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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Jan 11. 2023

영화가 그렇게 다시 보고 싶습니까?

영화와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하는 N차 관람 현상에 관하여.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결국 영화를 만드는 것.’ 한동안 한국의 시네필에게 복음처럼 구전되던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론’은 이렇다. 하지만 이것은 왜곡된 해석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트뤼포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첫 번째 원칙은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응당 해왔을 행위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한 번 봤다고 다시 보기를 중단하지 않는 관객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사실 ‘N차 관람’이라는 용어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종의 반복 관람 행위를 의미하는 N차 관람이라는 말은 몇 년 전부터 일찍이 사용하던 언어였고, 그만큼 영화를 반복 관람하는 관객들은 2022년 이전에도 제법 있었다는 의미다. 일례로 지난해 <헤어질 결심>을 통해 N차 관람 현상을 이끈 장본인이 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역시 N차 관람 영화로 유명했는데 인터넷상에서는 <아가씨>를 111번이나 본 관객의 티켓 인증샷이 올라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N차 관람하는 관객도, N차 관람이라는 말도, 2022년에 ‘갑툭튀’ 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차 관람’이라는 용어가 새로운 현상처럼 대두되는 이유는 뭘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해 N차 관람의 대명사로 꼽힌 영화는 <헤어질 결심>이었다. 소위 말하는 ‘헤친자’ 그러니까 <헤어질 결심>에 미친 자라고 불릴 정도로 <헤어질 결심>에서 헤어나지 못한 관객들이 적지 않았는데 사실 <헤어질 결심>의 N차 관람 지수는 비슷한 시기 개봉작 가운데 N차 관람 영화로 꼽히는 타 영화를 압도하는 수치는 아니었다. CGV 데이터전략팀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영화가 개봉하고 한 달 가까이 지난 7월경 집계된 N차 관람 비율에서 <헤어질 결심>은 4.7%의 재관람률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그보다 높은 관람 비율을 자랑하는 작품이 6.1%를 기록한 <탑건: 매버릭>이었다. <탑건: 매버릭>이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반면, <헤어질 결심>이 동원한 관객수도 180만 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의 존재감은 여타의 영화를 압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헤어질 결심>에서 헤어나지 못한 헤친자들은 극장 밖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의 존재감을 높이는데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특히 SNS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대사를 패러디하는 밈 현상이 한동안 풍년이었다. ‘마침내’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그리고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같은 유명한 대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전시됐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해도 웬만한 대사는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헤친자들이 ‘드립칠 결심’만 한 건 아니었다. 영화 개봉 후 두 달여만에 출간된 <헤어질 결심 각본>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각본집으로서는 초유의 상황이었다. 심지어 온라인 서점의 한줄평에는 역시 <헤어질 결심>의 대사를 패러디한 문장들이 융단 폭격하듯 쏟아졌다.


그러니까 이건 어지간한 애정이 아니다. 가히 충성심에 가깝게 영화에 복무하는 관객들이 벌이는 일종의 자족적 놀이에 가깝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것을 해낸다 하여 특별한 명예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 자체로 그것을 즐기며 영화를 거듭 관람한다. 한 번의 관람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대사와 장면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빨아들여 자신의 것인 양 소화해버린다. 소위 말하는 영화광, 즉 시네필이라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해당 영화가 좋기 때문이다. N차 관람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상업영화의 경계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팬덤 현상에 가깝다. 일찍이 벌새단이라는 서포터즈까지 활약하며 N차 관람 영화로 떠올랐던 <벌새> 같은 독립영화도, 최근 독특한 화술과 문법으로 해석 본능을 일깨우는 영화로 입소문을 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같은 예술영화도, 보기 드물게 극장에서 떼창을 하며 관람할 수 있는 싱어롱 상영 문화를 만든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상업영화도, N차 관람이라는 팬덤 현상을 통해 대단한 화제를 일으켰다. 


이처럼 N차 관람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향한 적극적인 애정 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의 애정 행위는 극장 밖에서도 적극적이다. 영화가 끝났다고 해서 영화에 관해 말하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제각각 살아 숨쉬는 영화 전단지가 돼서 자신이 애정하는 영화를 널리 전파한다. 덕분에 언제부턴가 N차 관람이란 영화에 대한 애정의 척도를 말하는데 있어서 1순위 행동 강령처럼 일컬어진다. 영화를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관계자들은 개봉 전부터 ‘N차 관람을 부르는 영화’라는 식으로 자신의 영화를 어필한다. 팬데믹 이후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발길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했을 때 극장을 찾는 관객수의 절대량이 반토막난 상황에서 N차 관람을 거듭하는 팬덤이 생긴다는 건 수익적인 측면을 넘어 해당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부추길 수 있는 인증 마크를 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현재 영화계에 팽배한 위기 의식과도 유관하다.

N차 관람을 하는 관객은 몇 년 전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영화의 규모를 막론하고 N차 관람이라는 말을 마케팅이나 홍보 수단으로 동원하는 추세가 어느 때보다 뚜렷해지면서 N차 관람이라는 언어 자체의 인식도 예년보다 두드러지는 것 같다. 팬데믹 이후로 급감한 극장 관객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 명의 관객이라도 극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출연배우들이 장기간 동안 무대인사나 관객과의 대화 등의 극장 내 마케팅 활동에 적극적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영화를 봤지만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을 만나기 위해 다시 티켓을 사는 관객들의 심리에 최대한 부응하겠다는 움직임은 그만큼 영화계의 사정이 지금 지난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만든다. 


이는 과거 몇몇 재개봉작이 기대 이상의 흥행세를 보여주자 갑작스럽게 재개봉작이 늘어난 현상을 연상시킨다. 2015년에 재개봉하며 처음 개봉할 당시의 곱절에 가까운 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이터널 선샤인> 이후로 오래전에 극장에서 내려간 작품들이 다시 극장 상영작으로 이름을 올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인지도가 상당한 재개봉작을 극장에서 보겠다는 관객의 심리가 생각 이상으로 활발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신작에 비해 수입 단가가 낮은 구작의 극장 개봉 판권을 확보해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영화 수입사의 생존 전략이 맞물린 탓이기도 했다. 그만큼 시장의 어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현상이었던 셈이다. N차 관람이 주목받는 현상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보기를 중단할 수 없는 관객들의 열정과 애정은 특별한 일이다. 다만 그러한 열정과 애정에 당장 기대를 걸어야 하는 영화계의 사정이란 그리 좋은 소식일 리 없다는 것이다. 극장의 위기는 언젠가 영화의 위기로 돌아올 것이다. 결국 팬데믹 이전 수준만큼 영화관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지 못한다면 N차 관람을 부르는 영화의 가능성도 희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N차 관람이 부각된다는 건 영화계의 위기를 대변하는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영화계를 위한 희망의 보루이기도 하다. ‘영화는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 봉준호 감독의 희망도 결국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실현될 것이기에, 영화를 향한 순수한 애정을 느끼게 만드는 N차 관람은 그 자체로 일말의 희망일 것이다. 영화는 정말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대한항공 기내매거진 'MORNING CALM' 2023년 1월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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