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용준 May 04. 2022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단순 감상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보고 썰 푼다. 스포는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미 예고된 것처럼 마블 스튜디오의 첫 번째 호러다. 당연히 정통 호러일 리 없지만 의외로 과감한 코스믹 호러처럼 보인다. 기괴하지만 쌈박하게 공포스러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불쾌하지만 압도적이면서도 끝내 유머러스한 샘 레이미 특유의 B급 호러가 대자본의 마블 블록버스터 위에서 온갖 끼를 부리는데 즐기지 않고 당해낼 수가 없다. 종종 유치해지기도 하고, 내러티브를 지나치게 막 굴린다는 인상도 느껴지지만 그때마다 함께 구르며 즐기지 않을 방도가 없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선을 넘은 마블 스튜디오의 멀티버스 이론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온전히 적용된 첫 번째 MCU영화라 할 수 있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정말 환장의 도가니 그 자체인데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지 못할 취향의 관객이 아니라면 오감으로 맘껏 즐길 수 있는 극강의 롤러코스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티버스 층위를 넘나드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이상한 여정은 3D 영화에 어울리는 입체감이 느껴질 만큼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청각적인 전략도 상당한 작품이라 사운드 시스템이 좋은 상영관에서 볼 때 쾌감이 배가될 것 같다. 특히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음표 대결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로 뽑아낼 수 있는, 우아하고 세련된 위트가 압권인 천재적인 명장면. 그리고 으스스하면서도 너무 즐거운(?) 피날레 신은 정말 이거 정말 샘 레이미 영화가 맞다는 식으로 인장을 콱 찍는다. 보면 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지적이고 영험한 멋과 꺼벙한 매력이 절반이라면 미친 광기를 내뿜다가도 짠한 연민을 부르는 ‘블레어 위치’ 완다의 존재감이 절반이다. 무엇보다도 완다 캐릭터를 활용한 호러 시퀀스들이 굉장히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를 발산하는데 역시 샘 레이미 천재. 항간에 도는 소문처럼 카메오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좀 있는데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는데 확실히 카메오 쇼 따위는 아니라는 말. 다 떠나서 관람 전에 본다면 더 좋겠지만 관람 이후라도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완다비전>은 꼭 봐야 한다. <완다비전>을 보지 않았다면 흑화된 완다를 이해할 수 없고, 이 작품의 근본적인 정서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주인공은 당연히 닥터 스트레인지이지만 작품의 정서를 장악하고 있는 건 블레어 위치가 된 완다이기 때문에 완다가 블레어 위치로 흑화되는 과정을 알고 보는 건 정말 중요하다. 다 떠나서 <완다비전> 자체가 꽤 좋은 작품이기도 하니 MCU에 애정을 가진 관객이라면 분명. 닥터 스트레인지의 공허함과 완다의 상실감을 연결하는 각본 자체가 정말 좋다.


반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마블이 주창한 멀티버스 세계관은 어느 정도 학습됐을 테니 <로키> 정도는 당장 꼭 봐야 할 것 같진 않고 추후에 덤으로 봐도 무방할 듯. <왓 이프>의 설정이 온전히 적용된 캐릭터도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왓 이프>를 볼 필요까진 없을 거 같고 역시 시간 나면 덤으로. 물론 이 작품이 <닥터 스트레인지> 속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전편은 꼭 봐야 한다는 말 따위는 삼가겠다. 참고로 쿠키는 두 개인데 본격적인 엔드 크레딧이 나오기 전의 쿠키는 차기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니 봐 두면 좋을 거 같고,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간 이후에 나오는 쿠키는 나처럼 그냥 다 챙겨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짜증 나게 재미있는 유머이지만 그게 아니면 그냥 짜증 나는 장면이 될 수도. 제작진도 그걸 모르지 않고 만든 것 같기도.


무엇보다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마블 스튜디오의 새로운 야심이 또렷하게 보이는 인상인데 멀티버스 세계관을 보다 구체화함과 동시에 ‘인커전’을 직접 발음하며 마블 유니버스의 거대한 불꽃놀이가 될 것이라 기대되는, 진짜 멀티버스 세계관의 대혼돈을 그린 ‘시크릿 워즈’를 향한 비전이 확실해 보인다. 다만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와 연동된 영화 전략이 갈수록 복잡하고 다단해서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따라가기 너무 버거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정도로 압도적인 볼거리로 그런 의문을 찍어 누르지 못하는 범작들은 그만큼 볼 이유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당연히 내가 마블 스튜디오 걱정하는 건 아니고, 그렇다는 말.


결과적으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지금까지 나온 MCU 영화 가운데 최상의 엔터테인먼트이자 비범한 한 수다. 짜릿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은 스스로 구하는 자를 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