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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Dec 30. 2021

코로나 시대의 극장 그리고 영화

코로나 시대 장기화로 관객을 잃어버린 극장과 영화에 관하여.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코로나19 유행의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떻게 진전될지 말이다. 그러니까 2020년 2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될 무렵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잠깐 부는 바람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올해 연말쯤이면 괜찮아질 테니 여행은 연말에나 가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연말은 2021년 연말이 올 때까지 오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생각 이상으로 끈질기고 만만찮은 바이러스였다. 


여전히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백신 접종 완료자가 전체 인구의 80%에 육박했지만 집단 면역 효과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지만 아직 바이러스와의 공존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몰라도, 코로나19로 인류가 절멸하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위드 코로나는 그런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필연적인 시행착오이자 불가피한 과도기인 셈이다. 당장 마스크를 벗을 수 없지만 마스크를 쓰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대비는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극장전

영화계는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직격타를 맞았다. 영화관 풍경이 썰렁하기 짝이 없다. 한 해에 영화관을 찾은 관객수만 봐도 피부로 느껴진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19년에는 2억 2천만 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지만 2020년에는 59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1억 명 미만의 관객을 동원한 건 2004년 이후로 2020년이 처음이며 심지어 69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던 2004년보다도 낮은 기록이다. 


이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극장 통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2020년 극장 매출은 전년과 비교했을 때 무려 81.4%나 감소한 상황이다. 그나마 2021년은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11월 기준으로 지난해의 두 배 가까이 매출이 상승했고 남은 12월은 기대할만한 대작들이 대거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매트릭스: 리저렉션>,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극장에 관객을 불러 모을 할리우드 대작들이 일찌감치 12월 개봉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극장가 역시 그 영향권 내에 있다. 지난 11월까지 5천만 명 이상의 관객이 극장을 찾은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12월에는 개봉을 결정한 할리우드 대작들을 내건 극장가로 사람이 모일 것이라는 기대가 상당하다. 덕분에 2020년과 비교했을 때 2021년은 조금이나마 극장가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킹메이커> <경관의 피> 등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한국영화도 개봉을 예고하며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싸늘해진 극장가에 열기를 지피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의 극장전

극장가로 관객을 유인할 기대작들이 위드 코로나 이후 시점에 연이어 개봉을 확정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대자본을 들여 만든 대작의 흥행을 위해선 관객이 필요하다. 지난 2020년 2월 이후에 개봉한 영화 가운데 할리우드 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과 <원더 우먼 1984> 뿐이었다. 둘 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나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반도> <#살아있다> <담보> <삼진그룹 영화토익반> 등 몇몇 한국영화가 기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조금씩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극장가의 활기를 되살릴 동력이 모이긴 역부족이었다. 


2021년의 극장가는 확실히 양상이 다르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블랙 위도우> <007 노 타임 투 다이> 등 화제작으로 분류되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가 꾸준히 개봉하며 극장가로 꾸준히 관객을 불러들였다. 관객수가 드라마틱하게 늘어난 건 아니지만 대작들이 거듭 개봉하며 극장의 존재감을 거듭 환기시켰다. 지난해 2020년 2월 이후로 1년 동안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외화가 <테넷> 단 한 편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2021년 올해에는 11편이나 된다. 상대적으로 한국영화 기대작 개봉은 더디지만 지난 7월에 개봉한 <모가디슈>가 36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지난 11월까지 올해 최다 관객을 동원한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악화되며 거리두기 단계가 심각하게 조정되지 않는 이상 이런 경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극장 관객수 월별 추이를 보면 7월 이후로 5백만 명 이상의 관객 수가 유지되고 있는데 작년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완만하게 관객수를 유지하면서도 상승세를 이루는 인상이다. 화제성 있는 신작 공급만 원활해지면 예년만큼 회복될 것이라 장담할 순 없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객의 발길을 극장으로 돌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12월 극장가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처음 찾아온 2년여 만의 대목이 될지도 모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극장전

코로나19 이후로 극장을 찾지 못한 관객들의 갈증을 달랜 가장 큰 오아시스는 아마 OTT 서비스였을 것이다. 그만큼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는 코로나 시대 최대 수혜주라 할 수 있는 만큼 극장 산업의 최대 경쟁자로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며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한 넷플릭스와 디즈니,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등 개성이 뚜렷한 자회사의 방대한 콘텐츠를 보유한 디즈니플러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는 나날이 시장성을 넓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극장 개봉을 미루던 몇몇 영화가 극장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하며 새로운 전례를 만들기도 했다.


이와 함께 OTT 서비스로 인한 갈등이 불거진 경우도 있었는데 <블랙 위도우>의 주연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표적인 인사다. 스칼렛 요한슨은 <블랙 위도우>의 제작사 디즈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는 <블랙 위도우>를 극장 상영과 함께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한 것이 계약 위반이라는 주장이었다. 90일간의 극장 개봉을 보전하고 흥행에 따른 러닝 개런티 계약을 한 상황에서 디즈니플러스에 영화를 공개하며 극장 흥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인썸니아> 이후로 <테넷>까지, 그 사이에 연출한 9편의 영화를 모두 워너 브라더스에서 배급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새롭게 제작에 착수한 차기작 배급을 유니버설 픽쳐스에 맡기기로 했다. <테넷> 개봉 당시 일찍이 예고했던 개봉일을 준수하고자 했던 크리스토퍼 놀란과 개봉일을 연기하고자 했던 워너 브라더스의 갈등이 OTT 서비스를 통해 폭발한 것이다. <테넷>의 극장 개봉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않았던 워너 브라더스는 자사의 OTT 서비스 HBO 맥스로 이를 공개하기로 했고, 이를 강도 높게 비판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결국 워너 브라더스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도 대중성을 확보한 OTT 서비스는 팬데믹으로 인해 보다 강력한 미디어 채널로 부상했다. 새롭게 국내에 진출한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 외에도 HBO맥스의 국내 론칭도 가시화됐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바야흐로 OTT 춘추전국시대다. 이는 극장의 위기 같지만 오히려 기회다. 다양한 OTT 서비스는 당장은 아니라도 소모적인 채널 경쟁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고, 결국 콘텐츠 수급의 경쟁은 파편화된 콘텐츠 시청을 위한 플랫폼 구독의 피로를 야기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결국 콘텐츠 경쟁력의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로 무장한 극장은 재평가의 가능성이 다분하다. 무엇보다도 답답한 코로나 시대에서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이들에게 영화란 온전히 다른 감각일 것이다. 그야말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엔터테인먼트랄까. 그렇게 영화는 돌아올 것이다.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교정> 12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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