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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y 06. 2022

나는 추앙한다. 박찬욱이라는 세계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거는 당연한 기대감에 대하여.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첫인상은 웅장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한데 그때마다 멋지다는 감탄사가 느낌표처럼 세워지는 기분이라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다. 지난 4월 14일에 처음 공개된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영화이자 <아가씨> 이후로 6년 만의 신작 영화인 <헤어질 결심>의 포스터가 그렇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 <아가씨>와 <스토커> 포스터를 디자인했던 영국의 엠파이어 디자인에서 작업한 결과물이라 하는데 한글 제목이 표기된 국내용 포스터뿐만 아니라 <Decision To Leave>라는 영문 제목이 표기된 해외용 포스터로도 함께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 멋짐은 ‘로컬이 아닌 글로벌’까지 아우르는 기대감을 충족시키겠다는 야심이 투사된 결과물처럼 보인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헤어질 결심>은 오는 5월에 개막하는 제7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에 이어 칸 경쟁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 이전에 칸 경쟁부문에 네 편 이상 초청된 한국감독은 홍상수 감독이 유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깐느박’이라 불러도 ‘깐느홍’이라 부르지 않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박찬욱 감독이 ‘깐느박’으로 통하는 건 2004년에 열린 제5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 덕분일 것이다. 이는 칸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이후로 2년 만에 전해진 낭보이자 2000년대와 함께 열린 한국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이거 정말 상징적인, 한국영화계와 박찬욱 감독에게 찾아온 별의 순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사실 예고편도 나오지 않은 영화에 대한 예찬을 이렇게 길게 풀어놓는다는 건 자칫하면 민망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라면 기꺼이 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이제부터 추앙하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 관한 설레발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밑도 끝도 없는 설레발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난해 여름, 박찬욱 감독을 파주에 있는 조영욱 음악감독 작업실에서 만났다. 개인적으로 준비 중인 인터뷰집 단행본을 위한 인터뷰에 응해준 덕분이었는데 박찬욱 감독은 당시 <헤어질 결심>을 편집하며 틈틈이 음악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당연히 완성되지 못한 영화를 볼 길이 없으니 <헤어질 결심>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캐스팅을 비롯해 이미 드러난 몇 가지 사실을 바탕에 둔 질문을 던진 바 있었고, 흥미로운 답변을 듣게 됐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집에서 아내와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유튜브로 찾아 듣던 옛날 한국 노래에서 시작된 영화다. 1967년에 데뷔한 정훈희의 데뷔곡 ‘안개’를 듣게 된 박찬욱 감독은 윤형주와 송창식이 결성한 2인조 남성 포크 그룹 트윈폴리오가 부른 ‘안개’를 듣고 매혹적인 상상을 했다. 안개가 많은 동네를 배경에 둔 사랑이야기에서 정훈희 목소리로 한 번, 송창식 목소리로 한 번, 그렇게 두 남녀 주인공 입장에서 부른 ‘안개’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면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처음으로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어 구상한 영화다. 일찍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그러했듯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옛날 노래가 주요한 테마곡으로 쓰이는 경우는 이미 더러 있었다. 박찬욱 감독 스스로 특별히 공을 들였다고 언급한 <아가씨> 엔드 크레딧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임이 오는 소리’는 1974년에 발표한 2인조 혼성 포크 그룹 뚜아에무아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버전이기도 하다. 


이렇듯 남성 보컬과 여성 보컬의 ‘안개’를 테마곡으로 삼았을 것이라 추정되는 <헤어질 결심>은 처음으로 멜로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는 점에서 더 큰 궁금증을 부르는 작품이다. 사실 박찬욱 감독은 늘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농담처럼 받아들이는 이가 적잖을 거 같지만 박찬욱 감독의 입장은 진지하다. 농담이 아니다. 최근작 <아가씨>는 해방의 카타르시스로 상승하는 퀴어 로맨스물이다. <스토커>는 성장과 자립에 관한 섹슈얼한 우화이고, <올드보이>는 치정 관계의 파국을 그린 로맨스물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역시 판타지와 페이소스로 조립한 독창적인 로맨스물이고, <박쥐>는 그야말로 대표적인 박찬욱식 누아르 로맨스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정통 로맨스물은 아니지만 박찬욱 감독의 세계에서 로맨스는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필연적인 정서이자 감정이었다.

그런 면에서 애초에 멜로를 표방한 <헤어질 결심>은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박찬욱 감독이 소위 말하는 정통 멜로를 만들 거 같진 않지만 최소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최전선에 자리한 주요 소재가 될 것이라는 면에서 예상할 수 없는 독특한 결과물을 보게 될 것 같다.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만난 후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라고 정리된 시놉시스와 멜로와 함꼐 나열된 서스펜스라는 장르 정보를 보면 안개처럼 희뿌연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심리와 자욱한 연기 속에 자리하듯 냉엄하게 은신한 감정이 불길하게 어우러진 매혹이 그려진다. 


<아가씨>는 김민희와 김태리, 하정우와 조진웅까지 주연을 맡은 네 배우 모두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는 점에서 익숙한 듯 새로운 인상을 발견하고 감상하는 재미가 상당하면서도 전작과 상이한 작품이었다. <헤어질 결심> 역시 박해일과 탕웨이를 비롯해 이정현, 고경표, 박용우까지 모두 박찬욱 감독의 장편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배우들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새로운 낯빛에 대한 예감을 부추긴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의외로 처음 출연하는 배우 박해일은 그 자체로 특별한 재발견의 시너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늘 범상치 않은 매력을 지닌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박찬욱 감독 영화인만큼 탕웨이는 캐스팅 자체가 파격적인 힌트로 보인다. 서래는 한국인이 알아듣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중국인이라고 하는데 의외의 단어 선택이 흥미로운 캐릭터라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위트와 미스터리를 발산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정서경 각본가와 류성희 미술감독, 송종희 분장감독, 곽정애 의상감독, 조영욱 음악감독 등, <아가씨> 이전부터 박찬욱 감독의 세계에 조력해온 이름들로 채워진 제작진은 다감한 감각과 선연한 미장센의 너비와 밀도를 다시 한번 벌리고 채울 것이다. 동시에 <남한산성>과 <밀정> <더 테이블> 등의 작품으로 섬세하고 힘 있는 촬영 감각을 증명해온 김지용 촬영감독이 처음으로 포착하고 확보한 박찬욱 감독의 세계가 내심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스태프의 능력치를 극대화시키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수용력은 진취적이면서도 온화한 덕장으로 불린 지휘자 브루노 발터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세심하게 조율된 연주를 대단위의 협연으로 이끌어내는 마에스트로의 야심이 절정에 달한 <아가씨>에 이어 <헤어질 결심>에서 또 한 번 목격할 수 있으리라는 설렘이 이미 목까지 차오른 기분이다. 그러므로 나는 추앙한다. 박찬욱이라는 총체적 감각과 이색적 언어 그리고 본질적 성취를, 언제나 파격적인 그 멋진 신세계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1st Look' 매거진 5월 첫 번째 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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