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앞서 미리 OTT 오리지널 시리즈 기대작을 꼽아봤다.
그야말로 OTT 춘추전국시대, 콘텐츠 백가쟁명 시대다. 채널은 많고, 볼 것은 많아서 되레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제대로 보는 것 하나 없이 온종일 리모컨만 누르며 제목 사이를 헤매는 당신을 위해 미리 준비했다. 신박하고 쌈박한 재미를 인정받은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새로운 흥미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것은 물론 이름만으로도 화제성을 담보하는 스타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관심을 끌어당긴다. 그러니까 올해에는 이거다.
2071년,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미래에 유일한 희망은 택배기사다. 산소호흡기를 써야만 가능한 외부활동을 제한하고 삶에 필요한 모든 물품은 외출이 가능한 택배기사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그만큼 특권이 막강한 택배기사가 될 권한은 아무나 꿈꿀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오직 강한 자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윤균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택배기사>는 기후와 노동을 비롯한 동시대 사회 문제를 역전시켜 상상해 낸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흥미롭게 제시하는 작품이다. 일반인과 난민 그리고 기형인으로 구분되는 미래 인류는 사회적 계급이 낮을수록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데 난민들의 유일한 희망은 택배기사가 되기 위해 강해지는 것뿐이다. 그런 세상에서 현존하는 전설로 꼽히는 최강의 택배기사가 난민들의 희망으로 꼽히는 소년을 만나 특별한 인연으로 거듭나게 된다. 인간애가 절멸한 듯한 세계에서 싹을 틔우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읽힌다. <감시자들>과 <마스터>를 연출한 조의석 감독의 첫 미니시리즈 연출작을 김우빈, 송승헌, 이솜이 지원사격한다. 동시대적인 화두라 할 수 있는 환경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비대면 시대의 상징적인 노동 계급으로 떠오른 택배기사를 일종의 히어로로 치환한 장르적 상상력이 한국 VFX 기술력을 토대로 선사할 새로운 세계관이 궁금하다.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된 바 있는 강풀 작가의 작품이지만 <무빙>은 뭔가 새롭다.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되는 20부작 미니시리즈라는 점에서 여타 오리지널 시리즈에 비해 분량이 길고, <오징어 게임>의 두 배에 달하는 500억 원 규모의 제작비만으로도 기존에 등장했던 여타의 OTT 오리지널 시리즈를 압도하겠다는 야심이 읽힌다. 한국형 액션 히어로물을 표방하는 <무빙>은 과거를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비밀 요원 출신 부모가 범상치 않은 초능력이 발현된 아이들에게 마수를 뻗치는 조직에 대항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의 호쾌한 액션과 거대 음모론 서사의 한국적인 풍경 속에서 얼마나 잘 구현되고 발휘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조인성, 한효주, 류승룡, 류승범, 차태현, 박희순, 고윤정, 문성근 등 말 그대로 초호화 라인업만으로도 관심을 부르는 <무빙>은 대중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브릿지> <히든> 그리고 <타이밍>으로 이어지는 강풀 유니버스로 확장을 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캐스팅된 배우 이름만으로도 영화 몇 편은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 블록버스터 기획이라 할 수 있는 <무빙>은 한국형 슈퍼히어로 유니버스의 가능성을 꿈꾸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귀추가 주목된다.
