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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Mar 14. 2023

'콜 제인' 오늘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든 오늘에 관한 영화, '콜 제인'.

지난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영화 <콜 제인>이 이날 개봉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콜 제인>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활동했던 여성 주도 네트워크 ‘제인 콜렉티브(Jane Collective)’를 조명하는 영화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제인 콜렉티브는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여성 인권 단체였고, 공식적인 명칭은 ‘여성해방임신중지상담서비스(Abortion Counseling Service of Women's Liberation)’였다. 일리노이주에서는 임신중지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제인 콜렉티브는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을 위해 음성적인 도움을 주는 비밀 단체였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임신 중단 수술의 필요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상적인 의료 절차로서 필요한 여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나 미디어는 종종 공포스러운 감정이나 규칙에서 벗어난 예외적 상황을 다루는 데 관심이 많다는 걸 잘 알지만 나는 그런 비유적인 세계를 그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 <캐롤>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힐리스 나지는 자신의 첫 영화 <콜 제인>이 여성들이 직면한 고통스러운 현실 대신 성장과 쟁취의 서사를 스스로 개척한 여성성에 주목하길 바란 것 같다.


시카고의 평범한 주부였던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는 임신 3개월 차에 갑작스럽게 졸도하는 증상을 겪은 뒤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 임신 상태가 계속되면 울혈성 심부전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임신중지 수술 외에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임신중지가 불법인 상황에서 남성으로만 구성된 병원의 위원회에서는 임신 중절 수술 승인을 불허한다. 합법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킬 길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거듭 체감하며 좌절하던 조이 앞에 낡은 종이 한 장이 나타난다. ‘임신으로 불안하신가요? 제인에게 전화하세요.’

<콜 제인>의 제인은 특정 인물도, 한 사람도 아니다. 버지니아(시고니 위버)가 이끄는 여성 단체 회원들은 ‘제인스’라는 복수형으로 자신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여성의 위기를 구한다는 사명감으로 움직인다. 사회가 제한하는 여성의 권리를 스스로 구제하고자 모인 여성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다. 그런 여성들의 구제 대상이었던 조이는 점차 그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주부에서 활동가로 은밀하게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콜 제인>은 성장영화의 시각으로 한 시대의 구태를 철폐하는데 앞장선 여성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니까 성장과 진보의 역사는 이토록 유쾌하고 건강한 서사를 낳는 법이다.


제인 콜렉티브의 활동이 1973년에 멈춘 건 1972년,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인해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가 됐기 때문이다. 제인 콜렉티브가 활동을 멈춘 건 그들이 원하던 여성의 권리가 제 자리를 찾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임신중지 수술에 대한 헌법상 권리를 폐기했고, 몇몇 주에서는 다시 임신중지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콜 제인>은 비록 지금은 다시 후퇴하더라도 예전처럼 다시 전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긍정적으로 불어넣고자 하는 영화적 제언처럼 보인다. 우리가 어제보다 나은 오늘로 당도한 건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따져 묻는 언어와 행위로 시대의 벽을 무너뜨리고 나아간 이들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맞이한 오늘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려대학교에발행하는 학보 신문 <고대신문>의 '타이거살롱' 섹션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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