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희사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Mar 31. 2022

감각을 흔드는 OTT 시리즈

당신의 감각을 일깨우는 OTT 시리즈 6편.

폭력성 | 웨이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라는 제목은 유명한 밈이 된 웹툰의 한 컷에서 빌려온 것이다. 밈 수준의 현실정치를 팩트 폭행하는 촌철살인 미니시리즈에 이보다 어울리는 제목도 없다. 정권 말기 공석이 된 문체부장관 임명을 위해 모인 청와대 관료들은 손병호 게임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인사를 추리니 80년대 김연아로 불린 전 국가대표 사격선수이자 전직 국회의원 이정은(김성령)만 남는다. 그렇게 장관이 된 이정은은 난장 같은 국회와 정부에서 뜻밖의 돌파력으로 입지를 다진다. 이를 보는 시청자는 <SNL 코리아>보다 웃기는 정치쇼에 자지러지다가 작금의 정치 수준이 무자비하게 반영된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현타가 올 것이다. 아무튼 이제 대선도 끝났고, 소재도 넘치는 지금, 이렇게 된 이상 시즌2로 가야 한다.


선정성 | 넷플릭스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덴덴타운은 오사카의 번화가다. 그리고 AV숍이 즐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오사카 여행 중 호기심에 한 번 들어가 봤다가 그 엄청난 규모에 혀를 내두른 기억이 있다. 5층 건물 사방이 죄다 음란한 것들로 그득해서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참고로 일본 AV시장의 연매출은 1조 원 수준이라고 한다. 국내 영화시장의 매출과 비슷한 수치다. 정말 놀라운 사정이다.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는 1980년대 일본 AV의 제왕이라 불린 업계를 지배한 무라니시 토오루에 관한 미니시리즈다. 버블 경제로 흥청망청하던 일본의 당대 시대상을 병풍 삼아 비밀스러운 업계의 비화를 생생하게 들춘다. 실제 AV업계에 종사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며 노출 수위를 작정하고 높여주는 건 제목에서부터 ‘살색’이라는 단어를 동원한 작품에 걸맞은 리얼리티나 다름없다. 


욕설 빈도수 | 넷플릭스 <욕의 품격> / <돈 룩 업>

<욕의 품격>은 욕의 기원, 보다 정확하게 미국 욕을 다루는 코믹 다큐 시리즈다. 점잖은 영어학자, 교수, 평론가 등 다양한 지식인이 진지하게 욕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덕분에 ‘삑’ 소리가 기상 알람처럼 거듭 울린다. 진행을 맡은 니콜라스 케이지는 친절하게 각기 다른 욕에서 강조해야 할 톤을 친절하게 발음해준다. 정말 친절한데 듣는 기분은 조금 이상하다. 2021년 최고 화제작이라 할 수 있는 <돈 룩 업>은 차진 욕을 작정하고 버무린 대사만큼 보는 사람 입에서도 욕이 절로 나오는 영화다.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우주에서 날아오는 혜성을 발견한 두 과학자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정부와 언론과 온라인 여론의 작태에 포복절도하다가 끝내 이 모든 개판이 너무 현실적이라 개비스콘을 미리 사두고 보길 권한다. 영화 안팎으로 욕이 풍년이다.


시각적 예술성 |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 <로마>

토마스 세비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파워 오브 도그>는 <피아노>의 감독 제인 캠피온의 최신작이다. 몬태나의 장중한 산맥을 두른 광막한 평원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카우보이 형제와 여관을 운영하는 모자의 관계를 다룬 이 영화는 자아의 정체성을 은밀하게 삼킨 인간의 심리를 대자연의 험준한 풍광과 함께 경이롭고 생경하게 포착한다. 알폰소 쿠아론은 자전적인 사연이 반영된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직접 촬영하며 <로마>를 연출했다. 덕분에 오스카 감독상과 촬영상을 함께 거머쥔 이례적인 감독이 됐다. 1970년대 멕시코를 흑백으로 재현하는 <로마>는 노스탤지어로 점철된 기억 위로 생생하게 환기되는 시대를 스펙터클 하게 펼쳐 보이는 시네마틱 한 체험이다. 바닥에 반사된 하늘을 지나는 비행기가 떠오르는 첫 장면부터 눈과 뇌를 사로잡는다.


공포감 | 넷플릭스 <마인드 헌터>

FBI 요원 출신 작가 존 더글라스의 동명소설을 극화한 미니시리즈 <마인드헌터>는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과 연출에 관여한 두 번째 넷플릭스 미니시리즈다. 오늘날에는 국내 예능에서도 손쉽게 발음할 정도로 익숙해진 프로파일링이라는 언어를 만들어내고 이론을 정립한 FBI 수사관들의 집념 어린 사연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비인간성의 자취를 추적하는 이야기에 가깝다”는 데이비드 핀처의 말처럼 <마인드헌터>는 프로파일링을 설계한 FBI의 흥미진진한 활약상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추는 대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이코패스의 표정과 언어에 주목하고 이를 듣는 FBI 요원들의 심리를 리액션 쇼트처럼 대칭시킨다. 끔찍한 살인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닌데 마음이 뭉개지는 것 같다. 특히 시즌1의 결말부는 질식할 것 같은 기분 그 자체다. 보면 안다.


몰입감 | 디즈니 플러스 <만달로리안>

<스타워즈> 스핀오프 드라마 <만달로리안>은 디즈니 플러스의 첫 번째 오리지널 시리즈다. 하지만 <스타워즈>를 1도 모른다 해도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보는 데에는 1도 문제가 없다. 기존의 <스타워즈> 세계관에 크게 얽매이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다루는 각본과 연출 솜씨가 발군인 덕분이다. 현상금 사냥꾼 만달로리안의 여정은 스페이스 오페라 버전의 오디세이에 가깝다. 기존의 <스타워즈> 서사를 알면 더 재미있겠지만 몰라도 무방하다. ‘아임 유어 파더’가 <대부>에서 나온 대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스타워즈>에 관심이 없던 아내도 시즌3를 기다릴 정도다. 다 떠나서 ‘베이비 요다’라고 잘 알려진 그로구를 대면하는 순간 영혼도 빼앗길 것이다. 장담하는데 사볼 생각도 없는 피규어를 검색하고 있을 것이다. 역시 보면 안다.


('ARENA HOMME +'에 쓴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트릿 우먼 파이터' 댄서라는 이름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