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사로잡은 '오징어 게임'으로 구체화된 K콘텐츠의 저력에 관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체 뭐 하는 거야?’ 이 인용구의 주인공은 바로 NBA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멘션의 일부다. 그리고 그가 말한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은 바로 <오징어 게임>의 결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르브론 제임스가 <오징어 게임>을 어떻게 봤냐는 것이 아니다. 르브론 제임스도 <오징어 게임>에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전 세계 사람은 둘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 솔직히 과언이다. 하지만 과언처럼 들리지 않는 과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에 나온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우산 모양의 달고나를 핥으며 즐거워하는 외국인들의 뉴스를 볼 때마다 뭔가 세상이 잘못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지난 추석 연휴에 공개된, 한국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이렇게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모른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일까?
게임의 법칙
<오징어 게임>에는 제목 그대로 ‘오징어 게임’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구슬 놀이’, ‘달고나 뽑기’ 등 지금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유년시절에 한 번쯤 해봤을 법한 놀이가 대거 등장한다. 이 놀이에 참여하는 건 456명의 지원자들인데 그들은 대체로 인생이 절박하게 몰려 일확천금의 행운 외에 삶의 방도가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5만 원 지폐를 가득 채울 돼지저금통이 떠오른다. 탈락자 1인당 1억씩, 상금이 채워진다. 그리고 여기서 탈락이란 단순히 게임을 진행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 기회가 사라지는 것, 즉 죽음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판돈으로 건 일확천금의 피칠갑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징어 게임>은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개인의 내몰린 현실을 풍자하는 자본주의 우화인 셈이다. 하지만 심각하게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보다도 사람들을 사로잡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 끔찍한 현실을 풍자한 게임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오징어 게임> 이후로 달고나는 전 세계적인 인기 상품이 됐다.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오징어 게임>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국자에 설탕을 녹여 달고나를 만들고, 쪽자로 낸 모양을 떼겠다며 작품처럼 혀로 달고나를 핥아대는 풍경도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해외에서 달고나 세트 주문이 밀려들고, 온라인 상에서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유년시절에 했던 놀이란 단순하지만 명확한 오락이다. 그리고 어른에게 놀이란 공짜의 세계가 아니다. 돈을 써야 놀 수 있는 나이다. <오징어 게임>은 게임의 룰이 단순할수록 실패의 가혹함이 더해진다는 역설을 잘 이해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그 가혹함을 간접 체험한 이들은 안전한 현실에서 작품 속 게임에 몰입하고자 한다. 익숙하면 익숙한 대로, 낯설면 낯선 대로 이 단순 명료한 놀이를 즐기면서 현실 감각을 지우는 재미를 즐긴다. 이 지난한 팬데믹 시대에서 가상 세계에서 찾아온 놀이에 탐닉하는 전 세계 인류의 풍경은 역설적이지만 그 자체로 납득이 된다. 다들 놀이가 필요한 시대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유희가 절실하다.
로컬이 아닌 글로벌, 넷플릭스
지난 10월 19일,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오징어 게임>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싱글벙글한 얼굴로 등장했다. 넷플릭스의 3분기 실적 발표를 하는 자리였다.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만연한 건 넷플릭스 3분기 실적이 기록적으로 반등한 덕분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3분기 신규 가입자 수가 438만 명으로 늘었고, 누적 가입자 수가 총 2억 136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가 상승한 74억 8000달러, 순이익은 두 배로 급증한 14억 5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오징어 게임>의 수혜를 톡톡히 본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9월 17일에 공개된 이후로 4주 동안 전 세계에서 약 1억 4200만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넷플릭스 가입이 가능한 전 세계 94개국에서 스트리밍 수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5년 만에 가장 낮았던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이후로 팬데믹의 끝과 함께 성장도 끝일 거라 전망한 넷플릭스가 그야말로 메가 히트 콘텐츠가 된 <오징어 게임>과 함께 ‘떡상’한 것이다. 결국 인기 있는 콘텐츠 하나가 플랫폼의 가치까지 띄워 올린다는 것을 <오징어 게임>이 증명한 것이다.
한편으론 <오징어 게임>의 대단한 흥행의 수혜를 작품의 기획이나 제작에 관여한 이들이 누리지 못한다는 논란도 함께 불거졌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인한 수익은 온전히 넷플릭스의 것이다.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한 이들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없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넷플릭스 덕분에 작품 제작이 가능했고, 리스크를 감안하고 투자를 결정한 넷플릭스가 수익을 거두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서 중요한 건 결국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소유하기 위해선 경쟁력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일 것이다. 물론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고민이 증발되지만 않는다면 산업적으로 긍정적인 결실을 거둘 가능성도 있는 법이다.
슈퍼 콘텐츠 K의 시대
지난 11월 3일에 개봉한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이터널스>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배우 마동석이 출연한다.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마블 영화, 즉 MCU에서 괴물의 ‘귓방망이’를 찰지게 날리는 마동석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반갑고 신기할 텐데 <이터널스>에는 한국 관객에게 하나 더 반갑고 신기할 거리가 있다. 바로 BTS가 대사로 언급되는 것. 그리고 BTS의 노래 ‘친구’ 영화음악으로 쓰인 것. 물론 BTS가 출연하는 건 아니지만 전 세계 관객이 기다리는 MCU 영화에서 BTS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정말 ‘국뽕’이 차오르고도 남는 일이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K의 시대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2년 연속 한국인 오스카 수상이 이어졌고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유행을 이끌었다. 팬데믹이 끝나면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해외 관광객 수가 상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허무맹랑하지 않다. 더 이상 한국이 지도상에서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K팝에 열광하는 해외의 젊은 팬들이 한글을 배우고 싶고, 한국을 알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한국의 위상이 이렇게 달라졌고, 다른 나라보다 우위에 선 문화강국이 됐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 부심은 한때 우리가 J팝이라 부르며 추켜세웠던 일본 대중문화의 현실을 보며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솔직히 대체 한국이 왜 이렇게 사랑받게 된 것인지 아는 이는 누구도 없다. 아무도 모른다. 영원히 모를 것이다. 다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지금은 분명 K의 시대다. 한때 우리 스스로가 조롱했던 ‘국뽕’이라는 단어가 스스로 끓어 넘쳐서 어리둥절할 정도다. 대체 이것이 왜 이렇게까지 끓어 넘치는지 알 길이 없어서 생각해볼거리가 있는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이, <기생충>이, BTS가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몰라도 그것이 공통적으로 기성 콘텐츠로 분류되는 것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신선한 무언가로 받아들여지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까 한류라는 멋쩍은 단어가 등장한 지 20여 년 만에 K팝이, K무비가, K드라마가 전 세계를 사로잡는 영향력의 시대에서 K콘텐츠는 더 이상 변방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더 이상 세계를 향해 나아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문을 열고 받아들이며 증명해야 할 때라는 현실감각이 필요하다. K콘텐츠를 향한 뜨거운 열광이 얼마나 지속될지 몰라도 K콘텐츠 산업이 지속되기 위해선 그런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적어도 게임은 계속돼야 하니까.
(법무부 교정본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교정> 11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