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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ul 16. 2021

복수는 드라마의 것

악인을 처단하는 자경단을 그리는 드라마의 복수가 남긴 고민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잘 알려진 것처럼 함무라비 법전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지는 이 동해보복 원칙은 대체로 야만적인 복수를 설명할 때 손쉽게 인용되는 것이다. 오해다. 기원전 1700년대 고대 바빌로니아의 여섯 번째 왕이었던 함무라비 왕에 의해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은 사적 복수를 용인하는 야만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야만의 시대에서 문명의 시대로 넘어가려는 의지가 기록된 성문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한 거대 국가였고, 이를 통치하기 위해선 엄격한 기준이 필요했다. 본격적인 농경의 시작으로 유목과 수렵 생활이 아닌 정착 생활로 접어든 당대의 인류는 사유 재산에 대한 관념이 불분명한 탓에 갈등이 불거졌고, 분쟁이 발생하면 힘의 대결로 번졌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는 일도 빈번했다. 함무라비 법전의 동해보복 원칙은 과한 폭력을 억제하는 효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문명의 근간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었다.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는 야만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법치제도란 고대 사회에서부터 인류의 문명을 자리 잡게 만드는 중요한 근간이었다. 사적 복수를 억제하고 법치에 기반한 형벌 제도를 통해 공동체 사회가 지켜야 할 이성적인 규칙을 제시하고 이를 기록한 성문법의 발전을 통해 문명사회의 울타리를 보다 단단하게 결속해온 셈이다.

정의 구현이라는 판타지

<경이로운 소문> <빈센조> <모범택시> <대박부동산>까지, 올해 상반기에 인기를 끈 이 드라마들은 각기 다른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악귀를 사냥하는 ‘카운터’들의 활약을 그린 <경이로운 소문>은 퇴마사와 슈퍼히어로 캐릭터의 설정을 버무린 액션 스릴러다.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 캐릭터가 한국의 부패한 권력자를 응징하는 범죄 스릴러다. <모범택시>는 법적으로 구제받지 못한 이들의 사적 복수를 대행하는 서비스 업체의 활약을 그린 액션 스릴러다. <대박부동산>은 원귀가 깃든 건물을 매매하기 위해 원귀를 퇴치하는 퇴마사의 활약을 그린 오컬트 설정의 드라마다. 


각기 다른 설정을 가진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법망 안에서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하는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구제하는 개인의 활약상을 그린다는 것이다. 악인에게 깃들어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귀를 사냥하고(<경이로운 소문>), 마피아보다도 더 지저분한 기업가와 정치인을 응징하고(<빈센조>), 법망의 그림자 속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로 인해 충분한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한 약자들의 복수를 대행하고(<모범택시>), 악귀가 된 이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소하도록 돕는(<대박부동산>) 이들의 활약상을 그린다.


이 드라마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묘사하고 제각각의 장르를 표방하지만 있지만 궁극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는 개인들이 모인 집단의 활약을 그린다는 점에서 유사한 카타르시스를 지향한다. 드라마에서 그리는 억울한 이들의 사연이란 대체로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구제받지 못한 소외된 약자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활약하는 인물들에게는 저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약자를 연민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심성을 품고 있다. 감정이 없는 법을 대신하는 공감의 주먹으로 약자를 유린하는 악인을 처단한다. 그렇게 현실의 불만을 해소하는 정의 구현 판타지를 구축한다.


불신과 복수의 알고리즘

지난 2019년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2019년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가장 낮은 신뢰도를 기록한 기관은 경찰, 국회, 검찰로 조사됐다. 일선에서 국가의 치안을 담당하는 사법기관인 경찰과 검찰을 믿는다고 답한 이들은 해당 조사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2~3% 수준에 불과했다. 그만큼 사법제도 안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경향은 몇몇 인기 드라마가 얻은 공감대로 재확인된다. 사회적 약자들의 곤궁하고 곤란한 사연을 해결해주는 각양각색의 인물이 등장한다. 압축하자면 자경단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자경단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들이 저마다 높은 인기를 얻고 좋은 반응을 얻은 건 약자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이야기 자체가 전하는 카타르시스가 높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법기관에 대한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이 적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리하자면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시청자들의 공감대가 인과응보의 쾌감이 큰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로 변환된 셈이다. 어떤 식으로든 정의가 승리하길 바란다는 마음이 읽힌다. 다만 그 승리가 꼭 합의된 규칙으로 정의된 정의가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건 역설적이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이 바라는 정의란 정의가 아니다. 정의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그들이 바라는 건 약자를 유린하는 악인들을 처단하는 것이다. 복수하는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허구에서는 가능한 복수에 열광한다. 대리 만족한다.

드라마는 현실을 구하지 못한다

대리만족 복수극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사로잡았다고 느껴지는 정황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결국 드라마 밖의 세상을 근심하게 만든다. 드라마의 복수는 결국 드라마의 것이다. 현실을 구하지 못한다. 법치라는 것이 모든 이들의 사정을 온전히 밝혀줄 수 있도록 완벽하지 않은 것도 문제겠지만 그것을 불신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세상도 걱정된다. 현실의 공분은 결코 드라마로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더 자극적인 드라마를 통해 함께 자라날 뿐이다. 정의를 구현하는 드라마의 폭력성에 도취되고 더 큰 자극에 갈증을 느낄 뿐이다. 고구마 같은 현실 대신 사이다 같은 허구를 탐닉할수록 현실을 부정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제도의 효율성을 부정한다. 


최근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SNS와 온라인 채널을 통해 확증편향에 가까운 음모론이 퍼져나간 사례가 있다. 한강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다음날 실종된 청년이 5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고 함께 술을 마신 친구가 살해 용의자라는 소문과 정황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친구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범죄자라고 단정 짓는 듯한 언어가 차고 넘쳤다. 법이 가려내기 전에 심판을 하려 드는 이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해당 인물의 신상을 털고, 배후 세력이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경찰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흥미로운 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불확실한 주장에 동조하며 적극적으로 해당 사실을 알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경찰을 믿지 못해도 유튜버는 믿는다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법정에 자신이 지목한 범인을 세워 두고 판결을 내린 뒤 처벌을 준비 중인 것만 같았다. 경찰 수사 끝에 해당 인물의 혐의가 없다는 것이 발표됐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지금도 무분별한 의심을 생산하는 이들의 언어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그야말로 확증편향의 시대다. 법치에 대한 의심은 필요한 일이다. 제도는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므로 사람의 한계가 제도의 한계로 적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는 의심을 바탕에 둔 불신은 괴물을 키운다. 눈으로 보이는 것도 왜곡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왜곡을 통해 돈벌이에 탐닉하는 유튜버들은 무분별하게 음모론을 생산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아슬아슬하게 흔든다. 문명의 근간을 부정한다. 위험한 일이다. 무분별한 공분은 대리만족을 넘어 현실의 질서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악당은 있어도, 영웅은 없다. 법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영웅을 기다리는 건 힘든 일이다. 이성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다.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교정> 7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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