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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pr 23. 2023

마이클 조던은 왜 아직도 경쟁하는가?

20년 전에 은퇴한 마이클 조던이 여전히 잘 팔리는 이유에 대하여.

‘GD 신발을 마이클 조던이라는 농구 선수도 신었던데?’ 이는 과거 지드래곤이 에어 조던 1 브레드 밴드 모델을 즐겨 신었기 때문에 유행한 농담이다. 에어 조던은 농구화 브랜드다. 하지만 에어 조던을 신는다 하여 꼭 농구를 하는 건 아니다. 농구화는 스트리트 패션의 영역에 속한 지 오래고, 에어 조던은 그 중심에 자리한 브랜드다. 최근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착용한 에어 조던 1 브레드 밴드와 서태웅이 착용한 에어 조던 5 파이어레드를 구하는 글이 중고시장에서 부쩍 늘어난 것도 그런 덕분이다. 지드래곤도, 강백호도, 서태웅도,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유명인들도 에어 조던을 신었기 때문이다.


“신발은 그냥 신발일 뿐이죠. 누군가 신기 전까진.”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다는 김춘수의 시인의 <꽃>처럼, 그 신발도 주인이 생겨서 의미가 생겼다.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가 함께한 ‘에어 조던’의 탄생 비화를 다룬 영화 <에어>에 등장하는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의 대사처럼 말이다. <에어>는 NBA 진출을 앞두고 있던 루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와 역사적인 계약을 맺기까지의 비화를 조명하는 영화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기여한 나이키 농구화 부서 관계자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영화에 등장한다. 나이키 농구화 부서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와 마케팅 임원 롭 스트라서(제이슨 베이트먼), CEO 필 나이트(벤 애플렉)와 함께 마이클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 조던(비올라 데이비스)과 아버지 제임스 조던(줄리어스 테넌) 등 그 계약을 성사시키는 과정에 자리했던 모든 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마이클 조던은 등장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엔드 크레딧 상에서는 다미안 델라노 영이라는 배우가 연기했다는 사실도 명시되지만 영화는 그의 얼굴을 결코 비추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마이클 조던이 가진 영향력,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에 대해 알고, 그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영화에 담아보고자 했다. 조던은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이야기하는 존재이지만 실상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얼마 없다.” 벤 애플렉의 말처럼 모두가 마이클 조던을 알고 많은 이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벤 애플렉도 <에어>를 만들기 위한 허락을 구하고자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마이클 조던을 알고 있을까? 마이클 조던을 안다면 그가 유명한 농구선수라는 것도 알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의 경기를 제대로 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대신 이 사실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에어 조던, 그의 이름을 딴 나이키의 농구화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농구화를 비롯해 유명한 선수의 이름을 빌린 브랜드가 지금이야 많지만 1984년만 해도 그런 사례는 많지 않았고, 농구화 시장에서는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나이키도 에어 조던의 성공을 확신하지 않았다. 그래서 5년간 25만 달러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판매금액의 일정 비율을 분배한다는 파격적인 조건과 함께 계약 3년 차까지 400만 달러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지 못하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리고 에어 조던의 첫 모델은 1985년에 출시됐고, 그 해에만 1억 2600만 달러의 판매고를 올렸다. 농구화 시장 3위 기업이었던 나이키는 1위 기업으로 수직 상승했으며 지금은 타브랜드와 비교가 무의미한 독보적 지위를 자랑한다. 현재에는 나이키와 분리된 독자적인 라인 브랜드가 된 에어 조던은 연매출 45억 상당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농구화 시장에서 에어 조던처럼 선수의 이름을 빌린 유명 브랜드는 르브론 제임스의 르브론 라인인데 에어 조던과 판매량만으로 비교하자면 거의 8배 정도 차이가 난다. 당연히 에어 조던이 8배는 많다.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그가 이끄는 시카고 불스는 1990년대에 6번 우승했다. 3년 연속 우승을 의미하는 ‘쓰리 피트(3-Peet)’를 두 차례나 이뤘다. 그리고 6번 우승할 때마다 매번 파이널 MVP로 호명됐다. 그는 언제나 주인공이었다. 심지어 첫 번째 쓰리 피트 이후 은퇴한 뒤 외도하듯 분야를 바꿔 야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다시 NBA로 복귀해 시카고 불스와 자신의 두 번째 쓰리 피트를 이끌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은퇴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것이 실화임에도 실화라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건 모두 마이클 조던이 실제로 이뤄낸 것이고 일찍이 모두가 목격한 일이다. 아마 시나리오 각본을 이렇게 쓰면 말도 안 된다는 말이나 듣겠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을 일으키면 추앙받는 존재가 된다. 마이클 조던은 그런 존재였다. 그러니까 NBA 역사 혹은 농구 역사를 둘로 나누는 분기점 같은 존재다. 마이클 조던 이전과 이후, 누가 있었는가.

나이키와의 계약은 그 위상에 영생을 불어넣는 가공할 숨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쌓은 역사와 함께 에어 조던의 가치는 날로 올라갔고, 나이키 역시 상상 이상의 이익을 얻었지만 마이클 조던에게도 나이키와의 계약은 지난 인생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이자 중요한 순간이었다. 마이클 조던은 두 번째 쓰리피트 달성 직후인 1998년에 두 번째로 은퇴했지만 2000년에 다시 복귀한다. 하지만 그의 팀은 시카고 불스가 아닌 워싱턴 위저즈였고, 그의 나이도 전성기가 지난 40세였다. 원래 구단의 주식을 매입해 사장으로 취임했지만 주변의 권유로 선수로도 뛰게 된다. 마이클 조던의 존재감은 인지도가 낮은 워싱턴 위저즈를 유명한 팀으로 만들었다. 전성기 기량은 아니었지만 평균 득점 20점대 이상으로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고, 40세 이후로 한 경기에 40 득점 이상을 올린 선수로서의 기록은 아직도 그가 유일하다.


2003년, 그러니까 20년 전에 농구 선수로서 진짜 은퇴한 마이클 조던은 여전히 NBA 현역 선수와 경쟁하고 있다. ‘역대급 위대함’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Greatest Of All Time’의 약자를 의미하는 영어줄임말 ‘고트(GOAT)’ 논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역대 최고의 ‘NBA 고트는 누구인가?’라는 도발에서 마이클 조던은 단골 메뉴 같은 이름이다. 그의 경쟁자는 한때 역시 전설적인 선수였던 코비 브라이언트였고, 요즘은 제임스 르브론이나 케빈 듀란트 정도가 언급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단언컨대 마이클 조던이라는 이름은 제임스 르브론과 케빈 듀란트 이후에 등장하는 대단한 선수와 또다시 붙을 것이다. 적어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마이클 조던은 계속 경쟁할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 조던은 단순히 대단한 농구 선수가 아니라 모두가 선망하는 이름이다. 지드래곤이, 강백호가, 서태웅이 신었던 신발이 화제가 된 것도 그것이 그냥 신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마이클 조던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신발도, 이야기도, 잘 팔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카고 불스의 라스트 댄스는 비록 끝났지만 마이클 조던의, 아니, 에어 조던의 라스트 댄스는 끝나지 않았다.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1st Look' 매거진 2023년 4월 두 번째 호에 쓴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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