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재발견이 아닌 현재의 발굴을 즐기는 MZ세대의 뉴트로에 관하여.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일찍이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서도 ‘요새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의미의 상형문자가 발견됐다는 사실은 세대차이라는 것이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방증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항적인 애들과 권위적인 꼰대는 언제나 공존해왔다. 그리고 늘 아래로 향한다. 물길이 흐르듯, 관심도 그렇다. 세상은 늘 새로운 세대의 질서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낡아가는 것보단 태동하는 것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MZ세대를 향한 관심도 이와 같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뜻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한 MZ세대라는 용어는 사실 우악스러운 면이 있다. 두 세대를 통칭하는 그 언어 안에 다양하고 뚜렷한 개별 경험의 단면이 무수하다는 것을 무시하는 구세대가 게으르게 악력을 발휘하듯 뭉쳐버린 결과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MZ세대의 아이콘 중 하나로 꼽히는 래퍼 이영지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MZ세대는 알파벳 계보를 이어가고 싶은 어른들의 욕심”이라며 “MZ세대들은 본인들이 MZ세대인 걸 전혀 모른다”라고 지적한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자식의 책상 서랍을 뒤지고, 일기장을 훔쳐보듯 구세대는 신세대가 궁금하다. 그래서 신세대의 심리를 살피고, 행태를 쫓으며 끝내 표식을 붙이고 규정한다. 신세대가 관심이 있거나 말거나, 구세대는 신세대에게 관심이 많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구세대의 고민은 대체로 그 시대를 새롭게 규정하는 권리를 선점하는 행위로 작동된다. 그래서 MZ세대는 존재한다. 그리고 MZ세대는 한때 X세대라 불렸던 90년대의 신세대가 기성세대로 분류되는 21세기에 대두된 세대이기도 하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를 지칭하는 X세대는 신인류처럼 분류된 세대다. 좀처럼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세대라 ‘X’라는 미지의 알파벳으로 명명됐다. 자유분방한 취향과 자기중심적 관점을 향유하고 견지하는 새로운 세대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한 랩뮤직과 힙합 문화를 받아들이고 기성세대와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럼으로써 X세대는 소비 시장에서도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주요 고객으로 대접받았다. 모든 마케팅이 X세대를 향해 수렴했다. 대부분의 브랜드나 기업이 X세대를 향해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이렇듯 X세대는 1990년대의 주인공이었다. IMF라는 희대의 국가적 위기와 뉴 밀레니엄 이후로 본격화된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X세대의 존재감도 많이 희석됐지만 21세기에도 X세대의 영향력은 여전한 것 같다. MZ세대는 디지털 세대다. 엄밀히 말해 M세대는 디지털 과도기를 보낸 세대이고, Z세대는 완전히 자리잡은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세대다. 단적으로 처음 쓴 핸드폰이 스마트폰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이것만 따져봐도 구분은 확실하다. MP3라는 개념과 음원 다운로드라는 것을 경험해본 세대와 아닌 세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세대와 Z세대를 한데 묶어 MZ세대라 명명할 수 있는 공통점은 X세대와 비교했을 때 손에 쥐는 경험이 현저히 떨어지는 세대라는 것이다.
최근 LP판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과거 LP판을 소비하던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유행이 아니다. 우리가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20~30대 세대가 주도하는 유행이다. 노스탤지어가 만들어낸 복고가 아니라 힙한 트렌드인 것이다. 게다가 국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난 2020년 미국음반산업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LP판 판매량이 CD 판매량을 추월했다고 한다. 3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덕분에 요즘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앨범도 LP판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오래전 절판됐지만 LP판으로 재발매되는 음반도 늘어나고 있다.
MZ세대는 LP판으로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드문 세대다. 심지어 Z세대 중에서는 CD도 본 적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애초에 음원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게 익숙한 세대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 중에서 LP판을, 카세트테이프를 소비하는 이들이 나오는 건 세대를 막론하고 느낄 수밖에 없는 소유의 재미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디지털화된다는 건 결국 손에 쥐어야 한다는 불편함을 간편함으로 대체하는 발전이지만 한편으로는 손에 쥐는 소유의 경험을 송두리째 차단하는 감각과의 단절이기도 하다. 전자책은 책장 넘기는 감각을, 음원은 음반을 꺼내는 감각을 지워버린다.
X세대에게 그런 경험은 충분했다. 디지털화되는 서비스가 익숙한 것을 변질시키는 듯한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익숙해질 만한 변화였다. 그 역시 새로운 경험이니까. 이는 MZ세대에게도 마찬가지다. X세대에게 음반이 아니라 음원을 소비하는 게 변화이듯, MZ세대가 음원이 아니라 음반을 소비하는 것도 변화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감각이다. X세대에게 찾아온 혁신을 이미 일상으로 받아들인 이들에게는 혁신 이전의 세상에 존재했던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큰 혁신일 것이다.
바야흐로 레트로가 아닌 뉴트로의 시대다. ‘다시(Re)’가 아닌 ‘새로운(New)’ 유행으로 불리는 MZ세대의 새로운 감각은 지난 시절의 향수를 복원하는 것과 무관한 새로운 시대의 발견인 것이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에서의 발굴이다. 그래서 MZ세대는 배꼽티가 아니라 크롭티를 입는다.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빅 로고 티셔츠나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농구화가 유행하는 것도 과거의 유행 같지만 한 끗 차이로 다른 흐름에 있다. ‘스트릿 패션’에 열광하는 MZ세대의 기호는 하이패션 브랜드와 유명 스트릿 패션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한정판 제품 출시로 이어진다. 지나간 시대의 유행이 현재진행형의 기호를 입고 새롭게 탄생한다.
MZ세대에게 과거란 발을 들여보지 못한 놀이터와 같다. 물론 모든 과거가 각광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보다는 신기한 것이 많은 옛 것에 눈이 가고, 손이 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나온 이들에게는 촌스럽지만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신선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재현하는 게임과 함께 성장한 세대에게는 달고나가 촌스러운 추억이지만 그 시대를 본 적도 없는 세대에게 달고나란 신박한 아이템이다. 보다 간편하게 진화한 세상에서 태어난 MZ세대에게 지금의 편리란 재미의 감각을 제한하는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MZ세대는 그렇게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를 새로운 시대에서 소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렇게 뉴트로의 시대가 왔다. 과거가 아닌 현재로부터.
(성남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문화예술매거진 <아트뷰> 2021년 12월~2022년 1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