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다. 모두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만 같다. TV CF를 비롯해 다양한 미디어에서 고양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낯설다. 불과 20여 년 전인 90년대에만 해도, 아니, 10여 년 전만 해도 고양이는 이렇게까지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고양이는 대체로 재수 없어서 돌을 던져 쫓아버리거나 영물이라 두려워서 가까이 두기 꺼려지는,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반려할 만한 생명체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면 독특한 사람 취급을 당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나만 고양이 없어’라고 한탄하는 것이 유행이 된 시대다. 세상은 참 신기하다.
지난 4월 6일에 개봉한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이하 <루이스 웨인>)는 고양이를 의인화한 삽화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에 대한 전기적 영화다. 루이스 웨인이 그린 고양이 삽화는 큰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은 그림의 대상이 된 고양이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으로 이어졌다. 영국에서도 고양이가 사랑받게 된 건 불과 100여 년 사이의 일이다. 영화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고양이는 신비한 신처럼 추앙받거나 사악한 요물처럼 손가락질을 당해왔’지만 ‘처음으로 고양이를 재미있는 존재로 봐준’ 루이스 웨인 덕분에 사람들은 고양이를 ‘엉뚱하고, 귀엽고, 외롭고, 겁이 많고, 용감한’, 그러니까 결국 ‘이상하지 않은 존재’로 보게 됐다고 한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불과 100여 년 전 영국 런던에서 일어났다는 말이다.
<루이스 웨인>은 루이스 웨인이라는 유명 작가가 고양이 그림을 그려서 어떻게 성공했는가를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다방면에 관심은 많지만 인간관계에 서툴렀고, 심리적으로 병약한 구석이 있었던 루이스 웨인이라는 남자가 보낸 사랑과 상실의 시대 끝에서 마주한 총천연색의 깨달음을 함께 마주하는 여정이다. 루이스 웨인(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비록 가난하지만 상류층 계급으로 분류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노동자 계급으로 분류되는 가정교사 에밀리 리처드슨(클레어 포이)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받는 눈총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영화를 보면 그렇다.
루이스 웨인은 에밀리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쉽게 고백하지 못한다. 자신이 상류층 계급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루이스 웨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인중의 언청이 흉터를 가리기 위해 콧수염이나 길고 다니는 자신이 부끄럽다. 하지만 고백하고 싶다. 그래서 면도를 하고 그녀 앞에 섰다. 하지만 그녀는 별반 반응이 없다. 그래서 되레 자신의 언청이 흉터가 보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그날부터 1일이 된 건 아니지만 결국 그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루이스 웨인은 그렇게 행복하기만 한 두 부부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에밀리가 루이스 웨인과 함께 한 세월은 3년여의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3년은 루이스 웨인의 평생을 사로잡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루이스 웨인이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한 건 아내가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린 그림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 것도 아내가 그러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고양이를 그려서 유명해진 어떤 작가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사랑이 한 남자의 인생에 어떤 용기를 불어넣었고, 그 삶에 깃든 상실감을 어떻게 회복하게 만들었는지, 복잡다단한 그림자에 잠식되려 하는 누군가가 쥐고 있던 재능을 꺼내 보이게 만든 어떤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루이스 웨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건 대가족의 삶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기도 했지만 그가 지닌 재능을 세상이 내버려 두지 않았던 덕분이기도 했다. 외톨이 기질이 다분하고 천덕꾸러기 같은 성격이지만 이토록 밝은 그림을 능숙하게 그릴 줄 아는 재능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보고 아끼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하게 만든다. 스스로 추하다고 여기는 결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괜찮은 면모를 봐주는 이를 만난 루이스 웨인은 결국 세상이 사랑하지 않았던 고양이를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었다.
“당신이 이 세상을 아름답고, 따스하고, 다정하게 만들어준다”는 루이스 웨인의 말에 에밀리는 답한다.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아니야. 세상은 아름다워. 당신이 있어서 나도 그걸 볼 수 있었어.” 그러니까 사랑해서 세상이 아름답게 변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눈을 뜨게 만든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건 우리 자신을 위한 축복일 것이다. 이처럼 긴 인생에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건 결국 그 삶에 깃든 축복이 한 뼘 넓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사랑하라. 그 사랑이 당신도, 세상도 사랑하게 만들 것이다. 틀림없다. 우리에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