수능을 앞두고 입시 전쟁을 치르는 고3 생활이 진짜 전쟁이 된다. 정체불명의 보랏빛 구체가 난데없이 지구를 침공하고 날카로운 촉수를 날리며 인류를 사냥한다. 어떻게 제거하는지 알 수도 없는 기괴한 구체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류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가운데 고3 수험생도 징병 대상으로 분류돼 펜이 아닌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 대신 살아남아 세상이 안정되면 입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의 원작자이기도 한 하일권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둔 <방과 후 전쟁활동>은 전쟁 같은 입시에 시달리는 수험생들이 진짜 전쟁에 끌려가게 되는 상황의 딜레마를 그린 ‘하이틴 학원물 아포칼립스’다. 10대를 주인공으로 둔 학원물에 드리운 종말적인 분위기는 신선한 웃음과 슬픔과 좌절과 희망이 엉켜 붙어 이루는 기이한 형상의 감정을 자아낸다. 최근 <슈룹>으로 인지도를 얻은 문상민과 유명 아이돌 출신 배우 권은빈을 비롯해 젊고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 조명하는 각축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청소년 입시 문제를 기반으로 둔 독특한 SF 전쟁물이라는 점에서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적절하게 배합된 원작 웹툰의 성취가 시각적으로, 창작적으로 어떻게 재탄생했을 지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유로운 휴식조차 남보다 특별해 보이는 삶처럼 보여야 하는 SNS 시대에서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보이는 것이다. 주변에 없는 시선조차도 의식하며 살아가는 시대에서 진정한 휴식과 편안한 관계란 무엇일까? 토요일마다 혼자 소박한 여행을 떠나는 국어 선생님 박하경을 따라가는 미니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는 평범하게 가 닿지만 특별하게 만나고 비상하게 남겨지는 후일담에 관한 드라마다. 배우 이나영의 4년 만의 복귀작이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에 도전하는 미니시리즈라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내는 <박하경 여행기>는 실제로 주말마다 여행을 떠난다는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이야기라고 한다. 결국 평범한 일과에서 찾아오는 갖은 스트레스를 등지고 떠나는 발걸음 끝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와 얻은 기억들로 소소한 듯 결코 소소하지 않은 여정이 이어질 것만 같다. 그만큼 여행지에서 만난 얼굴을 채울 배우들이 필요할 듯한데 구교환, 심은경, 한예리 등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얼굴이 박하경의 해방일지를 빼곡하게 채워줄 예정이다. 미식과 여행을 주재료로 기획하고 매일 같이 특별 게스트가 찾아오는 미식를 곁들인 듯한 리얼리티 예능의 호스트 역할을 이나영이 맡은 것 같은 인상의 시리즈물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식의 드라마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시니컬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독설적인 풍자로 팬덤을 형성한 만화가 꼬마비의 대표작 <살인자o난감>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와 그를 쫓는 형사에 관한 이야기다. 범인과 경찰의 추격전을 다루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살인 사건에 관한 전후 배경과 관련 양상이 하나씩 드러나고 진전될수록 예상할 수 없었던 반전이 주어지고 심리가 새어 나온다. 자신이 죽인 대상이 악행을 저지른 범죄자라는 것을 알게 된 평범한 청년이 점차 살인에 탐닉하는 과정과 그런 살인자를 쫓는 형사가 거듭 대면하게 되는 인과응보의 심리가 거듭 어긋날수록 단순할 것 같았던 이야기가 좀처럼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으로 거듭 돌아와 독자를 노려보는 것만 같다. 참고로 원작자인 꼬마비 작가는 제목을 ‘살인자이응난감’이라고 발음한다. 제목의 ‘o’은 무엇이든 넣고 읽어도 되고 없는 것처럼 무시해도 되는 빈칸이지만 실상 없는 것도 아니라는 모순 그 자체로서 작품의 주제 의식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스릴러 웹툰 원작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를 연출한 이창희 감독이 다시 한 번 전작의 성취를 잇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가운데 손석구, 이희준까지 연기력과 스타성을 보장받은 배우들의 출연은 기대감을 한층 더 높이는 최상의 수식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도 캐리커처로 묘사된 캐릭터들이 갑작스럽게 정밀묘사되는 순간 숨통을 죄는 듯한 심리적 긴장감을 선사하고, 철학적 물음까지 닿는 비범한 원작이 실사로 구현된다는 것만으로도 궁금증이 도진다.
(스마일게이트 그룹에서 운영하는 스마일게이트 뉴스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