒤 방영한 2회는 7%대의 시청률을, 3회는 6%, 4회는 5%, 5회는 4%, 그리고 지난 7월 10일에 방영한 6회는 3%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점점 화제의 중심에서 밀려나가는 양상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좀처럼 빠져들 매력이 없다. 매력 있는 참가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차적으로 매력을 견인하는 건 참가자가 아니라 심사위원 혹은 프로듀서다. 처음부터 <라우드>의 화제성을 견인한 것도 박진영과 싸이의 만남이었다.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네임드’ 프로듀서가 얼마나 명확하고 신선한 시선과 관점으로 재능 있는 참가자를 선발하고 발굴해낼 것인가라는 호기심을 지불하고 흥미로 돌려받고자 하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시청자의 흥미가 오디션 참가자를 향한 애정으로 얼마나 발전했는가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향방을 결정짓는다. 결국 유명한 심사위원이나 프로듀서의 이름값이 그만한 역할을 견인하는 것이 초반의 기세를 좌우한다.
<라우드> 1회를 보면 두 프로듀서가 내뱉는 언어가 딱히 인상적이지 않다. 귀에 박히지도, 마음을 때리지도 못한다는 느낌만 가득하다. ‘공기 반 소리 반’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박진영 특유의 막연한 어법은 <라우드>에서도 여전한데 이를 압도할 만한 싸이의 존재감도 보이지 않는다. 막연하고 흐릿하다. 그리고 프로듀서의 존재감이 흐린 만큼 오디션 프로그램의 설득력도 함께 희미해지는 인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의 아우라는 스스로의 자질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프로듀서의 심사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프로듀서가 쓰는 언어란 결국 참가자의 자질을 보다 드높여주는 발판 노릇을 하는 셈이다. 결국 거기서부터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투표 조작 파문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대명사가 돼버렸지만 아이돌 그룹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가운데 근래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분명 엠넷의 <프로듀서 101>이었다. 프로그램 자체의 화제성도 상당했고, 그러한 화제성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그룹으로 결성한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까지 성공적인 데뷔와 활동을 펼쳤다. 프로그램의 흥행과 그로 인해 결성된 아이돌 그룹의 사후 활동까지 모두 성공한 셈이다. <프로듀서 101>는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라 일컬으며 오디션 참가자 개개인과 시청자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 성공했다. 화제성을 견인할 시청자를 의식하고 있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며 참가자들도 시청자들 스스로가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의식을 갖게 만든다. 이는 현재 아이돌 팬덤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영악하게 활용한 결과나 다름없다.
<프로듀서 101>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란 프로듀서가 전문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상석에 앉아서 매 무대를 준비하는 참가자를 평가하고 줄 세우는 역할에 국한하지 않고 저마다 전문 파트에서 참가자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멘토가 된다는 것이다. 보컬과 댄스 분야에서 명성을 자랑하는 멘토가 참가자의 기량을 체크하고 개개인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스승 역할을 한다. 그리고 판단은 국민 프로듀서라고 명명한 시청자의 몫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참가자에게 직접 투표하며 데뷔의 꿈을 함께 실현한다. 마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게임의 속성에 가깝다. 이런 방식이 얼마나 건강한 것인지 진단해볼 필요는 있겠지만 해당 프로그램이 현재 K팝의 지분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돌 그룹을 주도하는 팬덤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라우드>는 게으른 기획이다. <프로듀서 101>처럼 국민 프로듀서 운운하며 팬덤 장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성공 사례가 아니라 명확한 실패 사례를 의식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실패 사례란 네임드 프로듀서 한두 명이 좌지우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최근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사 수장으로 꼽히던 양현석이 주도한 JTBC <믹스나인>처럼 시청자의 관심도 끌지 못하다가 끝내 데뷔조로 확정된 경연 참가자들의 데뷔까지 무산된 사례는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악수다. 프로듀서의 존재감도 중요하지만 그 존재감에 기대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철 지난 유행가 같은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참가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것이다. 물론 TV에 출연해 인지도를 얻는 것만으로도 성과라 평가할 수 있겠지만 데뷔를 목표로 한 연습생들의 인지도는 프로그램의 인지도와 함께 정비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좀처럼 관심을 얻지 못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아이돌 지망 연습생들의 시간과 노력이란 당장 부도수표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을 지향하는 세계적인 K팝 아이돌 그룹을 선발한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로컬’에서도 관심을 끌지 못하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아이돌 그룹 역시 세계적이라는 수사에 어울리는 스포트라이트도 요원해질 것이 자명하다.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기량에는 편차가 있고, 저마다 다른 사연도 있겠지만 꾸는 꿈만큼은 같을 것이다. 모두가 데뷔라는 목표로 수렴하는 꿈을 꾸며 무대에 오를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그 무대는 귀한 기회이자 경험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꿈을 보장한다는 프로듀서나 제작진에게는 그런 절박함을 이해하는 눈높이가 부재한 것 같다. <슈퍼스타K>나 <K팝스타>처럼 프로듀서의 명망이나 독설로 눈길을 끄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라우드>는 그걸 모르는 안이한 어른들이 세운 철 지난 무대에 오르는 아이들의 절박함만 거듭 목격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 꿈을 걸라고 종용하는 이들이 세운 무대가 이토록 구태의연하다는 건 실로 의아한 일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매력도, 실력도 떨어진다. 애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