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로컬에서 글로벌로, K컬처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한국시장에는 몇 가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제작과 상영이 모두 중요한 시장이란 사실이다. 한국영화 산업기반이 탄탄해서 한국영화 제작이 원활하면서도 외국영화가 시장에서 거두는 성과도 대단하다. 매우 건실한 영화 산업과 시장을 함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인용한 문장은 2009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부문 CEO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한 제프리 카젠버그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들었던 말을 옮긴 것이다.
한국인이 즐기는 한국 대중문화 카테고리는 영화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드라마와 대중음악을 비롯해 한국인이 향유하는 대중문화란 모국어로 발음되는 대부분의 것이 포괄된다. 분야별로 분포도 차이는 발생하겠지만 그래도 한국 정도면 문화라고 명명하는 대부분의 산업이 나름대로 잘 활성화된 나라라는 것이다. 물론 기저에는 다양한 굴곡도 존재하는 법이겠지만 21세기에 이르러 웰메이드라는 기치를 내걸고 내수 시장에서 경쟁해온 한국 대중문화 산업은 본질적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대중을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1990년대부터 대중음악계에서는 랩뮤직과 힙합, 소울 같은 ‘본토’ 음악을 접목한 한국적인 팝뮤직이 새롭게 대두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팬덤을 형성했고, 2000년대 들어 체계적으로 육성된 아이돌 그룹의 시대가 열렸다. 2000년대 한국영화계에는 시네필 출신 작가주의 감독들이 영화적 지평을 열기 시작했고 천만 영화라는 대흥행의 지표가 기록됐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드라마가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한류라는 단어가 발음되기 시작됐다.
그러니까 이 모든 현상은 해외에서 유입된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온 새로운 세대가 열어젖힌 새로운 물결이나 다름없었다. 지극히 세계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새로운 창작과 소비의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어떤 소비자는 자신이 보고자 했던 것을 실현해내는 창작자의 위치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한국에 없던 것을 시도하고,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창조해냈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1위 등극과 그래미 노미네이트 그리고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이나 <오징어 게임>의 골든글로브 수상 등 근 몇 년 사이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미국 유수의 로컬 차트와 시상식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은 이런 흐름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대중문화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에서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전방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지난 몇 년간의 사례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먹히는 기획력과 창작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K의 시대다. K라는 알파벳으로 위시한 한국 대중문화의 지향점은 세계를 향하고 있지만 그것은 애초에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 결과였다. 수요와 공급의 활발한 선순환 구조가 가속화되며 빅뱅처럼 폭발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글로벌이 아닌 로컬의 힘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웰메이드 규격에 특별한 숨을 불어넣는 건 현실적인 리얼리티다. 방탄소년단은 팬데믹 시대의 위로를 전하고,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은 빈부격차의 부조리를 풍자한다. 현실을 건드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만인을 사로잡는다. K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 모든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단언컨대, 하루아침에 꺼지지도 않을 것이다.
(대한항공 기내매거진 'MORNING CALM' 5/6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