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세상만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Jul 23. 2021

관종 CEO를 팝니다

CEO도 파는 마케팅, 이른바 PI 마케팅의 시대가 왔다.

“택진이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용진이형으로 불러도 좋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그럼에도 부연하자면, 여기서 ‘택진이형’은 NC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다. 그리고 ‘용진이형’은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다. 그리고 앞서 인용한 언어의 출처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문전성시를 이루던 음성 기반 SNS ‘클럽하우스’에 직접 등판한 정용진 부회장이 발음한 말이다. 유명 대기업 CEO가 일면식 없는 일반인의 호형호제 제안에 응한 것이다.


바야흐로 ‘관종’의 시대다. 관심종자의 줄임말인 관종은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로만 통용되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끄는 이들의 존재감을 재화가치로 책정하는 시대다. 덕분에 셀리브리티보다도 인플루언서라는 단어가 더욱 익숙해진 요즘은 영향력 자체가 거대한 가능성으로 평가된다. 유명 연예인에게나 주어지던 광고 제안 대상으로 유튜브 채널 구독자나 SNS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까지 후보군으로 고려하는 것도 이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개개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SNS 계정이 기성 미디어보다 효율적인 광고판 역할을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애초에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영향력은 보다 공고해진다. 이를테면 이미 유명세를 가진 셀러브리티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나 SNS 팔로워는 유명세와 비례하게 급증할 가능성 크다. 그리고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건 무명의 일반인만이 아니다. 이미 영향력이 적지 않은 유명인들도 일반인들처럼 유튜브 채널과 SNS 계정을 통해 직접 소통하며 영향력을 보다 강화한다. 연예인과 같은 셀러브리티뿐만 아니라 의사나 변호사를 비롯한 유명한 전문직 종사자도 자기 영향력을 과시하는 시대다. 기업가도 마찬가지다.


물론 모든 것이 다 계획이 있어서 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클럽하우스에 직접 등판해서 SSG 랜더스에 대한 계획을 ‘스포’하고,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두고 그저 잠재적인 고객을 사로잡기 위한 상업적 행위라고 판단하는 건 납작한 해석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일찍이 다양한 전문 블로거와 소통하며 사적으로도 친목을 맺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신의 새로운 호텔 사업에 친분이 있는 유명 미식 블로거를 중책에 앉힌 것도 그런 관계 맺기의 연장선상에 놓인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관종’ 기질이 있는 기업가였고, 그런 기질이 사업적으로 시너지가 되는 시대를 만난 것이다.


그렇게 영향력 있는 이의 행동이 또 다른 영향력을 만드는 계기로 작동하는 시대에서 정용진 부회장은 그 자체로 좋은 마케팅 감이다. 그것이 사적인 호기심의 발로라 해도 기업과 브랜드를 대표하는 CEO가 공적으로 인기 있는 캐릭터로 인식된다면 그것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인 것이다. 신세계푸드가 정용진 부회장을 모티브로 만든 ‘제이릴라’로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발매하며 캐릭터 사업에 뛰어든 것도 그런 배경에 있다. 스스로 관심받길 즐기는 CEO가 자신의 영향력으로 기업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선의 CEO를 앞세워 마케팅하는 ‘PI 마케팅’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런 흐름이 만들어진 건 산업이 변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기업은 1위를 차지한 애플과 2위를 차지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아마존, 알파벳, 페이스북, 텐센트, 테슬라 등 대부분이 IT 기반 기업이다. 이런 기업의 특징은 대부분 기술 혁신을 통해 스타트업에서 유니콘으로 빠르게 성장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경험의 한복판에는 기술 기반의 혁신 경영을 이끈 리더가 있다. 이는 기술적 역량을 가진 인재가 아이코닉한 기업가로 변모했다는 성장스토리로 세상에 전파되고 그렇게 그들의 리더십은 보다 공고한 성장신화로 판매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업가일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스티브 잡스는 물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저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CEO이지만 기업이나 브랜드만큼이나 그 이름도 함께 자주 언급되며 존재 자체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징적인 기업가를 넘어 대중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과거에도 재계의 대기업 CEO들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영향력의 온도가 다르다. 마치 건국신화를 가진 팝스타 같다.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을 재편하고 새롭게 성장한 기업 이미지란 결국 그러한 혁신을 주도한 사람에게 상징성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카드 회사의 이미지를 보다 쿨하게 만든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 역시 그런 사례로서 유효하다. 기존 신용카드와 차별화한 카드 디자인부터 눈길을 끌며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현대카드는 다양한 문화사업과 발 빠른 디지털화를 통해 카드회사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리브랜딩에 성공했다. 이러한 혁신은 회사의 일선에서 조직 문화 개선과 인재 영입에 주력한 정태영 부회장의 역량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정태영 부회장은 정용진 부회장만큼이나 활발하게 대중적인 소통을 즐기는 CEO이기도 하다. 다만 정용진 부회장이 ‘이슈메이커’라면 정태영 부회장은 ‘브랜딩 철학가’ 같은 차이가 느꺼진다다고 할까. 정태영 부회장 역시 정용진 부회장만큼이나 클럽하우스에 꾸준히 등장하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비하인드 썰’과 같은 현대카드 경영 전략의 후일담을 고백하거나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디지털 전략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며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이러한 활동은 결국 현대카드의 브랜드 철학을 지지하는 소비자의 신뢰를 결속하는 셈이다. 


CEO의 얼굴을 내건 PI 마케팅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자사 광고에 직접 출연하는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나 자사 유튜브 채널에 직접 이름을 건 코너에 출연하는 롯데홈쇼핑 이완신 대표 그리고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자사 편의점 CU를 오픈하며 자신의 형상을 딴 아바타를 등장시킨 BGF리테일의 이건준 대표 등 CEO들은 이제 스스로가 회사의 전면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물론 모두가 성공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른바 관종의 시대에서 관종임을 자처하는 CEO가 출현하는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CEO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기업의 역할도 중요해질 것이다. CEO가 회사의 이익을 담보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인플루언서가 된 만큼 CEO의 윤리적 문제나 도덕적 논란은 회사의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는 악영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결국 CEO는 기업을 경영하는 존재이자 기업의 관리 대상이 되는, 마치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의 관계로 재편된 셈이다. 물론 여전히 은둔 경영으로 기업을 이끄는 그림자 같은 CEO들도 존재하지만 개개인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이러한 영향력을 즐기는 개개인의 시대에서 관종 CEO의 출현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미있는 건 결국 팔리게 돼있다. 친근한 인상의 CEO가 관심을 파는 것 같지만 결국 CEO가 직접 당신의 주머니를 털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다.


(대홍기획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웹매거진 섹션에 게재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복수는 드라마의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